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스물네 번째 이야기
월요일은 아니지만 레단으로 갔다. 글을 가르쳐 주기로 한 아이들과는 매주 월요일에 만나기로 했지만, 삼 주 정도만에 흐지부지 됐다. 일단 나나 E나 직장을 다니고 출장과 외근이 잦은지라 매주 월요일마다 시간을 내서 나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들도 요일과 시간을 딱 알고 어디 한 곳에 모여 있지 못하다 보니 우리가 맞춰 가더라도 흩어져 있는 아이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만날 수가 없었다.
레단에 도착하자마자 길거리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를 부르려다 놓쳐 버리고 뒤따라 가던 아이들과 마주쳤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오늘은 클레이로 키링을 만드는 것을 가지고 갔다. 소근육을 잘 써야 하는 활동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다.
시작하기 앞서, 미리 사온 물티슈를 나눠주었다. 클레이를 만져야 하는데, 손이 너무 더러워서 클레이가 새까매질 것 같았다. 하얀 물티슈가 아이들의 손에 닿자마자 까매졌다. 아이들은 까매진 물티슈를 망설임 없이 길바닥에 던졌다. 황급히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여기 주워 담으라고 했다. 이래서 물티슈와 비닐봉지는 하나씩 꼭 들고 다녀야 한다.
길가에 쪼르르 앉아서 만들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자기는 할 줄 모른다고 연신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찬찬히 알려줄 테니 잘 보라고 했다. 미얀마 유치원과 한국 어린이집에서 일을 해봤는데, 미얀마 아이들은 뭔가를 주면 설명도 듣기 전에 "나 이거 못해요. 해줘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도 자동으로 나오던 말이 "할 수 있어. 잘 알려줄게 들어봐."였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해 보는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건지 일단 못한다고 다 해달라고 뒤로 빠지는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는다.
내가 이런 아기자기한 활동을 가져오는 이유는 아이들이 좋아해서도 물론 맞지만, 아이들에게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다. 잘 하든 못 하든 내가 내 손으로 예쁜 것을 만들고 감상하며 기뻐하고 뿌듯해하는 경험! 그런 경험이 쌓였을 때 새로운 것이 주어져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한 번 붙이고 나를 보고 "이렇게?" 묻고 한 번 붙이고 "이렇게??" 물었다. ㅋㅋㅋ "잘한다~ 꼼꼼하게 하네~" 하며 내 딴에 최선의 어휘를 고르고 골라 아이들에게 칭찬해 주려 노력했다.
자기는 친구들이 하는 거 보고 집에 가서 동생들이랑 할 거라며 챙겼던 아이도 주섬주섬 포장을 뜯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무척 집중했고 클레이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겼다.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앉았을 때 바지가 접히는 사이에 넣어 놓은 아이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을 찾으러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아기를 안은 한 소녀가 우리를 불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때 갓난쟁이를 앉고 육교에 앉아 있었던 16살 소녀였다.
아기는 자고 있었다. 너무 작고 예뻐서 인형 같았다. 이제 두 달이 되었다고 했다. 소녀의 눈은 빛났다.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나만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하나를 주며 안부를 물었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었다며 이야기했다. 그럼, 육교에서 만났던걸 기억하지! 하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한 아이가 있었는데 우리가 불러도 인파 속에서 소리가 잘 안 들리는지 누군가가 준 것 같은 거의 다 먹은 음료를 입에 탈탈 털어 넣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를 보자 "세야마!!(선생님)" 하며 폴짝! 뛰더니 오늘은 무엇을 할 거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클레이를 보여주자 갑자기 여기저기에 뭐라 뭐라 소리를 쳤다.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모였다. 큰 골목에서 훤히 잘 보이지만 사람들은 많이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으로 아이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과 골목길에 쪼그려 앉았다. 이제는 피리 부는 소년처럼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온다. 보통 두세 명 정도하고 있으면 다른 두세 명이 또 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떼로 모여서 한 번에 진행해야 했다. 책을 못 읽어준 지 오래된 것 같아 오늘은 책을 꼭 읽어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이미 만들기에 심취했고, 다 만들고 나서는 신나서 뛰어다니기 바빴다. 다음엔 책만 들고 가야겠다. 만들기를 너무 좋아해서 매번 새로운 걸 들고 갔더니 아이들이 좋아하긴 하지만 책을 볼 틈이 없다.
지나가던 두 명의 여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팀원을 더 모으지 않냐고 물었다. 우리와 함께 하고 싶은가 보다. 관심을 보여주어 고맙지만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역시 재치 있는 E가 Facebook에 Tiny mini Flowers를 검색해 보라고 했다. 아직 페이지가 있진 않지만 팀원을 구할 때 그곳에 공지를 올릴 거라고 했다. 똑똑한데?
그래서 저녁에 집에 가서 Facebook Page를 만들었다. 게시물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일단 만들어 두었다. 혹시 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서.
둘러앉은 아이들이 많아서 "조금만 뒤로 가자"를 연신 외치며 원을 늘려야 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간간히 다니는 사람들이 우리를 피해 가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한쪽에 붙어 앉으라고 하고 다시 시작했다.
아까 한 세트 받아갔던 16살 아기 엄마가 골목으로 찾아왔다. 자기도 지금 만들고 싶다고 자리에 앉았다. 아기 엄마에게 마음이 많이 쓰인다. 15살에 임신을 해서 16살에 아기를 낳고 아기를 낳자마자 길거리로 나와 찬 바닥에 앉아 있는 게 가슴이 아프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도 길에 있었겠지 싶다. 아직 어려서 회복이 빨랐구나 싶긴 하지만 이렇게 다니는 것이 얼마나 이 엄마의 몸을 망가뜨릴까 싶다. 아기 엄마는 정말 열심히 했다. 어린아이들은 클레이를 크게 뭉쳐서 붙여댔는데, 아기 엄마는 키링 그림 하나하나에 다른 색으로 클레이를 작게 떼어 붙이며 정성을 다 했다.
우리에게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어차피 아이들은 이 지역 저지역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우리에게 작은 공간이 있어서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교육도 하고 씻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편하게 들락날락해야 하니 너무 좋은 건물일 필요도 없고 안전을 지켜주고 범죄발생을 막아줄 경비원 한 두 명, 맞이하고 안내해 줄 직원 한 명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봤다.
그런데 요즘 인신매매가 그렇게 많다고 한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사람들이나 아이들에게 길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어떤 이유로 말을 걸면서 책을 펼쳐 보여준단다. 그 책을 넘기면서 안에 묻어 있던 약품을 흡입하게 하고 상대가 휘청이면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부축해 주는 척 그렇게 납치한다고. 남편은 그런 범죄의 타깃이 되는 것에 대한 염려와 동시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을 모으는 행위가 그런 범죄 조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요지가 있다며 주의하라고 했다.
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만둬야 하는 위험요소만 늘어나는 것 같아 슬펐다. 언제 안전하고 자유로워질까. 외국인이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휘말리면 아주 큰 문제가 되어 내 가족은 물론이고 직장과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칠 수 있어 두렵다. 왜 이렇게 갈수록 더 흉흉해지는지. 그만큼 나라가 어려워지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 그만큼 이렇게 길에 나오는 아이들도 많아질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다.
오늘 열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나 키링을 만들었다. 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준비해 온 것이 다 떨어져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레단은 항상 부족하게 끝이 나는데, 다음에는 뭘 하든 스무 개 이상을 준비해야겠다 싶다. 말로는 다음을 기약했지만 이 아이들과 다음이 언제 있을지 늘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처음 길거리로 나온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준비한 기간까지 하면 8개월 정도 되었으려나 싶다. 다가가고 알아갈수록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어찌저찌 해오곤 있지만 매번 확신하지 못한 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이러해도 나에게는 꿈이 생겼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내게 더 많은 동역자들과 기회가 생긴다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현실의 문제가 어떠하든 꿈은 꿀 수 있지 않은가. 꿈을 오랫동안 함께 꾸다 보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Tiny Mini Flowers는 장기 프로젝트다. 찬찬히 길게 뚜벅뚜벅 가야지. 일단 오늘은 잘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