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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동하다 Jan 09. 2020

담백함을 원합니다

적당히 거리두는 배려


비오는 날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날은 외부에서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로 냅다 소리를 지르는 상사의 화를 받아냈고

회사로 복귀하니 조직 개편으로 우리 팀이 일은 그대로인 채 인원이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망했고 억울함도 있었다. 


회사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스무발자국은 갔을까 

전에 일어난 일에 몰입해 있었다. 

차 한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폭의 보도를 지나갈 때였다. 

'내가 오른쪽을 안 보고 건넌 거 아닌가'하고 아차 했을 때 

어떤 힘에 부딪혔고 내쳐졌다. 

그날의 불운이었다. 


바퀴에 깔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 옆으로 쓰러진 오토바이

다가와서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를 일으키며 괜찮냐고 묻던 두명의 남자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나온 철사로 엮은 바구니가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동료를 애타게 불렀고 

네 번 정도 부르고 나서 그들이 이쪽을 봤다. 

그리고 앰뷸런스를 타고 대학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얼마 전 팟캐스트를 통해 어떤 작가는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했을 때 앰뷸런스를 타면서 아 이 경험도 나중에 쓸 수 있겠구나, 했다는데 구급 요원이 어떻게 넘어졌느냐고 물었는데 그것마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소설가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아마 소설가에게 소재를 찾기가 기자에게 기삿거리 찾는 것만큼이나 고된 일이었으니 그랬을 거다. 


병원에 와서 엑스레이를 찍고 응급실 역시 대기를 해야 하고 혼자 옷을 입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너무 억울했다. 오늘 내가 그 화를 받아내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 있었을까 하는 감정이 컸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이미 사고는 일어난 불운이다. 


이후 입원을 했다. 

회사에서 양해를 해줬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당연한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할 수 있지만 나보다 더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사고에 대해서는 충분히 위로받고 싶지만 

입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적당히 해줬으면 한다. 

내 고통이 입원 며칠짜리인지를 가늠하거나 평가하는 건 싫다. 


어디가 아픈가, 이상의 질문은 싫다. 

특히 회사 동료에게서 전치 몇주가 나왔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는 

캐묻는 질문처럼 들려 아직 진단서도 끊기 전이지만 넉넉하게 말해두는 게 낫겠지 하며 

마음이 바빠졌다. 


또 다른 이들은 나이롱 환자를 대하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정도면 일반 병원이면 수술을 해야지 나오는 기간인데... 

팔자가 좋다는 반응이다 

보험금을 과다 청구하는 환자들이라는 주제의 기사를 접하는 사람이 아닌

내 친구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싫다. 


차라리 어느 정도 거리를 둬 배려하는 담백함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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