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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솔 Oct 23. 2018

나는 사람의 표정이 우주보다 좋다.

<퍼스트맨>, 2018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은 왜 미지의 것을 정복하고 싶어 할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도 올라야 하고, 바다 너머 대륙 횡단도 해야 하고, 달에도 가봐야 했고, 기왕이면 ‘최초’의 타이틀이 달리면 가장 완벽하고. 지난날 수많은 인간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찾아보진 않았지만 저런 제목의 책도 지나가다 본 것 같다. 의구심은 답이 나지 않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니, 지금 이 순간 나도 매우 인간스럽다. 최근 에베레스트 산 등반 중 안타까운 목숨들이  떠났다. 우선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이 먼저 떠올랐다. 사실 두 번째 문장 앞에는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면서까지’라는 말이 생략되었다. 다소 미움 섞인 물음이라 할 수 있겠다. 산을 오르는 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는 결과가 죽음이라는 사실보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아주고 싶다. 탐험도 사랑만큼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인간 본능이다. 그것을 따른 사람들에게 '왜 갔어?'라며 무턱대고 원망만 할 수는 없다. 언제나 산 사람의 마음이 슬프고, 간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런데 세상은 명분 없는 불만과 의심, 인간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기반하지 않은 탓과 미스터한 설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하다.  



아주 유사한 일에 관한 영화를 보았다. 몇 주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퍼스트맨>을 만난 것.(한국에서 처음 관람한 관객인 것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다시 한번 내가 인간임을 느낀다) 달에 처음 걸음을 남긴 닐 암스트롱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기까지의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찍었다. 실제로 클로즈업 샷이 많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이야기를 타이트하게 보여준다는 말이다. 스크린에 우주를 꽉 채우기보다 닐이 좁은 우주선에 달린 작은 창문 크기로 우주를 마주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 좋았다. 큰 것을 작게 보여주니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어 압도적이었다. 흔들리는 우주선과 엄청난 강도의 훈련, 정신력으로 견뎌내는 닐 암스트롱의 상황은 4D를 보는 듯 생생했다. '이 사람은 이랬던 거야'를 이해시키려는 듯했고, 적어도 나에게는 대성공이라는 단어 이상으로 다가왔다.


닐 암스트롱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은, 늘 그래 왔지만, 고민 또는 고뇌에 빠진 인간의 얼굴을 완벽히 보여줬다. 다른 어떤 영화적 장치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배우의 연기가 미장센 중에 미장센이라고 생각한다.) 입을 다문 채로 이를 세게 물어 관자놀이 근처에 핏줄 모양이 나타나는 때나, 부인 자넷이 집에 돌아올 수 있냐고 묻자 어떤 답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심정을 무표정에 담을 때나, 무사히 귀환해 그토록 보고팠을 얼굴을 마주했을 때도 터지는 감정 대신 멀리서 그리워하는 듯 그저 바라보며 아끼던 순간이나. 그러니까 드러내는 속성이 없는 참아냄을 얼굴에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만 아는 것을 관객들도 느끼게끔 하는 배우다. 영화로 사람을 체험했다고 표현하겠다.



영화 속 자넷 암스트롱의 설정에 눈이 갔다. 만약 나라면 저런 표정을 짓고 저런 마음으로 저렇게 행동했을 것 같다는,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우주에 남편을 내보낸 기관에다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며 기대지 않고 반려자인 닐 암스트롱의 상황에 처해 본 적도 없는 당신들이 뭘 아느냐고 당당히 소리 지르는 모습이 좋았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목숨을 담보한 비행을 나가는 남편을 울면서 안아주지 않고, 아이들을 대면시켜 가정에 얼마나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인지 알게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닐이 원망스럽지 그럼. 크게 보면 대의를 위해 달로 떠나는 것이지만 행복한 가족에겐 집을 떠나는 일이다. 자넷 역에 클레어 포이의 내면 연기가 참 좋았다. 실제 자넷은 캐릭터 자넷과 비슷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어울리는 커플 같다.


영화는 그가 달에 가기까지 일어났던 많은 감정적 사건을 중심으로 그려냈다. 달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향한 인류의 열정을 느끼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이 영화는 닐 암스트롱 이야기다. 정말로 달에 가는 이유가 그 일의 본질인 ‘그곳을 가보고 싶다’는 인간 욕구에 의한 것이라면 거대한 그림이나 서사를 나열하지 않아도 된다. 그 당시 달을 먼저 정복해야 한다는 소련과 미국의 승부욕과 실제 달 착륙 여부에 대한 음모론 등이 바로 본질 이외의 욕구가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에  대서특필로 남겨진 일들은, 멋진 발견이든 끔찍한 짓이든 간에, 순수한 의도로 이뤄진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 대 국가, 지역 대 지역, 가문 대 가문, 인간 대 인간의 자존심이 걸려 있고 그 싸움에서 지면 상대의 아래에 위치해버리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정치질'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만약 <퍼스트맨>이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하이라이트로 보여줬다든지 닐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을 미국의 자존심 일부로 여겨지게 내버려뒀다면, 대단히 실망했을 것이다.


지금 사용하는 휴대폰을 산 이후 지금까지 우주와 달이 배경화면이고, 바로 어제 달 목걸이까지 구매한 달 덕후로서 미안하지만 나는 우주보다 사람의 표정이 좋다. 인류나 국가의 위대한 도전에 숨겨진 여러 이해관계를 이해한다만 일의 본질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묵살당하기 쉬운 소수를 따를 것이다. 그러다 이렇게 달 가는 이가 탄생하기도 하지 않는가. <라라랜드> OST 전곡을 들으며 이 글을 썼다. 중간에 미아와 세바스찬이 그린피스 천문대에서 우주 속을 나는 장면에 삽입된 'Planetarium'을 들으며 그 속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것만 같은 시간도 있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꿈과 우주와 사랑을 참 좋아한다. 나는 그것들을 미친 듯이 사랑하고, 또 그것을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한다. 당분간 우주의 인간미에 빠져 지낼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를 체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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