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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Sep 04. 2024

내게 쓰레기를 쥐어주는 아이들

❀tiny mini flowers❀ 열두 번째 이야기

아는 언니가 세계 아동 인권 실태에 관련한 시리즈 기사를 기획하면서 tiny mini flowers의 이야기를 실어도 되느냐는 연락을 해왔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에서 내는 기사인 데다가 그렇게 이슈가 될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딱히 내가 아는 사람들이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맙소사. 


여느 날처럼 분주하게 출근을 하던 길에 교회 소모임 단톡방에 링크가 하나 올라왔다. 출근길이라 확인하지 못하고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지부장님께서 "인터뷰했어?" 물으셨다. "인터뷰요? 아뇨? 왜요?"라고 물으니 "이거 너무 당신 같은데,.. 진짜 인터뷰 안 했어?" 라며 기사를 보여주셨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2393842

https://www.etoday.co.kr/news/view/2393844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가명을 썼음에도 모두가 나 인 것을 알았다. 언제 한 번 책과 간식을 들고나갈 때 어디에 뭐 하러 가냐 물으셨던 두 가정 외에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는데 비밀이 들통난 기분이었다. 물론 내가 인터뷰한 거지만 ㅋㅋ 이걸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볼 줄도, 보고 바로 나인걸 알 줄도 몰랐달까. 하지만 '침울한 소식밖에 없는 미얀마 뉴스에도 훈훈한 뉴스가 있어 공유드립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라며 한인 뉴스 단톡방에도 올라온 것을 보며 어떤 책임감 같은 것도 생겼다. 늘 우울한 이 나라에서 우리의 작은 행보가 훈훈함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08.29 목요일 ㄷㄱ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새로운 장소에 왔다. 거의 다 와가는데 길가에 한 여자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여 택시에서 내렸다. 정말 아이들은 콩알 같다. 길의 가장자리에 폭 박혀서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콩알같이 작고 동그랗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며 스티커를 붙여 주었다. 아이의 미소가 너무 귀여웠다. 7살 정도 되었다고 했다. 책도 읽어달라고 해서 한 권을 읽어줬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서 오랜만에 내가 읽었다. 한 장 한 장 동물이 나올 때마다 동물 이름을 이야기하고 울음소리와 발동작을 따라 하기도 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아이에게 간식을 쥐어주고 인사를 했다. 안녕 또 만나~ 하며


길을 따라 내려갔다. 원래 향했던 목적지에 도착하니 바로 아이들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길에 앉아 있는 남매가 눈에 띄었다. 여자 아이가 안고 있는 아기는 바지도 입고 있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인사를 나누는데 아기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잔뜩 찡그린 채로 금방이라도 울 것 같고, 짜증과 불편함이 가득했다. 바지는 왜 안 입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직 배변 훈련이 되지 않았을 나이일 테니 바지를 입혀봤자 금방 더러워질 테니 벗겨놨겠구나 싶었다. 기저귀를 쓰지 못하는 시골 가정에서 이렇게 아예 벗겨놓고 키우는 경우를 종종 봤다.


고작 한 두 살 되었을 것 같은데 얼마나 불편하고 짜증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하고 지저분한 블록 위에 아직 어리고 작은 누나가 엉성하게 안아 들고 다니며 배는 고프고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니 춥고 찝찝할 테고 구걸하며 얻어먹는 형편이니 어른 간으로 된 맵고 짜고 단 것들만 불규칙적으로 먹어 배도 아플 거다. 아기의 짜증스러운 표정 옆에 누나의 달관한듯한 무표정이 참 가슴 아팠다. 이 아이도 이렇게 크면서 점점 불편함과 부끄러움과 고통을 외면하는 것에 익숙해졌겠지 싶다. 


그 옆 길가에는 구아바를 잘라 팔고 있는 아저씨가 계셨는데, 아이들이 그 옆에 맴돌며 자르고 남은 구아바 심지를 얻어먹고 있었다. 


손가락에 LOVE라고 적혀 있는 아이가 있어 물어보니 누나가 적어줬단다. 5살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지 나도 모르게 자꾸 볼을 쓰다듬었다. 딱 봐도 텐션이 남다른 아이 한 명이 우리가 스티커를 붙여 준다고 하니 온몸을 들썩이며 좋아했다. 타투스티커는 물티슈로 꾹 눌러 물기를 스티커가 머금어 붙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몇 초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의 정적이 머쓱해서 "두구두구두구~~"하며 기대하는 효과음을 냈는데, 그걸 얼마나 좋아하던지 까르르까르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내가 스티커를 붙여주는 그 짧은 시간마다 자기들끼리 "두구두구두구~~" 따라 하며 웃었다.


다른 친구들도 저기 있다며 스티커를 더 달라고 해서 친구들을 부르라고 했다. 그러자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왔다. 12~15살은 되어 보였다. 학교에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니 어떤 아이는 다닌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안 다닌다고 했다. 그중엔 쌍둥이도 있었다. 분명 스티커를 붙여준 아이인데 안 붙였다고 하며 맨 손을 보여줘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쌍둥이였다! 지나가던 구걸하는 아주머니도 이게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를 데려와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했다. 최연소 손님이었다. 하하.

탈모가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피부도 화상 당한 피부처럼 어딘가 부드럽지 않고 색이 고르지 않아 보였다. 손톱에는 늘 때가 아주 까맣게 끼어 있다. 이 손으로 모든 것을 만지고 모든 것을 먹을 것이다. 가끔 엄마는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엄마도 그 근처나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구걸을 하거나 뭔가를 팔고 있다고 한다. 부모의 삶이 재생산되고 있다.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적극적이고 텐션 높은 아이들이 이거 읽어달라 저거 읽어달라 주도를 했다. 우리 주위에 아이들이 모이고 시끌벅적해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뭐 하나 슬쩍슬쩍 보고 지나갔다. 비구니 스님들도 지나가면서 잠시 머물러 보고 갔다. 책을 세네 권 읽어줬다. 아무래도 길거리에 어정쩡하게 쭈그려 앉아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읽는 거다 보니 빠른 호흡으로 읽게 된다. 주위 집중을 흐리는 방해요소들도 많고 아이들이 한 책에 모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읽고 있으면 어떤 아이는 벌써 다른 책을 읽어 달라 하려고 고르고 있다. 


나이가 좀 있는 아이들은 좀 기웃거리다가 다시 자기 할 일 하러 떠나고 어린아이들만 남았다. 발은 또 어디에서 다쳤는지 붕대를 감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뭐 어디선가 깨끗한 붕대를 잘 감고 온 것은 다행인데,... 신발이 없었다. 신발이 없으니 발을 디디면 지저분해지고 오염될까 봐 한 발을 들고 깽깽이를 하며 다니거나 덩치가 좀 더 있는 형들에게 부축받으며 다니고 있었다. 


E의 책 읽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때에 나는 간식을 사러 갔다. 들고 온 간식에 비해 아이들이 많아서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책 읽는 아이들은 몇 안 남았어도 간식을 주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에서 몰려올 것이 뻔하다. 근처 슈퍼에 가서 두유와 빵을 샀다. 주로 배가 찰 수 있는 빵 간식을 줬었는데 두유가 빵보다 영양가도 있고 배도 찰 것 같아서 두유도 같이 샀다. 생각보다 두유가 비싸서 놀랐지만 ㅋㅋ 태국 두유라 그런가 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잘 모르는 브랜드의 저렴한 것을 사주고 싶진 않았다. 


역시나 간식을 나눠 주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몰려왔다. 아까는 본 적 없었던 아이들도 와서 손을 내밀었다. 간식을 나눠줄 때면 꼭 "저기 내 친구 있는데 가져다줄게. 하나 더 줘"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진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 개를 더 주면 다른 아이들도 갑자기 자기도 저기 누가 있다며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때문에 한 개씩만 준다. 간식을 받아 든 아이들 중 몇 명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이로 포장을 뜯어 내용물만 쏙 빼먹고 쓰레기는 바로 바닥에 버린다. 미얀마 아이들은 길에 있는 아이들이든 아니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할머니도 집 밖 또랑에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교육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본 보통 수준의 미얀마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대해 별 문제의식이 없다. 하지만 나는 꼬리야 사람이자 전직 유치원 교사로서 내 눈앞에서 내가 준 간식 쓰레기를 퉤! 하고 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어머어머!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하니 아이들이 혀가 길어진다.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자기가 버린 쓰레기를 주우며 쓰레기통이 너무 멀다고 저 멀리를 가리키며 '저~기 있단 말이에요'라고 한다. 그중에 얻어먹은 음료 컵까지도 바닥에 팽개치듯 버렸던 아이가 그걸 주워서 쓰레기통이 얼마나 먼지 설명하다가 그게 내게 안 통한다고 느꼈는지 내 손에 컵을 쥐어줬다. 나보고 버리라고 ㅋㅋㅋ 내가 계속 귀여워하며 볼을 꼬집던 아이였는데 쫑알쫑알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내게 쓰레기를 주는 것도 당돌하고 귀여워서 빵 터져버렸다. 그 진지하고 단호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ㅋㅋㅋ 


결국 쓰레기는 내 몫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쓰레기를 모아 챙겼다. 도대체 얼마나 멀길래 쓰레기 버리러 못 간다고 저렇게 단호한다 싶어서 쓰레기통을 찾아 나섰는데, 맙소사 진짜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길을 건너서 까지도 안 보여서 그냥 저녁 먹을 식당까지 들고 가서 버렸다. 아이들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쓰레기통 찾기가 힘든 나라라던데 이 나라는 더 심한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인프라 형성이 너무 안 되어 있구나 싶었다. 


헤어질 때 아이들이 무척 아쉬워하며 꼭 다음에 또 오라고 했다. 다른 곳들만큼 아이들은 많은데 한 곳에 모여 있어서 한 번에 책 읽어주기도 좋고 반응도 매우 적극적이어서 우리도 좋았다.


09.03 화요일

새 책을 찾으러 다니고 있다. 자주 갔던 곳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을 읽은 아이들이 다른 없냐고 묻고, 처음 만났어도 적극적인 아이들이 있으면 두세 번 만아이들이 흥미를 갖는 책을 읽어버리기도 해서 새로운 책을 구해야 한다는 부담이 계속 있었다. 하지만 괜찮은 어린이 책을 구하기가 힘든 나라라 서점이 보이면 들어가 살펴보곤 하는데,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운동 가는 곳 앞에 서점이 하나 있는데 아침 일찍 운동을 가다 보니 서점은 늘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었다. 어쩌다 오후에 운동을 간 날 큰 기대 없이 서점에 들어갔다가 동화책들을 발견했다. 오예!


내용을 다 보며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E와 함께 재방문하기로 하고, 일단 내가 봐도 괜찮아 보이는 책 세 권을 사 왔다. 새로운 책을 사서 아이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아주 설레고 기분이 좋다. 나도 더 많이 읽어줄 수 있도록 새로운 책을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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