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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Mar 16. 2019

입사 1년 차, '퇴사'라는 것을 해보다

이직과 퇴사 사이, 나 자신에게 묻다


2016년 7월,


일 년에 딱 한 번 길게 쉴 수 있는 기회인 여름휴가 시즌. 많은 선후배들이 이미 휴가를 떠나 반쯤 비어있던 사무실에서 나는 내 자리에서 홀로 몸을 덜덜덜 떨고 있었다.


호기롭게 팀장님, 지점장님, 인사팀장님까지 퇴사한다고 줄줄이 말씀드려 놓고, 사직서까지 완벽하게 제출해놓고는 막상 퇴사 날이 되니 덜컥 겁이 나버린 것이다. 그 때 난 어딘가 무서워진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오묘한 감정이 버무려져있었다.



(좌) 후배 기수 인적성 감독관 지원 (우) 신입사원 수료증


뉴스 단골 소재인 한국 취업 시장에서 그 어려운 취업라는 걸 악착같이 해내고,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쁨의 눈물마저 고였던 그 회사인데.


춥디 추운 겨울날 2개월 간의 인턴을 마친 후 함께 했던 불합격 동기들을 떠나보내기도 했고, 정규직으로 최종 합격된 후에도 장장 8개월이라는 길고 길었던 시간을 신입사원 연수와 프로젝트로 보냈다. 그 결과 백화점의 얼굴이라 불리는 1층 잡화층 관리자로 배치를 받아 근무하고 있었지만 계속 스스로에게 의문이 있었다.


'정말 바쁘고 힘든데, 재밌지가 않아'
'10년 후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20대를 이렇게 이대로 보내도 되는 것인가, 난 무얼 해야 재미있고 행복한가. 대학생 때는 어떤 것에 가슴이 뛰었나하는 생각이 들어 주말 카페에 앉아 노트를 폈다.


그리고선 펜을 들어 대학교 신입생 때 부터 내가 활동했던 것들과 즐거웠던 것들을 몽땅 나열해보았다.


그 중 좋아했고 행복했던 기간은 의외로 대학교 3학년을 마친 후 휴학했을때, 스펙으로 채워넣을 경력이 필요해서 근무했던 PR 에이전시. 즉, 홍보대행사였다.


홍보대행사 어시스턴트 시절, 촬영 지원 나갔던 콘텐츠가 아직도 구글 검색 상위에 잡힌다


나는 여기서 계약직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주요 업무는 기자나 파워블로거들에게 고객사의 제품을 보내고 받는 것. 그리고 잡지 클리핑이었다.지극히 작은 포션이었지만 오며 가며 선배들의 데일리 워크 라이프를 볼 수 있었다.

*클리핑: 신문이나 잡지 등에 나온 고객사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일.


이 경험을 떠올리면서 내가 원하는 근무 환경은 무엇일까 정리해봤다.


- 다양한 클라이언트

- 재밌는(의지가 생기는) 업무

- 그리고 내가 자극받는 열정적인 사람들




내가 퇴사를 한창 고민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도 그 때 나를 예뻐해주셨던 본부장님이 나와 새로 차린 홍보대행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출근한 지 벌써 2년 반이 넘었지만 언제나 업무는 쉽지 않다. 내가 몸담고 있는 PR회사의 업무는 대략 아래와 같다.


홍보대행사의 가장 큰 장점: 다양한 업무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


1. 제안서 작업(일을 따와야 일을 한다)

2. 온오프라인 캠페인, 이벤트 기획(대중의 참여와 호응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3. 영상 기획 및 촬영(사실 현장에서 화제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산은 더 중요하다)

4. SNS 채널 운영(기획, 촬영, 편집, DM 응대 등)


정말 간략하게 표현을 한 것인데, 정말 다양한 스콥의 일을 하고 있다.


큰 기업의 중장기 브랜딩 전략도 세워보고, 로고도 개발하면서 대학생 서포터즈들과 함께 한 시즌을 무사히 보내야하기도 한다. 온갖 재밌는 일들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최고다. VR을 벗으면 화면에서 보던 장면이 현실에서 딱! 하고 튀어나와 깜짝 놀래키는 이벤트와 영상을 기획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특정 추억에 해시태그를 달아 올리게 해서 작가가 직접 SNS를 확인해서 작품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단,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의 논리는 정말 탄탄해야한다. 이 두 가지 장점을 해내기 위해서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많이 어울리기도 하고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PR회사의 장점을 꼽자면 일단 다양한 고객을 만나서 다양한 일을 한다는 거다. 일반 소비재부터 공항, 정부사업, 외국계 브랜드까지 성격도, 하는 업무도 다르다. 그래서 난 요즘 사람들이 무얼 하고 사는지 항상 궁금하다. 그래서 평소에는 어려운 책이나 팟캐스트도 듣고 일부러 인기 많은 원데이 클래스로 수채화를 그려보기도 한다. 아, 을지로 레트로 클럽에서 옛날 디제잉에 맞춰 막춤도 춘다.




퇴사 후 이직의 경우 사람마다 케이스가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이직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점 중에 하나는 누군가를 새로 만났을 때, 혹은 친척들에게 나의 직업을 소개할 때였다.


"ㅇㅇ다니는 누구입니다." 라는 간단하고 확실한 소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직장인들의 어플인 블라인드에서는 회사명이 곧 내가 된다. 우리 회사는 규모가 작아 '스타트업'으로 분류된다.)




퇴사를 고민하기 전에는 아래 3가지를 꼭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1. 사내에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선배가 있는가?

2. 나 스스로 일에 대한 만족도가 있는가?('높은가' 도 아니다)

3. 사내 업무 시스템, 복지는 합당한가?


나는 위의 고민과 판단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 같다. 퇴사를 고민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고민을 이야기 해봤는데, 각자 조언은 다르지만 의외로 의견이 모아지는 부분은 퇴사하고 이직하는 것보다 이직을 결정짓고 퇴사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1. 돈이 바닥날수록 '아무 데나' 갈 확률이 높음

2. 연봉 협상 시, 재직 여부가 협상의 카드가 될 수도


생각보다 퇴사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퇴사를 하면 세상이 멈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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