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졸업을 앞두고는 포부가 컸다. 5성급 호텔과 고급 리조트, 공항, 백화점 등 대규모의 화려한 공간을 멋들어지게 설계하고 싶었다. 고학년이 되어 주차 타워를 직접 설계하거나, 자연과 건물을 유기적으로 풀어내는 팀별 프로젝트 여럿을 무리 없이 끝내고 학사모까지 받게 되자 이미 노련한 디자이너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구직 세계에 진입하자 얼마 되지 않아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5성급 호텔과 고급 리조트, 백화점을 설계하는 회사에 입사하는 일이란 수능을 다시 치러서 서울대에 합격하는 일보다도 어려워 보였다. 그런 회사들이 인턴 경험조차 한 줄 없는 나를 환영할 이유가 없었다. 욕심과 기대를 큰 폭으로 낮추고 경험부터 쌓아보기로 결심한 뒤 처음으로 취직에 성공한 곳은 역삼역에 위치한, 임직원이 총 8명 정도 되는 소규모의 건축 디자인 회사였다. 사무실 인테리어와 기업의 사옥 건축, 혹은 교회 같은 예배당 건물의 리모델링, 또 골프 클럽 라운지 인테리어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다루는 곳이어서 실무 경험을 쌓기에 적합할 것 같았다. 미처 한파가 가시지 않은 2월의 어느 날, 블라우스와 정장 치마 차림에 구두를 신고 역삼동 사무실에 첫 출근을 했다. 긴장감이라곤 한 톨도 없었고 외려 몸과 마음 깊이 충만한 자신감에 또각또각, 당당한 발걸음을 앞세워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떤 일이든 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갑자기 사무실이 아닌 공사 현장에 뚝 떨어지기 전까지는.
유일한 사수였던 설계팀장님이 결혼과 출산으로 휴가를 쓰게 되어 그 자리가 공석이 된 것이 시작이었다. 팀장님이 진행하고 있었던 공사비 100억 규모의 제약회사 사옥 건축 프로젝트가 온전히 나에게 이관되었고, 프레젠테이션 자료 준비와 피칭에 이어 별안간 “내일부터는 현장에 나가 샵 드로잉(현장에서 도면 작업을 지휘하는 일)을 하라”는 업무 지시가 내려졌다. 100억이 당최 얼마만큼 큰돈인지, 샵 드로잉이 무엇인지, 또 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생초짜 신입더러 당장 현장에 가라니 잠시 갸우뚱했지만, 답답한 사무실을 떠나 햇살이 가득한 바깥에서 일할 수 있다니 설레기만 했다.
다음 날, 막상 현장을 마주하자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됐다. 햇살은커녕 흙먼지만 풀풀 나리는 현장엔 여기저기 파헤쳐진 흙더미와 커다란 포클레인들, 그리고 흙먼지로 뒤덮인 컨테이너 박스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반장님들’이라 불리는 몇몇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내게 뭐라고 외쳤지만,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포클레인 소음 탓에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매캐한 분진을 푸푸 뱉으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내가 알아들은 말은 겨우 이 한마디였다.
시간 없어, 먹 도면 쳐서 가져와요.
먹 도면이라니?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나는 얼른 컨테이너로 들어가 노트북을 켜고 포털 사이트를 열어서 다짜고짜 ‘먹 도면’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로 나온 정보들을 훑으며 이것들을 어떻게 빨리 흡수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이내 노트북을 덮었다. 아무래도 반장님들께 툭 터놓고 솔직하게 얘기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편이 빠를 것 같았다. 나는 회사에서 온 유일한 담당자이자 건물이 완공될 시점까지 이들 모두와 동고동락할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모르는 것을 아닌 척 숨기는 건 내 성격과도 맞지 않았다.
그 길로 컨테이너 박스를 박차고 나가 흙더미 속을 돌아다니며 각 공정을 책임지는 작업반장님들께 하나하나 물어 가며 먹 도면을 치기 시작했다. 살갑고 열정적인 내 태도에 반장님들도 마음을 여셨고, 과연 수십 년간 전국의 갖가지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해 오신 최고의 베테랑들답게 노하우를 속속 알려주셨다. 그날, 나는 생애 최초의 먹 도면을 무사히 완성했다.
처음 느끼는 벅찬 감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현장에 돌아간 이튿날, 나는 너무 놀랐다. 어제 친 먹 도면의 내용이 현장에 그대로 구현돼 있었다. 그 순간,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내가 그리는 도면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현장의 모든 것은 올스톱 되었다. 각 공정의 반장님들과 인부들 모두가 내 도면만을 기다렸다. 무거운 책임감에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내가 이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그야말로 나는 현장의 지휘자였다.
그날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매일 현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도면 속 그림이 눈앞에서 바로바로 블록 쌓기처럼 이루어지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주말과 휴일까지 반납하고 내 현장, 내 건물이라 여기며 씩씩하게 출근했다. 나중에는 땅 속의 암석을 깨는 작업 때문에 컨테이너 전체가 흔들리고 골이 아파도 현장에서 의연하게 도면을 죽죽 그려대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어느새 삼촌처럼 친밀해진 반장님들의 간식을 손수 챙기고, 함께 먹으며 수다를 떨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궁금한 점들을 묻고, 배우고 연구하는 시간이 그저 신나고 보람차고 행복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을 현장에서 흙밥 먹어가며 보내자, 드디어 100억 규모의 사옥 건물이 완공되어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생초짜 신입으로서 하루아침에 현장에 뚝 떨어져 기획부터 설계, 디자인, 샵 드로잉에 현장 감리 감독까지. A부터 Z에 달하는 거대한 사이클을 완성한 결과가 눈앞에 모습을 나타냈던 준공일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정말로,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단단한 자신감이 가슴 가득 차오름을 느꼈다.
학부를 졸업하고 막 대학생 티를 벗은 신입 디자이너들을 데리고 현장에 함께 갈 일이 생기면, 그들과 비슷한 나이였을 적 나의 얼굴이 희미하게 겹쳐 떠오르곤 한다. 불안함과 묘한 설렘, 그러면서도 순수한 자신감과 열정으로 ‘먹 도면을 치던’ 생초짜 신입사원 백예진의 흙먼지 가득한 얼굴, 곧 지금 나와 코나의 얼굴을 만들어 낸 그 소중한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