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테리언니 백예진 May 10. 2024

망한 건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그리면 돼



처음 붓을 잡은 건 7살 때다. 우연한 계기로 미술학원을 겸한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색색깔의 종이와 크레용, 물감으로 가득한 그곳은 내게 마치 별나라 같았다.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만져 보고 접어 보고 문질러 보고 붙여 보고 그려 보는 모든 놀이가 좋았다. 접이식 물통에 튜브 물감을 쭈욱 눌러 짜면 투명한 물이 금세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마법처럼 신비했고 물을 적신 붓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흰 도화지를 메우는 일이 매번 새롭고 즐거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하원 시간이 지나도 집에 가지 않고 유치원에 남는 날이 다반사였다. 



일찍이 미술과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고 재능을 발견했던 데에는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안목이 큰 영향을 주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부터 엄마는 취향과 안목이 남달랐다. 퀼트와 꽃꽂이, 십자수, 지점토 공예로 직접 만든 접시… 엄마는 항상 손으로 만드는 아기자기한 것들을 배우러 다니셨다. 지점토 포도송이와 십자수 쿠션 같은 것을 엄마가 만들어서 집에 갖고 오면 나는 그것을 품에 끼고 한참을 들여다 보고 만지작거렸다. 계절이 바뀌면 엄마와 들에 나가 제철 꽃들을 가져다 화관도 만들고 꽃꽂이를 도왔다. 엄마는 잠시 ‘선물의 집’을 맡아 운영하신 적도 있었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리빙 편집숍이었던 그곳엔 엄마가 발품을 팔아 떼온 온갖 크리스털 장식품과 식기류, 그릇과 컵. 그림과 소품들이 가득했다. 가끔 엄마를 따라 골동품 시장이나 남대문에 가면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를 만큼 예쁜 것들이 넘쳤다. 사방이 아름답고 즐거운 세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됐을 무렵, 내가 미술을 진지하게 좋아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엄마는 나를 화실에 데려가셨다. 색연필 대신 소묘용 4B 연필과 미술 전용 붓이, 책상 대신 이젤과 캔버스가 있는 고요한 화실의 풍경은 낯설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캔버스 위를 사각사각 옮겨 다니는 연필 소리를 듣고 있자면 정말 화가가 된 기분이었다. 정해진 자리에서 연필을 잡고 손짓 하나, 선 하나에 온 정신을 기울이는 시간을 나는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캔버스 앞에 앉으면 어지러웠던 마음이 금세 정리되고 나른할 만큼 편안해졌다. 



살림이 어려워지고도 한동안은 화실에 계속 다녔다. 화실과 미술이 내 삶에 크게 자리 잡은 걸 아셨는지, 엄마는 될 수 있는 데까지 지원해 주시려 했지만 아쉽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현실을 생각하면 미대 진학은 그야말로 그림 같은 이야기였다. 화실을 그만둔 뒤 나는 어느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두어 해가 더 지나 대학 입시 시즌에 접어들어서도 공부마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진로나 희망 같은 건 손 닿을 수 없게 멀리 있는 남 일 같았다. 학교에서 받은 진로계획서를 들고 입술을 깨물며 잠을 설치다 결국 빈칸으로 내 버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의 부름에 착잡한 마음을 안고 상담실로 향했다. 



“왜 빈칸이야. 하고 싶은 게 없어?”
“...”



“미술 성적도 우수하고 좋아하는 것 같은데. 미대 가는 건 생각 안 해봤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요. 저희 집 형편엔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모기 소리로 겨우 말했다. 

선생님은 잠시 갸우뚱하더니, 내 이름을 지그시 힘주어 부르며 말씀을 이어 가셨다. 



“학교에 미술 특화반이란 게 있단다. 미술 입시 학원 같은 거야. 
들어가면 방과 후에 전문 강사님이 오셔서 지도해 주실 텐데, 뭐가 걱정이야?
앞날 창창한데 다 망한 것처럼 울상 짓고 그럴래? 빨리 포기하지 마.
빈칸은 채우면 되고 망한 건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그리면 되지.”


그 자리에서 나는 선생님과 함께 진로계획서의 빈칸을 하나하나 채웠고, 영영 놓쳐버린 것만 같던 꿈도 다시 찾았다. 얼마 있지 않아 시작하게 된 방과 후 특화반 수업은 내 삶의 유일한 위안이자 해방구가 돼 주었다. 특화반 동기들을 빼고는 모두가 떠나 고요해진 교실에서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은 바쁘고 속 시끄러운 일상을 잠시 떠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것만 생각하며 호흡을 관조할 수 있는 명상과도 같았다. 나는 미술 속에서 평안을 찾았고, 침착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볼 줄 아는 법을 배웠다. 



어쩌다 실수를 해서 그림을 완성하기도 전에 망한 것 같아 불안감과 초조함에 괴로울 때면, 담백하게 응원과 용기를 주셨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겼다. 망한 건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그리면 돼. 어긋난 선을 살살 지우고, 다시 온 힘을 기울여 새 선을 긋고, 다듬고, 살살 지우고 선을 긋고 다듬는 과정을 반복해 나가다 보면 아까의 실수는 감쪽 같이 사라져 있었다. 당황해서 지레 포기하지만 않으면, 그림은 언제든 완성할 수 있었다. 



십수 년이 흘렀지만, 그 시절 선생님의 조언과 입시 미술 경험은 여전히 내게 단단한 자기 암시로써 남아 있다. 그때 배우고 쌓은 것들 덕에 공간을 건축하고 디자인하는 현장이라면 필연적으로 숱하게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와 연속되는 실수들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게 되었고, 건축가와 건축주, 시공자, 디자이너가 얽혀 봉착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도 유연하게 봉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주 간혹은 정말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 담임선생님 말씀과 미술이 가르쳐 준 자기 암시를 스스로 되뇌곤 한다. 망한 것 같아도 지우개로 살살 지워서 다시 그리면 된다고. 계속 다듬으면 결국은 완성할 있으니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이전 05화 엄마, 우리도 언젠가 저런 고급 빌라에 살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