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힘들게 앉아 계신 엄마는
식탁에서 내가 동치미를 잘 담그는 지를 보면서 얘기하고 계셨다.
엄마는 갑자기 신나셨다.
지금껏 환자라서 미안했는데
지금은 엄마로서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동치미 레시피를 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목소리가 크고 야무졌다.
돋보기를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고,
겨우 쓸 수 있는 오른손을 들어서 손가락으로 방향을 지시했다.
그러다
아무 말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엄마를 보니, 눈을 감고 계셨다,
컨디션이 좋아서 레시피를 떠올릴 수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엄마랑 대화하면서 동치미를 담겠다고 부엌을 이 난장판으로 만들어놨는데...
엄마는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겨지셨는지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그런 엄마를 보면서....
철퍼덕 침대밑에 앉아 말을 하지 않고 눈물을 훔쳤다.
아... 그 뭐랄까...
표현할 수 없는...
한숨 나오는 그 상황...
슬프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슬픈 거...
꽃교가 초등학생일 때였다.
단독주택에 살 때 딱 한 번, 엄마의 동치미 담그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
아빠가 수돗가에서 동치미 무를 씻어서 주시면
어린 꽃교가 하나씩 엄마와 나에게 가져다줬고.
그럼 엄마와 나는 굵은소금을 무에 묻혀서
땅 속에 있는 항아리 안에 차곡차곡 넣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동치미 담그는 게 번거로우니까 그냥 사 먹자고 했었는데,
엄마가 쓰러지고 나니까 그 맛이 너무 그리웠다.
엄마의 동치미는 그야말로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의 맛이었다.
때마침...
목사님께서 돌아가신 장모님의 김장 김치를 먹고 싶은데,
사모님께서 전수받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
엄마의 맛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엄마가 천국가시기 전에 꼭 전수받아야 한다!
그래서...
동치미 이벤트를 서둘렀다.
사실 동치미 담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만들었던 그 순서!
그 순서가 중요하기 때문에...
고무장갑을 끼고 어설픈 주부 형상으로
엄마가 했던 것처럼 차근차근해나갔다.
베란다에 하루는 숙성했다가 김치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날씨도 한몫을 거들어줘서
갑자기 영하로 내려갔으니 옛 맛은 아니지만
얼추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2주일 후~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서 동치미국물을 떠먹어 봤는데...
흠흠....
엄마 맛이 약간 배어있는 것 같당~
아직 무는 익지 않았지만. 국물을 한 국자 쭈욱 들이켰다.
엄마도 작은 스푼으로 떠드리고 물었다.
엄마는 점심에 녹두죽과 함께 동치미 국물 한 공기를 후루룩 드셨다.
제발 엄마가 건강하시기만 하면, 뭔들 못하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