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열한 번째 이야기
이 나라는 천연자원이 참 많다. 석유까지도 나는 나라인데, 문제는 이 채취한 석유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할 기술이 없어서 태국과 같은 나라로 모두 수출시킨다고 한다. 그럼 결국 이 나라에서 써야 하는 연료들은 모두 수입을 해와야 하는데, 지난 열흘 동안 달러 부족으로 이미 도착한 유조선들 조차 정박시키지 못했다. 연료가 없으니 주유소마다 주유하려는 차 줄이 몇 킬로씩 서 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런 일들이 종종 있는 나라인지라 처음에 차들이 줄 서 있을 때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역대급으로 줄이 길게 서고 발전기를 돌릴 기름도 없다고 해서 모두가 불안에 떨었다.
우리는 다행히 줄 서기가 시작될 즈음 1시간 정도 만에 주유를 하고 일주일 동안 오직 출퇴근만 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1시간이라니, 이 것도 한국이라면 말도 안 되는 시간이겠지만 여기에선 그 정도면 부럽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차 줄을 세워 놓고 그 안에서 먹고 자며 하루 넘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사를 쓰지 않아서 만약 그렇게 기름을 넣어야 했다면 하루 휴가를 쓰고 기다려 넣거나 택시를 타고 다녀야 했다.
아 물론 택시도 문제였다. 기름이 없으니 택시가 운행을 할 수 없고, 그럼 택시를 잡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된다. 한 번은 퇴근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그랩으로 택시를 잡을 수가 없고 길에 나가도 차가 없어 30분을 걸어 집에 갔다. 거의 걸을 일이 없이 살았는데 이렇게 걸어서 퇴근하고 있는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건지 이게 맞나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난 열흘 동안 아이들에게 갈 수 없었다.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라 차가 있어야 가는 데 갈 방법이 없었다. 내가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하니 그럼 지금 들고 있는 가방이 다 칼에 긁혀 난도질되고 모든 걸 강도 맞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사무실 직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해서 관뒀다. 사실 출퇴근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서 어딘가 이동하는 것 자체에 환멸이 나 있었다. 더불어 안 그래도 불안한 정세가 흉흉한 소문이 돌며 너무 불안해져서 회사 비상사태 위기관리 매뉴얼대로 비상연락망을 만들고 언제든 재택을 할 수 있도록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먹을 것들을 쟁이며 다니느라 바빴다.
08.19 월요일
주말 동안 이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나라라 정말 나아져야 나아지는 거 기 때문에 기다렸다. 체감할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는 '택시'다. 택시가 잘 잡히면 그래도 괜찮아진 거고 아니면 아닌 거다. 다행히 이 날부터 택시가 잘 잡혔다. 기름을 넣기 위한 줄은 여전히 길었지만 그래도 이제 오전에 일찍 나가서 줄을 서면 두 시간 정도만에 기름을 넣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엉망진창의 상황에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계란 한 판을 꽉 채웠다. 요 며칠 쌀과 식용유와 더불어 계란도 구하기 힘들었는데, 며칠 전 걸어서 퇴근하는 길에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마트에서 계란을 발견해서 한 판(30알)을 사뒀었다. 이번 생일에는 감사하게도 케이크도 많이 받았다. 받으면 보통 그 자리에서 함께 나눠 먹는데, 한 번에 두 판을 받은 날이 있어서 한 판이 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름 내가 의미부여를 하고 있던 서른 번째 꽉 채운 생일도 되었겠다, 기름이 나아져서 택시도 잘 잡히겠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계란을 삶았다. 한 번에 다 삶기에는 우리 집에 그렇게 큰 찜기가 없어서 15알만 하고 15알은 다음 날 다른 곳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일회용기와 포크를 사 와서 케이크도 소분했다. 처음에는 욕심껏 용기가 가득 차게 크게 잘라 넣었는데, 점점 비율 나누는 것을 실패해서 뒤에는 조금 작아졌지만 아무튼 열심히 나눠 담았다.
ㄹㄷ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바지도 입지 않은 한 두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은 열 살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오므린 손을 내밀었다. 케이크를 한 상자 건네주었다. 아이가 무척 놀라며 냉큼 받아 들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엄마(로 추정된다.)에게 케이크를 높이 들어 보여주며 달려갔다. 그러더니 다른 쪽에 있던 아이에게 내가 있는 차를 가리키며 뭐라 이야기하는 걸 보니 내게 가면 케이크를 준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헐레벌떡 내게 오더니 몸을 잔뜩 웅크리고 정말 정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신음 같이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몸짓과 표정과 목소리가 꾼 같았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거절할 수 없고 불쌍하게 보며 뭐라고 쥐어준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눈치다. 그 아이에게는 계란 두 알을 줬다. 케이크는 나눠 먹으라고 했다. 멀리서 보니 엄마가 아까 안겨 있었던 작은 아이에게 케이크를 먹이고 있었다. 계란을 받은 아이도 그쪽으로 계란을 보여주며 뛰어갔다.
차가 많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저번에 만났던 다리에 장애가 있는 아이가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도 턱에 한 성인 여자분이 앉아 있고, 그 옆에 다른 남자아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같은 일행일까 살짝 멀리에서 지켜보았는데 일행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가버리자 구걸에 실패한 아이가 일행에게 돌아왔다. 아이를 불러서 케이크를 줬다. 그때에도 내게 우산을 달라고 무척 졸랐던 아이였는데 이번에도 내게 계속 달라고 기계처럼 졸라댔다. 아까 만난 불쌍함에 능숙한 아이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 아이는 장애만으로도 불쌍해 보이니 이렇게 계속 조르면서 사람들 줄 수밖에 없는 기술을 만들었나 보다. 계란도 함께 주었다. 받자마자 고개를 싹 돌리길래 아이를 불러 이럴 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여자분이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지" 일러줬다. 아이가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래 맛있게 먹어!" 하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아이들을 만나곤 했던 곳으로 향했다. 한 아이가 꽃을 팔며 앉아 있고 그 옆에 아기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니 처음 보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곳에 늘 있던 아이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다가가니 우리를 보고 웃었다. 옆에 누워 있던 아이가 너무 예뻤다. 도로에 천 쪼가리 하나 깔고 바지도 없이 반 나체로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보니 이제는 빈곤 포르노라고 불리는 그런 사진들이 생각났다. 내가 지금 이 앵글에서 아이를 찍으면 딱 그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꽃을 파는 아이가 언니고 누워 있는 아기는 동생이었다. 엄마는 다른 곳에서 꽃을 팔고 있다고 했다. 아이와 대화를 좀 나누다가 케이크와 계란을 줬다. 케이크를 받자마자 동생을 앉히더니 먹이기 시작했다. 아기가 앉으니 귀가 보였는데, 귀 안에는 염증이 가득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정도였다. 아마도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그대로 누워 있고 말리지 않아서 그렇게 염증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병원이라도 데려갔으면 좋았을까 싶다. 너무 작은 아기라서 그 정도로 염증이 생기고 잘 들리지 않으면 분명 언어 발달에도 문제가 생길 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호자도 없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는 어렵다.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으로 향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날씨가 좋아서 아이들을 줄 우비는커녕 내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폭우가 내렸다. 아까 만난 그 아이들 또 젖을 텐데, 그 아기 귀에 또 물이 들어가면 어쩌나 나는 왜 하필 오늘 매일 들고 다니던 우비를 놓고 왔는가 진짜 너무 아쉬워서 곡소리가 났다. 하...
다행히 E가 우산을 가지고 있어서 둘이 작은 우산 하나를 간신히 나눠 쓰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왔어도 비 때문에 어딘가 들어갔을 것 같다. 아쉬운 마음으로 계속 주위를 살피다가 책 읽기를 좋아해 모든 책을 다 읽어 달라던 아이(가명으로 '아웅'이라고 부르겠다.)를 만났다. 비를 맞고 있는 아웅을 보니 우비를 안 가져온 것이 또 너무너무 아쉬웠다.
일단 비를 피하자며 지붕이 있는 건물 쪽으로 함께 갔다. 아웅은 다른 지역에 사는데 버스를 타고 매일 여기에 온단다. 학교를 안 가니 이렇게 나와서 놀거나 얻어먹거나 하는 것 같다. 아웅에게 케이크와 계란을 줬다. 친구들은 어디 있냐고 하니 오늘 안 왔단다. 자기만 왔다고 그래서 자기도 친구들을 찾으러 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웅을 따라갔다. 우리는 어른이고 우산까지 있는 데다 사람들이 많아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는데 아웅은 작고 걸릴 우산도 없으니 여기저기 틈 사이를 빠르게 지나 사라졌다. 결국 놓쳤지만 그래도 그쪽으로 향하며 주위를 살피는데 E가 "저기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옷 가게를 가리키며 아이가 있다는데 대체 어디 있는 건지 한참 찾다가 저 아래 쪼그려 앉아 있는 작은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를 불렀다. 이 아이도 우리를 아는 아이라 우리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어줬다. 아이가 잘 보이는 쪽으로 다가가 부르자 가까이 왔다. 비가 와서 잠깐 여기 앉아 있는 거라고 했다. 케이크와 계란을 줬다. 바로 쭈그려 앉아 케이크를 퍼먹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주고 싶었는데 밖에 사람은 바글바글하고 우산은 계속 걸리고 비는 내리고 아이는 옷 가게 안에 있고 해서 그럴 수 없었다.
아이와 인사를 하고 가던 방향으로 다시 향했다. 한참을 가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웅이 두 명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길 복판에서 서성이는 뒷모습을 보았다. 아이를 불렀다. 아이들이 뒤를 돌아 우리를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어 오는 게 아닌가. 맙소사. 거긴 차도인데... 사 차선 도로에 버스와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그렇게 뛰어 오면 어떡하니!!
버스가 달려와서 아이들도 아차차 멈췄다가 다시 우리를 보고 웃으며 뛰어왔다. "조심히! 천천히!"를 외쳤지만 아이들은 안 들리나 보다. 아이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케이크와 계란을 줬다. 다른 아이도 다가오길래 나눠주자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도 손을 내밀며 계란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케이크는 모두 나누어 주고 계란을 두 개만 남고 모두 나누어 줬다. 비도 좀 그친 상황이라 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했는데 아웅과 함께 온 두 아이들이 페트병 주우러 가야 한다며 뛰어가버렸다. 그래서 아웅에게라도 책 읽어줄까 물으니 저~ 쪽에 가서 읽어달라며 우리를 안내한다.
그렇게 아웅을 따라가는데 빵 가게 앞에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1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좀 큰 아이들이었다. 한 명은 누워 있었고, 한 명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남은 계란 두 개를 하나씩 주었다. 인도계열 아이 같았는데 우리를 보며 웃는 그 눈이 너무 예뻤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줄까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웅에게 여기서 책 같이 읽자고 불러 앉혔다. 지나가던 아이가 기웃거리더니 옆에 와서 앉았다. 이제 우리를 자주 만나고 책을 많이 읽었던 아웅은 새 책 없냐며 책을 열심히 뒤적였다.
E가 쪼그려 앉아 책을 읽어줬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모이더니 7명이 되었다. 책 중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손을 펴고 한 명씩 꼽아 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작은 손을 쫙 펴고 "누나, 친구, 삼촌,.." 하면서 골똘히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참 귀여웠다. E가 아이들의 호응을 잘 유도하며 재미있게 읽어줬다. 내가 읽어주고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이랑 유창하게 소통하고 맛깔나게 읽어주기에 현지인들만 할 수는 없다. E 외에도 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현지인 봉사자가 있으면 더 자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기획과 준비를 모두 하고 현장에서 소통하고 책을 읽는 현지인들을 모아 관리 및 서포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더 사야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읽은 아웅이 다음에는 새 책을 사 오라고 또 요청했다. 아이들 책 사기가 참 쉽지 않은데,... 열심히 알아봐야겠다.
생일이라는 게 나이를 먹을수록 별 감흥이 없어지지만 이번 생일은 십의 자리가 바뀌는 거니 좀 의미가 있었다. 서른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다음 삼십 년의 방향성을 정리해 보기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생일이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삶의 결을 정리하게 된다. 아마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은 본인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를 것이다. 빈민지역에 있는 아동센터들에 가보면 센터에서 해주는 생일파티가 난생처음 받는 축하인 경우가 정말 많기 때문에 길 위의 아이들도 비슷할 거다.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것은 "네 존재가 소중하고 가치 있음"을 의미한다. 본인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단 한 번도 삶을 축하받아 본 적 없을 것 같은 아이들에게 나의 생일의 기쁨과 다짐을 나눴다. 물론 "내 생일이야!" 하면서 주진 않았지만 아무튼 마음속으로 내가 받은 축하와 사랑을 나누려 노력했다. 그리고 길 위의 아이들도 존재만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다 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내 삶의 결을 정리하는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