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솔 Mar 26. 2019

저주하는 이유

<킬링 디어> 2017

※ 자세히 묘사하였고, 스포일러일 확률이 높습니다.

저주를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비는 마음이 바람으로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문화와 신화로 만들어져 왔다는 것에 흥미를 가진다. 누군가 바랐던 불행이나 재앙이 실제로 그 대상에게 일어나는 일도 분명 존재한다. 대부분 믿음의 문제거나 우연한 상황이라 생각하는 편이지만, 하나의 예로 나의 이모가 겪은 일들을 곁에서 지켜봤으므로 가끔 저주의 힘을 인정하고 있다.      


땅을 산 사촌에게 느끼는 질투에서부터 정치 목적 달성지, 저주는 소망을 달성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인간의 경우 악인의 멸망을 위하여, 선인을 질투하여, 권력을 가지기 위한 이유 등이 있다. 신은 어리석은 자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부정적인 미래를 예언하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와 책과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모르는 새에 어릴 때부터 저주를 익숙하게 접해온 것이다.      



샤를 드 라포스의 '이피게네이아의 희생'

<킬링 디어>는 그리스 신화 ‘이피게네이아’ 속 저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군 지휘자였던 아가멤논은 전쟁 전 사냥을 즐기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이게 된다. 이에 노한 아르테미스는 그리스군의 출항 날 바람을 멈추게 만들었고 아가멤논의 군대는 배를 띄우지 못하였다. 저주를 풀려면 아가멤논은 딸 이피게네이아를 여신에게 제물로 바쳐야 했다. 제물대에 올려진 이피게네이아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 아르테미스는 사슴으로 제물을 바꾸었다. 그녀를 가엾게 여겨서다.

     

포털 사이트에는 이피게네이아 신화가 간단히 적혀있다. 아가멤논이 실수로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사냥했다는 곳도 있고, 사냥한 사슴이 우연히 아르테미스의 것이었다는 데도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렇다. 아가멤논은 전쟁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데도 출항 전에 사슴 사냥을 즐겼다. 또 사냥하러 간 숲이 아르테미스의 성역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지만 무시하였다. 아르테미스는 건강을 뜻하는 ‘아르테메스’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숲과 풍요의 여신이자 출산을 돕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신이 한 인간의 실수 따위에 대노하여 괴롭힐 리 없다. 그녀의 저주는 아가멤논의 오만함을 혼내려는 의도였다.



영화에서 스티븐의 가족 중 한 사람을 죽어야만 마틴의 저주가 풀리는 서사가 신화와 닮아있다. 마틴의 저주는 이렇다. 스티븐이 딸이나 아들이나 아내를 죽이지 않으면 가족이 모두 첫째, 하반신이 마비되며 둘째, 먹는 것을 거부하여 기아 상태가 될 것이며 셋째, 눈에서 피가 흘러 죽게 된다는 것이다. 저주한 이유는 마틴의 아버지가 의사인 스티븐에게 수술을 받다 사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족 한 명이 스티븐으로 인하여 죽었으니 스티븐 가족도 한 명 죽어야 균형이 맞는다고 마틴은 말한다. 균형이 맞으면 정상이 될 거라 했다.


중요한 사실은 스티븐이 마틴 아버지의 심장을 수술하기 전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아가멤논이 전쟁 전 사슴 사냥을 나간 일과 비슷하다. 스티븐은 죽은 환자의 아들인 마틴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도 사과하는 모습이나 마틴과 어떤 관계인지를 가족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이것은 아가멤논이 신의 숲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사냥을 계속한 행위와 같다. 기묘한 마틴의 얼굴은 무표정에 속을 알 수 없어 보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소름 끼쳐온다.



세 번째 저주인 피눈물이 아들 밥에게서 흐르자 스티븐은 결단을 내린다. 누가 죽을지 모르는 러시안룰렛 게임처럼 아내와 아들과 딸을 둥그렇게 앉혀놓고 눈을 가린 채 빙글빙글 돌며 아무 데나 총을 쐈다. 아르테미스는 제물대에서 이피게네이아와 사슴을 바꿔치기했다. 그러니까 딸과 아들과 아내 중 살아남는 사람이 이피게네이아고, 죽는 사람은 바꿔치기한 사슴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이 피하려는 모습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여 본성이 드러나도록 이야기를 쌓아 영화로 표현하는 일이 매력 있다고 한다.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나 토론에서 얻는댔다. <킬링 디어>가 신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로 잘 알려졌지만 나는 감독의 이런 이야기들이 신화의 구조를 빌렸을 뿐이라는 사실이 더 유명했으면 한다. 그남이 그리스 출신이라는 사실도 재밌다. 나의 고향이 으리으리한 전설과 신화의 터전인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였다.


<킬링 디어>는 유독 한국어로 번역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찾기 힘들다. 유튜브에서 영어로 된 인터뷰를 수없이 돌려가며 이해했을 만큼 이 영화는 흥미롭고 탐구할 만하였다. 평소 자주 하는 생각이 감독의 고민과 비슷하다. 다음은 요르고스의 유명작 중 하나인 <송곳니>를 감상할 계획이다. 거기에 나오는 시험대에 서서 나는 또 어떤 새로운 공부와 생각을 하게 될까. 오늘은 신성한 사슴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여운을 쓰다듬는다. 아르테미스의 무서움과 상냥함도 곱씹는다. 무겁고 예민한 영화에게 받은 호기심을 안고 잠드는 밤이 희망차다.

매거진의 이전글 랍스터와 여왕과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