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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Sep 11. 2020

흔한 사랑이야기 - 3

사랑의 이유


흔한 사랑이야기 - 3


“오빠는 내가 왜 좋아?”
“음...그냥.”
“에이... 그냥이라고?”
“응. 그냥. 그냥 좋아.”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기를 바란 것인지 이내 시무룩해졌다. 그는 그런 내 눈을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정말 좋아하게 되면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는 거야.”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한참을 생각했다.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고? 에라이 그런 게 어딨어.

예뻐서 좋다던지, 그게 아니라면 착해서 좋다던지.. 날 보고 설렜던 이유가 있어야지.


그러다 문득 나도 헤아려본다.
그를 좋아하게 됐던 이유를.


그는 귀엽게 생겼다.
그는 키가 크다. 덩치도 크다. 그래서 농구도 잘한다. (왼손은 거들뿐이다.)
먹는 것도 그렇게 복스럽게 먹는다.
그에게서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향기가 난다. 무슨 섬유유연제를 쓰길래.
그는 아는 것이 많다. 내가 모르는 그 어떤 것도 그에게 물어보면 그는 척척 대답해줬으니까.
그는 내게 있어서 알파고 같은 존재였고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통했던 그가 자랑스러웠다.


누군가 자꾸 물어봐도 자꾸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게는 그를 좋아하는 백만 스물한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그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을 땐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처음엔 그가 좋은 이유를 수백가지는 나열할 수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이 좋았으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를 그 수백가지의 이유 때문에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였기 때문에 그 수백가지의 것들이 이유가 된 것이다.


그게 맞다.


그였기에 평범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향수보다 좋았고
그였기 때문에 그가 가진 사소한 지식들이 사소하지 않게 느껴졌고
그였기 때문에 우악스럽게 먹는 모습마저도 복스러움으로 둔갑했던 것이다.


그게 맞다.


그였기에 백만 스물하나의 사소한 것들이 모두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게 사랑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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