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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Dec 10. 2024

엄마의 동치미

“미나리 잎은 다 떼고 줄기로 쪽파를 묶어~ 갓은 종종 썰어야 해.”

“삭힌 고추랑 생강과 마늘을 베주머니에 넣어~ 옳지 옳지~ 거기에 사과랑 배도 잘라서 넣고!”     



침대에 힘들게 앉아 계신 엄마는 

식탁에서 내가 동치미를 잘 담그는 지를 보면서 얘기하고 계셨다.       



“무는 단단한 무를 사야 하는데... 몇 단을 샀니?”

“11월 15일 즈음에 무를 항아리에 넣으면 좋아. 

딱 한 달 뒤에 맛있는 동치미를 먹을 수 있거든.”     



엄마는 갑자기 신나셨다. 

지금껏 환자라서 미안했는데

지금은 엄마로서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동치미 레시피를 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과하면 안 돼. 적당히... 그렇지... 적당히 소금을 넣어야 해.”     


엄마의 목소리가 크고 야무졌다. 

돋보기를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고, 

겨우 쓸 수 있는 오른손을 들어서 손가락으로 방향을 지시했다.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엄마를 보니, 눈을 감고 계셨다,     


“엄마~ 엄마~~”

“미안하다. 쓸모없어서...”

“우셔?”

“허탈해...”     


컨디션이 좋아서 레시피를 떠올릴 수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엄마랑 대화하면서 동치미를 담겠다고 부엌을 이 난장판으로 만들어놨는데...

엄마는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겨지셨는지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그런 엄마를 보면서.... 

철퍼덕 침대밑에 앉아 말을 하지 않고 눈물을 훔쳤다.     


아... 그 뭐랄까... 

표현할 수 없는...

한숨 나오는 그 상황... 

슬프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슬픈 거... 


10년 전... 2014년 김장김치 담그는 날


꽃교가 초등학생일 때였다. 

단독주택에 살 때 딱 한 번, 엄마의 동치미 담그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 


아빠가 수돗가에서 동치미 무를 씻어서 주시면

어린 꽃교가 하나씩 엄마와 나에게 가져다줬고. 

그럼 엄마와 나는 굵은소금을 무에 묻혀서 

땅 속에 있는 항아리 안에 차곡차곡 넣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동치미 담그는 게 번거로우니까  그냥 사 먹자고 했었는데, 

엄마가 쓰러지고 나니까 그 맛이 너무 그리웠다.  

엄마의 동치미는 그야말로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의 맛이었다.


때마침... 

목사님께서 돌아가신 장모님의 김장 김치를 먹고 싶은데, 

사모님께서 전수받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 

엄마의 맛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엄마가 천국가시기 전에 꼭 전수받아야 한다!

그래서... 

동치미 이벤트를 서둘렀다.      


사실 동치미 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만들었던 그 순서! 

그 순서가 중요하기 때문에...

고무장갑을 끼고 어설픈 주부 형상으로 

엄마가 했던 것처럼 차근차근해나갔다.      


“완성!!!”     



베란다에 하루는 숙성했다가 김치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날씨도 한몫을 거들어줘서  

갑자기 영하로 내려갔으니 옛 맛은 아니지만

얼추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2주일 후~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서 동치미국물을 떠먹어 봤는데... 

흠흠....

엄마 맛이 약간 배어있는 것 같당~

아직 무는 익지 않았지만. 국물을 한 국자 쭈욱 들이켰다. 

엄마도 작은 스푼으로 떠드리고 물었다.      


“엄마. 내 솜씨 어때?”

“(엄지 척) 내 딸이라서 최고야! 근데 좀 짜다! 생수 좀 넣어라!"     


엄마는 점심에 녹두죽과 함께 동치미 국물 한 공기를 후루룩 드셨다.      


”정원아. 내년엔 김장도 해보자!" 

"좋아!!"


제발 엄마가 건강하시기만 하면, 뭔들 못하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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