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솔 Feb 19. 2019

연인은 영원할까?

<혜영, 혜영씨>

*자세히 묘사했으므로 스포일 수도 있습니다


오오 극장 4주년 특별전에 가서 <혜영, 혜영씨>를 봤다. 성우와 혜영 두 사람만의 이야기에 집중한 영화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성우는 혜영을 혜영 씨로 불렀는데 연인이 되고 나서 혜영이라 부른다. 관계라는 것은 맺은 뒤부터 계속 변한다. 재밌는 점은 한 번 변한 것은 이전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혜영 씨에서 혜영이 될 수는 있지만 계속 혜영 씨- 하기에는 우리 사이가 갈수록 가까워지므로 혜영의 말을 빌리자면 토 나올 것 같고, 혜영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혜영 씨로 늘려 말하는 것은 아주 어색하다. 그러니까 짧아지고 잃어가는 우리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줄어드는지도 모르다가 사라지게 된다.  



영화 끝에 성우는 혜영과 손을 잡고 있다. 아마 는 꿈꾸는 중이다. 혜영 없는 방에 남은 것은 혜영의 흔적뿐이기 때문이다. 흔적은 대체로 '남아 있다'라고 표현한다. 없어진 것은 있도록 만들기 어려우니 떠난 자국이라도 존재시키고 싶은 것일? 성우가 혜영과 헤어지고 노래방에서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울상으로 열창하는 장면이 번뜩인다. 예전에 혜영이 성우를 안고 불러주던 노래다. 성우의 옛 애인 혜성은 성우와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흥얼거렸다. 이 노래는 그들이 서로에게 남긴 자국 중 하나인 것이다. 같이 있어도 혼자가 되어도 마음에 바람이 휭휭 부는 사람들. 어쩌면 흔적은 누군가를 껴안을 때부터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혜영과 성우가 사랑이 영원하냐 마냐 설전을 벌였다. 사랑은 사랑을 가진 사람의 논리에 따라 모양이 바뀌어서 둘 다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봄날, 우리가 영원할 것인지를 논했을 때가 떠올랐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식의 연상이 계속됐다.) 멀리 떨어져 있던 날, 같이 보던 드라마의 결말에 나는 만족스러웠지만 너는 불만이어서 왜 그런지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멍청해서 마음에 들었던 순간들도 떠올렸다. 연락한 이유가 '그냥'이었던 마음을 이해했다. 몰랐던 것을 덕분에 배웠는데 이제는 원래 알고 있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내 것이 된 일상의 단편들을 생각했다.



영화는 지난 연애를 떠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둘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거의 방 한 칸 안에서 진행되어 자세했고, 흑백의 화면이 여러 가지 색으로 분산되는 정신을 더 집중시켰다. 감독은 예산이 부족해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했으며 색에 자신이 없어 색을 뺐다고 했다. 독립 영화의 최대 장점이자 슬픈 점은 쪼들림에서 나오는 멋이다. 감독이 지금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돈 많이 벌기를 바랐다. 마침 영화를 본 날은 최초 상영이자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나는 누가 울면 따라 운다. 영화를 감사히 본 관객으로서 많이 힘들었을 배우와 감독에게 진심의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큰 몸에 비해 심장이 하리보 젤리 만해서 제대로 그러지 못했다.



<혜영, 혜영씨>는 단편 <혜영>에 이야기를 덧붙여 장편으로 만든 것이다. <혜영>에서는 혜영과 성우가 이별하며 끝난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었겠지만, 장편에서는 과거를 보여준다. 성우, 혜영의 시작부터 해서 어떻게 둘만의 습관과 장난이 생겨났고 감정이 예뻤다 상했다 했으며 어떤 배려와 힘듦이 있었는지를 그린다. 오랜 연인의 이야기는 역사와 같다. 어에 복잡한 관계를 말하는 표현으로 "We have a history"가 있는 이유다. 단편보다 장편의 혜영과 성우가 더 좋았다. 그들의 시간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흔적이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나서 웃긴 여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