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의 여행

21. 역마살을 학구열로 푸는 나를 발견한다.

by 봄에

여행의 시작에는

앞으로 무엇을 채울 거라 던졌다면,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내 인생을 얼마큼 채웠다고 적었다.





엄마가 돼서 육아휴직으로 쉬게 되니 시간이 많아졌다.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게 사라지니 심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일하고 있었다. 남편도, 회사 동료도, 친구도, 더구나 엄마도. 늘 누군가에게 놀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우유 먹고 잠자고 가 하루 일과인 아이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대화하지 못해서 답답했다. 낮의 카페는 한가하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게 내 하루 일과였다. 육아휴직 중이라 궁핍했지만 카페에 꼭 나갔다.


5년 차쯤부터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공에 대한 고민이 늘 생겼다. 일기를 쓰다가 전공에 대해서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생각들을 써보지만 이게 맞는 것인가? 남들도 나처럼 생각할까? 등등의 걱정을 했다. 나는 늘 대학원에 다시 가겠노라 생각했지만 동기부여가 명확하지 않아서 지나간 꿈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내 생각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는 재건축, 재개발 관련된 실무를 하는 사람인데 꼭 기존 것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하다가 상사에게 재개발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하면, 우리가 맡은 역할이 그것을 그려야 하는 입장이니까 시키는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더 이상 내 궁금증을 회사에서 표출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되는데 더하면 오버였다. 대학원에서 시킨 것을 더해가면 열정이었다. 학교는 궁금한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답을 찾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 줬다. 회사에선 급여받고 일하니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맞지만 학교는 내 돈 내고 자기 공부하는 거라 마음껏 생각해도 되서어 학교를 다니는 동안이 머릿속은 훨씬 편했다. 엄마가 돼서 고립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학교에서 계속 사람들을 만나니 내 삶이 흐르는 것 같았다.





결혼 후 남편에 적응하기도 전에, 시댁에 적응하기도 전에, 아이에게도 적응하기도 전에, 지금 나를 내려놓으면 평생 나를 챙기지 못하고 살 것 같아서, 내 질문에 대한 답만 찾자면서 무작정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결혼한 지 1년이 되기도 전에 아이를 낳았고, 대학원에 원서를 냈고, 건축사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돈이 떨어져서 복직했다. 결혼과 동시에 나는 엄마, 대학원생, 학원 수강생, 워킹맘이 되었다. 매일같이 내 위치를 옮겨 다니면서 다른 역할로 살았다.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 한 학기만 참자. 이번 시험만 참자.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 거의 끝났으니까 조금 더 참자. 하면서 미래의 에너지를 갈궈 먹은 것 같다. 쉬고 싶어도 지금 쉬면 다음 시작은 더 힘들 것 같아서 쉬지도 못했다. 지나 보니 그때가 정말 힘들었었다. 정말 바빠서 나는 내가 어디가 아프고 힘든지도 모르고 지냈다. 가끔 할 일이 없어지면 되게 우울해졌다.


결혼해서 비행기를 타본 적 없지만 학교 가는 지하철은 자주 탔다. 회사와 집 말고 갈 곳이 있다는 게 좋았다. 1학기가 끝날 무렵 체력이 바닥난 것을 심히 우려했지만 방학이 와서 쉴 수 있었다. 다음 학기부터는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여행은 못 같지만 나는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녀올 만큼의 비용을 학비로 썼다. 그래서 더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지나 보니 대학원 생활도 여행 같았다. 역마살을 학구열로 푸는 나를 발견한다. 20대 때는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무엇인가를 배웠지만, 30대 때는 정착해서 궁금한 것을 찾아 읽는 중이다. 아이들이 크면 함께 여행하는 날이 오겠다며 다시 걷는 날을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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