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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l 13. 2024

아이다운 보드라움과 향기로움이 피어나기를 바라며

❀tiny mini flowers❀ 두 번째 이야기

이번 프로젝트는 E와 함께 하기로 했다. E는 현지인이지만 한국말을 잘한다. E덕분에 나는 일을 수월하게 하기도 하지만, E 때문에 언어가 늘지 않는다. 한국어로 해도 다 알아듣고 대답해 주기 때문이다. E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남다르다. 가끔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이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친구이기도 하다. 마음이 너무 하얘서 옆에 있으면 내가 너무 까맣게 보인달까 하하 그래도 지금 이 나라에서 나와 가장 마음이 닿아 있는 친구가 아닐까 싶다. 국적이나 배경이나 성격과 상관없이 결이 맞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잘' 읽어야 하는데, 나는 현지어로 구연동화를 할 정도로 유창하지 못하다. 어른과 대화할 때에는 내가 발음을 잘 못해도 대충 이해해 주고 알아들어 주지만 아이들은 '뭐라고 하는 거야?' 하면서 흥미를 쉽게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동화를 읽어주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E와는 평소에도 우리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사이라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우리 길거리 애들한테 동화책 읽어줄래요?'라고 부연설명도 딱히 없이 던진 한 문장에 '오 좋죠!'하고 바로 in 하는 E의 그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새삼 놀라웠다.


이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 위해 두 번 정도 만났다. 첫 만남 때에는 대상자를 길 위의 아이들로 선정하고 접이식 의자와 돗자리를 구입해 마치 유퀴즈처럼 아이들을 만나 동화를 읽어주는 것으로 윤곽을 잡았다. 그런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도 list up 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ပန်းပွင့်လေး tiny mini flowers로 정했다. 아이들이 주로 파는 꽃이 자스민인데 정말 작고 하얗지만 향기가 엄청나다. 그 뽀얗고 연약하지만 향기로운 꽃이 아이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이름을 정했다. 길바닥에 앉아 꼬질꼬질 더럽고 냄새나는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아이다운 보드라움과 향기로움이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 만남은 서점에서였다. 아이들 책 코너에 쭈그리고 앉아 이 책 저 책 꺼내보았다. 참 안타까운 것은 이 나라에 동화 다운 동화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림도 별로 예쁘지가 않고 상당수가 종교적인 책이다. 직접적인 교훈을 주는 책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그런 책이 정말 마땅하지 않았다. 일단 첫 시작이니 몇 권 사서 해보고 다음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맨 오른쪽 책 외에는 전부 직접적인 교훈을 주는 책들이다. 속옷과 바지를 입어야 한다, 잘 씻고 단정히 해야 한다, 믿을만한 어른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같은 식의 교훈이 직접적으로 적혀 있다. 그래도 일단 샀다. 기회가 되면 한 번씩 읽어주는 것이 안 읽어 주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였다.


또 하나 더 안타까웠던 것은, 속옷과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동화를 읽어주더라도 이 아이가 속옷과 바지를 입을 수 있는 환경일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들도 너무 멋진 집과 학교, 유치원을 묘사해서 아이들에게 오히려 박탈감을 주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일단 구입을 했다. 아이들 마다 상황이 다를 테고,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 해도 알려주면 훗날 기회가 되었을 때 기억하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화를 읽어주고자 하는 목적 중 하나가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 주는 것이니 이런 것들도 있단다 알려주는 것은 괜찮겠다 싶었다.


이때는 5월 중순이었다. 뜨거운 건기가 마무리되며 조금씩 비가 오던 때라 그전만큼 뜨겁게 덥지는 않았지만 습기가 더해져 후덥지근했다. 서점에는 에어컨은커녕 전기도 없어 껌껌한 그 구석에서 플래시를 켜며 책을 골라야 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 내 모습이었다. 정말 땀이 쉴 새 없이 모든 모공에서 흘러나와 눈은 맵고 숨은 턱턱 막혀 힘들었다. 이 더위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서점에서 나오자마자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어디론가 향하는 어린아이를 보니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고생이라고 투덜거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 로고를 만들었다. 이름 붙이고 형상화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굳이 로고를 만들고 싶었다. 현지어를 쓰려고 하는데 폰트가 없어서 결국 그림판으로 어설프게 썼다. E는 내 손글씨가 아이가 쓴 것 같아서 더 우리 프로젝트와 어울린다고 했다.


아래 세 개의 꽃은 자스민 꽃을 닮아 넣었고, 빨강 노랑 초록은 국기의 색이라 넣었다. 내 엉성한 손글씨가 들어간 로고라니 세련되지 못한 것 같아 못마땅하면서도 E의 말마따나 아이 같은 게 나름 귀엽고 마음에 든다.


이걸 스티커로 프린트해서 책에 붙였다. 뭐 사실 붙일 이유가 굳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붙였다.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느낌이라 좋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이 로고도 좀 더 의미 있게 쓰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로고까지 만드니 얼른 시작하고 싶다.



나는 가장 읽을거리가 적은 책을 연습하기로 했고, E는 그 외 책 중 하나를 골라서 연습하기로 했다. 접이식 의자와 돗자리는 휴대하기 쉬운 것으로 사고 싶은데 미얀마에서 찾기가 어려워서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께 부탁해 하나씩 받았다. 가방 하나에 책과 의자 두 개, 돗자리 하나가 충분히 들어가고 가벼워서 기동성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우리 둘 다 5월 말부터 6월 한 달 내내 살인적인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어서 빠른 시일 내에 나가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일이 몰리고 출장이 쉼 없이 있어서 집에 있을 날이 거의 없다. 이 열정이 시들기 전에 얼른 시작하고 싶은데 말이다. 첫날이 언제가 될지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날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 틈 나는 대로 발음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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