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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동하다 Jul 27. 2021

눈치보다가 어느덧 8년차가 됐다

8년을 일하며 얻은 건 '조심성'뿐


업무 시간이 끝나고 부장이 전화를 했다. 


"내가 아까 실적 기사를 하나 보면서 너에게 몇 번이나 카톡을 했지?"

"꽤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다 다음 라운드에 접어든다. 


"너가 올해 몇 년차지?"

텀을 두고 대답한다. 

"8년차 입니다...." 

"너 8년차면 그래서는 안 돼. 그 연차면 니 기사를 하나도 안 보고도 넘길 수 있어야지."


부장에게는 8년차 기자가 5매짜리 기사에 조사나 목적어나 이런 저런 것들을 놓쳐서 여러 번 연락을 하게 하는 것을 당장 전국 부동산 가격이 오르거나 삼성전자가 인텔에 맹추격을 당하는 문제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물론 문제다. 

나에게 천성적인 완벽함이 부족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누구보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결국 실수를 해서 연락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룰(그가 심지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은 룰이라도)을 따르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인 나는 이미 송고한 기사더라도 지면에 실리는 기사를 중시하는 부장의 특성상 지면에 기사가 잡히면 다시 퇴고를 하는 데 쓰는 시간 만큼의 시간을 들인다. 


그간 내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애써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 그가 중요시하는 부분은 따로 스티커 메모에 올려놨던 나의 노력들은 무엇일까. 다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던 게 제일 크다. 지금까지 나의 상사가, 나의 평가자가 싫어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 위해, 맞추기 위해 나를 맞추는 데 노력했다. 하지만 문득 상사의 흔한 훈화 말씀을 듣다가 아 내가 눈치만 보다 8년차가 되었구나... 되어버렸구나...를 실감했다. 



아이에게서 가끔 내 모습을 본다. 

타인이 자리하는 공간에서 아이는 무언가 새로 행동을 하기 전에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면 자신감을 얻어서 하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 소극적으로 행동한다. 아이에게 눈치를 준 적은 없지만 어쩌면 아이는 나의 성향을 그대로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에게 좀 더 적극성을 발휘해봐, 쫄지 말고 행동해, 라고 한다면 아이에게는 자신의 성향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결과를 낳게 되겠지.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거울 같은 내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짠함이다. 

나는 저렇게 직장에 온 뒤 몇번의 시행착오 아니면 무수한 시행착오를 보내면서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으로 자라났겠구나

그렇게 눈칫밥 만큼의 연차라는 걸 먹었겠구나 하는 짠한 감정 말이다. 


기본적으로 잔소리가 많은 상사를 만나면 나는 위축이 되어서 흠이 잡힐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수세적으로 변했다. 

적극적으로 무엇을 찾아서 하기 보다도 

어떤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그의 심기를 더 많이 살피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실수는 한다. 

그리고 그에게 거슬리는 부분이 참 많다. 


과연 그가 말하는 8년차(계단식 성장 혹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는 전제)가 

지금의 시스템에서 길러질 수 있었을까. 

과감함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에게는 싫은 소리를 들을 때

한쪽의 스위치를 끄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고 

기사를 쓰다가 그가 시키는 일을 알아보고 

또 그 와중에 하루에 일정 정도의 자료를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추가로 내가 놓치는 기사는 없는지 살피고

멀티태스킹의 연속이다. 

그 결과 오늘도 본부장(전무)는이라고 쓰거나 ERP 분야에서 두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에서 분야를 빼먹거나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전히 잘하는 직장생활, 조직생활은 모르지만

너무 눈치를 보다가 

나의 우상향 그래프를 놓쳤다는 생각 하나는 확실히 든다. 

1년차에 비해 나아진 점은 조심성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그만하면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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