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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l 24. 2024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왔지!

❀tiny miny flowers❀ 네 번째 이야기

07.10 수요일 4:30~5:20p.m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분주한 마음을 사무실에 밀어 두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서둘러 나왔다. 사실 ㄹㄷ은 사무실과 집의 반대 방향에 있는 곳이라 거기까지 간다는 게 좀 망설여졌다. 퇴근시간에 사람들이 어마무시하게 붐비는 곳이기 때문에 평소 인구밀집도가 낮은 곳에서 지내는 내겐 꺼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도시 어디 가나 그런 길거리 아이들은 있는지라 다음엔 집 근처로 갈까 하는 이야기를 E와 나누며 택시에서 내렸다.


일단 첫 날 만났던 아이들이 다리 밑에 있나 살폈다. 평일에는 학교를 가서 안 나오기도 한다던데 정말 그런지 그때 봤던 아이들이 없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을 것 같은 3살짜리 아이도 없는 걸 보니 그냥 이동을 하거나 타이밍이 안 맞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생각보다 다리 밑에 아이들이 없어서 좀 더 붐비는 길로 들어섰다. 이 도시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한 곳인 게 분명하다. 멀리서 보면 길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인도 끝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아이 한 명을 발견했다. '맛있는 즐거움'이라 쓰여 있는 투명한 롯데리아 컵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아참, 오늘은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왔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 주기 전에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흥미를 끌만한 것이 선행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왔다간 손님들이 남기고 간 타투 스티커가 있어서 몇 개 가지고 나왔다. 물티슈만 있으면 간편하게 붙여줄 수 있을뿐더러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 아주 좋은 아이템이다.


구걸하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스티커 좋아해?'

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엥?' 했다.


스티커를 보여주며 '이거 붙여줄까? 두 개 골라봐!'라고 하니 우리를 한 번 슥- 살피곤 대충 하나를 집어 들었다. 표정도 태도도 너무 심드렁해서 민망할 정도였지만 아무튼 '어디에 붙여줄까?' 하나씩 물으며 두 개를 붙여 주었다. 구걸하는 아이 앞에 앉아 말을 걸고 스티커를 붙여 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구경하며 지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멈춰 서서 우리를 구경했다. 이렇게 관심받는 건 너무 민망했지만 아이들이 모이는 건 좋았다. 아이들을 찾아다녔는데 이번엔 아이들이 우릴 찾아왔다.



놓칠세라 옆에 온 두 명의 아이들에게 '너희도 붙여줄까?' 물었다. 당연히 고개를 끄덕끄덕. 기다렸다는 듯이 스티커를 고르기 시작했다. 한 명은 알고 보니 앉아서 구걸하던 아이의 동생이었다. 이 아이는 형과 다르게 리액션이 좋았다. 표정도 귀염지게 살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손이 너무 지저분해서 순식간에 내 손도 끈적해졌다. 문득,.. '아 요즘 콜레라가 유행한다던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손 잘 씻으면 되겠지!



동화책도 한 권 읽어줬다. 아이가 내 발음을 잘 못 알아들어서 또 '엥?' 하며 나를 쳐다봤지만 그냥 읽어줬다. E가 옆에서 '~래'하며 내 말을 다시 옮겨줬지만 그래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사실 상황이 정말 정신없긴 했다. 옆 차도에서는 퇴근시간이라 많은 차가 빵빵거리고 아이가 앉아 있는 인도에는 사람들이 서로 옷깃이 닿을 듯 바글바글 했다. 나와 E는 퇴근을 하고 바로 온지라 배낭에 옆가방까지 바리바리 들고 쭈그려 앉아 허둥대니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잘 알아듣는 게 이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4명의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붙여줬다. 친구들이 더 없냐고 물어봤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늘 이곳에서 지낼 테니 서로 아는 사이일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저~기를 가리키며 어디 골목으로 가면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E와 함께 그쪽으로 향했다. ㄹㄷ은 우리나라 노량진 같이 학원이 밀집해 있어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많고 쇼핑몰, 시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놀러 온 사람들도 많다. 덕분에 길거리에는 포장마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온갖 물품을 파는 가판대가 수십 개다. 그러다 보니 음식물 썩는 냄새, 쓰레기 냄새, 차 매연 냄새, 발전기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숨이 헙- 하고 막힐 정도다. 최대한 숨을 얕게 쉬며 이리저리 사람들을 지나 아이들이 말한 골목에 도착했다.



이런 곳에서 길거리 아이들을 찾으려면 시선을 아래로 두어야 한다. 아이들은 서 있어도 작을뿐더러 웅크리고 앉아 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찾는 데에는 E가 도사다. 나는 '여기 애들이 있나?' 하고 있을 때 '오! 저기 있네!' 하며 바로 발견했다. 어린아이들을 만나려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내려가야 함을 알면서도 내 시선은 늘 내 키 높이에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이 아이들 손에도 돈이 담긴 투명 플라스틱 컵이 들려 있었다. 역시 구걸하는 아이들인가 보다. 학교에 다녀왔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이 근처에 살고 있고 이 길에 매일 나온다고 했다.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 학교가 마치면 보호자도 없이 길거리에 나와 자연스레 간식과 돈을 구걸하며 하루하루 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나 보다. 이 아이들은 무척 밝았다. 여자아이들이었는데, '말괄량이' '천진난만'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려 보였다. 우리가 다가가도 별 경계심 없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맞이해 줬다.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가 스티커를 고를 때 '음 뭐 하지?' 하며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계속 가져다 대는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웠다. 스티커를 고를 때도, 어디에 붙일지 생각할 때도, 무슨 책을 읽을지 선택할 때도 그 작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톡톡 치며 진지해지는 모습이 연극하는 배우가 고민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옆 친구에게 '너는 뭐 할 거야?' '어디에 붙일 거야?' 물으며 뭐든 함께 똑같이 하고 싶어 했다. 스티커를 붙이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길래 어디 가냐 물으니 친구들을 데리러 간다고 했다. '좋은 걸 나눌 줄 아는 아이구나!' 싶어 더 예뻤다.


그렇게 세 명의 친구를 더 데리고 왔다. 어라, 그중 한 명은 지난주 토요일에 육교에서 만난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 아이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약간은 우쭐거리며 '나는 저번에 이 누나들 만났었어!' 아는 척을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스티커를 붙여주겠다고 고르라고 하자 '개구리는 없어요? 저번에 개구리 책 읽어줬는데!' 했다. ㅋㅋㅋ 귀여워 ㅋㅋㅋ 안타깝게도 개구리는 없다고 하자 '돼지는요? 돼지도 나왔는데!' 하면서 계속 우리에게 함께한 추억이 있음을 어필했다. 친구들이 궁금해하자 저번에 만났을 때 동화를 읽어줬다며 이번에는 안 읽어주냐고 먼저 제안을 했다. 우리야 좋지! 얼른 스티커를 붙여주고 엉거주춤 서 있는 채로 동화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책 뒤에 광고처럼 시리즈 책들 사진이 있는데, 다 읽어주자마자 그 책 사진을 가리키며 '이거 읽어줘요' '나는 이거!' 하며 더 읽어달라고 해서 E가 나섰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을 전부 보여주고 어떤 거 읽어줄까? 물으며 선택하게 했다. 아이들은 사람이 나오는 책 보다 동물이 나오는 책이 더 좋은지 이번에도 동물이 나오는 책을 선택했다. E는 엉거주춤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더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동화를 읽어주었다. 집중하는 표정이 참 귀여웠다.



간식을 하나씩 쥐어주고 이제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아이들이 계속 말을 걸며 붙잡았다. 한 명이 물으면 한  명이 우리를 대신해 대답하며 참새들처럼 계속 종알거렸다. 언제 또 오냐고 해서 언제 또 올 수 있나 생각하는 찰나에 두 번째 만난 아이가 '삼일에 한 번씩 오는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세어보니 토요일에 왔다가 수요일에 온 거라 삼일 만에 온 것이 맞았다. 그럼 언제 또 오냐고 물어서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오겠다고 말하니 매일 오라고 하는 아이들이 예쁘고 고마웠다. 우리가 마음에 들었구나!


마지막으로 한 아이가 '근데 왜 왔어요?' 물었다.

우리가 대답할 새도 없이 다른 아이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왔지!'라고 외쳤다.



그래 네가 정답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많이 가져다 댔지만 사실 본질은 그거지. 아이들을 행복해하게 해 주려고 여기에 왔지. 형용사가 가득한 내 머릿속 어른의 문장이 순식간에 발가벗겨져 순수하고 아름답게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그걸 오늘 잠시 만난 네가 느꼈다니 진심으로 기뻤다. 고작 두 번 이렇게 나왔을 뿐인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알아주는 아이들을 만나다니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된다.


돌아가는 길에도 네 명의 아이들을 더 만났다. 두 살 동생의 손을 잡고 차도 옆에 아슬하게 차려 놓은 포장마차를 기웃거리며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벼(새 먹이)를 팔고 있는 아이에게도 잠깐의 아이다움을 선물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줘서 바로 쿠팡으로 타투스티커 50장을 주문했다. 그다음 주면 그것을 받아 더 많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총 14명의 아이들을 만나 스티커를 붙여주었고 두 번에 걸쳐 5명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다음 주에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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