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고사마다 긴장하는 일 없이 담담하게 치렀고 성적도 꾸준히 유지했기에 설마 수능을 망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데 수능 당일, 컨디션이 유독 이상했다. 아침부터 긴장이 극에 달해서는 마음이 롤러코스터라도 탄 마냥 오르락내리락하고 머리는 몸을 떠나 붕 뜬 기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사장에서 받아 든 시험지의 까만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일 뿐 내용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평소 실력의 반조차 발휘하지 못한 결과는 뼈 아팠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고3시절을 보내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또 주저앉게 되다니. 이게 아닌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특화반 교실에 콕 박혀서 작업만 하며 보냈던 많은 날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이번만큼은 부모님을 향한 미안함을 무릅쓰고 한 번 더 기회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적표를 받은 날 나는 조심스레 재수의 뜻을 밝혔고, 어렵게 다시 기회를 얻은 만큼 훨씬 더 치열하고 분주한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드디어, 원하던 디자인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부 새내기들은 입학한 첫 해 동안 디자인 산업의 전반을 이해하는 수업들을 들었다. 정보와 메시지를 시각화해 효과적인 이미지로써 전달하는 시각디자인, 기업의 기획에 맞춰 사람들의 일상과 환경에 알맞은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산업디자인, 현대 사회의 트렌드를 읽고 창의적인 예술 감각을 더해 의류와 액세서리 등의 패션 머천다이징과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패션디자인… 다양하게 나뉘는 분야별 교과 수업들은 전부 새로운 세계였다. 본격적인 공부 과정에 접어들수록, 나만의 작은 생각이었던 것을 물성을 가진 각각의 무언가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은근한 희열과 보람을 느꼈다.
그중 특히 마음을 사로잡힌 수업은 실내건축디자인이었다. 사실 가장 잘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할수록 어렵고 스스로의 모자란 부분이 많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것은, 오래도록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을 디자인하고 싶은 내게 공간이라는 대상이 가장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전시장의 그림이나 마트 진열대에 놓인 물건, 마네킹이 입은 옷들은 짧으면 몇 주, 길어도 몇 달이면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지고 잊히곤 했다. 웹 서비스 디자인이 담긴 디지털 파일도 저장 공간이 꽉 차거나 더는 쓸모없게 되면 쉽게 버려졌다. 일정 기간이 끝나면 사라져야만 하는 것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반면 공간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한번 생기면 최소한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그 공간을 사용하고 생활하며 느끼는 미려한 정서까지, 공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너무나 다채롭고 공감각적이었다. 실내건축디자인 수업을 들을 때나 답사를 가면 매번 공간이 내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어려운 길이겠지만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학과와 진로를 정해야 하는 2학년이 되었고, 시각디자인학과와 패션디자인학과로 떠난 친한 친구들을 뒤로한 채 나는 홀로 실내건축디자인과의 문을 열었다.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초반에는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공간감이 부족했다. 어떤 공간을 마주하고 곧바로 공간의 전개도를 상상해서 입체적인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는 수업 시간이 두려울 정도였다. 다른 동기들은 쓱쓱, 쉽게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리 눈을 감고 상상해도 전개도가 그려지지 않았다. 사물과 공간의 크기, 위치, 거리 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인 공간감은 공간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훈련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인내력 좋은 노력형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뭐든 동기들보다 두 배씩 더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늘 가방에 자투리 종이를 넣어 다니기 시작했고, 공간을 보면 항상 종이를 꺼내 자르고 접어서 입체로 만들며 감을 익혔다. 일상 속에서 지나치거나 들르는 공간이나 건물이라도 습관처럼 손으로 그곳의 전개도를 스케치하며 눈과 손의 협응력을 키웠다. 구조를 유심히 관찰하고 눈을 감은 뒤 건물 전체의 전개도를 그려 보기도 했다. 팀별 프로젝트가 많은 학과 특성상 실력이 뛰어나고 능숙한 동기들과 시간을 함께 보낼 기회가 많았던 점도 나를 도왔다. 도면을 특출 나게 잘 그리는 친구, 3D 모델링을 잘하는 친구, 기획과 아이디어가 유별한 친구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방식을 좇아 이리저리 따라 하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족한 만큼 나만의 강점을 키우려고 애썼다. 공간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대상은 물리적인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공간의 중심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만든 공간이 결국 좋은 공간이 되고, 좋은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건강한 에너지를 얻는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공간을 화려하고 멋지게만 만들려는 동기들과는 달리 나는 사용자가 가장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시야 구획과 설계, 움직임을 배려한 동선과 가구 배치가 무엇일지 늘 연구했고, 불필요할 만큼 인위적이고 과한 장식적 요소를 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바뀔지라도 공간과 사람이 어우러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모습을 그리며 끊임없이 연습했다. 그렇게 3년쯤 지나니 어느덧 내 실력도 차차 성장해서, 4학년 즈음에는 장학금도 탔고 졸업 작품 제출과 전시회도 무난하게 치를 수 있었다.
공간의 중심은 사람, 이라는 문장은 현재까지도 더 코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명제이다. 우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고 지속가능한 건축을 지향한다. 공간 디자인 사업에 뛰어든 이후,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며 만든 좋은 공간 속에서 긍정적이고 건강한 에너지를 얻어 행복해진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아직도 실측을 위해 현장에 가면 공간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고 느낀다. 그럼 나는 공간을 찬찬히 살피며 그 말을 듣는다. 그리고 공간 사용자가 될 사람의 삶과 일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간을 구축해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해 준다. 내게 말을 건 공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