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오로라를 보고, 그 다음에 스리랑카에 간다고?
러시아에서 오로라 헌팅을 하고,
모스크바와 두바이를 거쳐 스리랑카에 간 후,
말레이시아 경유를 해서 한국에 돌아온다는
말도 안 되는 여행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이 세상에 대체 어디 있을까?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여기.
사건의 발단은 201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러시아 친구들까지 사귀며,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나온다는 러시아뽕에 차버린 나와 내 친구 C. 급기야 여행이 끝나자마자 러시아 여행각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바로 이 두 가지.
1. 러시아에서 오로라 헌팅하기
2. 10년 뒤 다시 횡단열차 타러 오기
여행을 한참 못가 몸이 근질근질하던 우리는 2019년 여름, 러시아에서 오로라 헌팅을 한다는 1번 계획을 놓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기간을 설정하고 상세 계획을 짜려니 크게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친구 H의 얼굴을 보러 스리랑카에 들러야 하는가였다.
러시아와 스리랑카라는 여러모로 생소한 여행조합. 게다가 비용적으로도 돈이 더 드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입이 방정인 내가 H에게 뱉어놓은 말이 있었기에, 결국 C와 나는 러시아에서 추위에 떨며 오로라 헌팅을 하고, 스리랑카에 가서 여름을 즐기다가, 한국에 와서 다시 혹독한 겨울에 적응하는 요상한 여행루트를 택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우리 여행의 최종 루트:
바쁘다는 핑계로 예약을 미루고 미루다가 여행 두 달 전인 2019년 10월, 드디어 나와 C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와 숙소, 러시아에서 탈 기차를 예약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마린스끼 극장에서 볼 <호두까기 인형> 발레 티켓을 예매했다.
준비물은 12월이 되어서야 슬슬 챙기기 시작했다. 추워서 감기에 걸릴까 하는 게 우리의 최대 걱정거리였기에 옷을 단단히 챙겼는데, 러시아에 가보니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서울이 모스크바보다 춥다더니...)
이렇게 대강의 여행준비가 끝났다. 세부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2019년 12월 19일, 러시아의 문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