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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Oct 25. 2019

DNA-2

유전자야 유전자.





"야, 넌 뭐 그렇게 맨날 쓰냐???"

"응?" 

"아니 너 맨날 메모할 때마다 보는데 핸드폰에 메모가 왜 그렇게 많아?" 

"이거...? 유전자야 유전자."

"어??"



나는 쓴다.


쓰는 이유는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좋은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뇌에서 사라져 버릴까 봐 그것이 두려워서이다. 어떤 아이디어든 스치는 순간 메모장부터 꺼낸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때는 그랬다. 

지금은 무조건 핸드폰의 메모장부터 켠다. 그래서 내 보물 1호는 단연코 내 메모장들이 아닐까 한다. 아날로그 종이 메모장이던, 핸드폰 속 디지털 메모장이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 기억의 조각들. 


가끔 청소를 하다가, 아니면 잃어버린 물건을 찾다가 우연히 옛날에 적어놓았던 메모장을 발견하면 진귀한 보물을 발견한 것 마냥 기분이 설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모장을 열면 과거의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았는지, 그때의 나를 만나게 되니까.



메모하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생각을 더듬어보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중학교 1학년. 


큰외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몇 년간 연락이 끊겼던 작은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몸이 조금은 불편하셨던 작은 외삼촌은 살아가는 날들이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피해를 입힐까 봐 돌연 연락을 끊고 혼자서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몇십 년이 지나 자신이 더 이상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때 연락을 주셨다.


하늘에서부터. 



 엄마는 혼비백산해서 우리를 데리고 평택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죄책감과 슬픔과 여러 감정이 뒤섞여 우는 엄마를 그 어린날에는 의연하게 마주 할 수 없었다. 차 안에서 엄마의 얼굴을 외면한 채, 창문으로 비치는 엄마의 눈물을 가끔씩 흘끔 대며 그 마음을 가늠해 볼 뿐이었다.  그렇게 더디기만 한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다 보니 어느새 외삼촌이 계신 평택에 도착했다. 


스스로 선택한 외로운 인생을 살아오신 탓에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큰 외삼촌 식구들과 우리 집 식구들, 몇몇의 지인들 뿐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을 보신 큰외삼촌은 한달음에 달려 나와 슬픔에 빠져있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맞이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시고 외삼촌의 몇 가지 안 되는 유품들을 보여주셨다. 허름한 옷가지 몇 개와 메모장이 전부였다. 엄마는 메모장을 열어 외삼촌의 흔적을 확인했다. 



그때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삼촌의 죽음이었기에 오면서도 슬프거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거나.. 하는 마음은 느낄 수 없었는데. 메모장에 있는 글씨체와 내용들이 내게 외치고 있었다. 


그분이 나의 외삼촌이라는 것을. 



엄마는 틈만 나면 메모를 했다. 티비에서 무슨무슨 의학박사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조언들, 사소한 운동팁들까지. 행여나 놓칠세라 좋은 얘기를 들었다 싶으면 메모장을 가져와서, 메모장이 미쳐 준비가 안되어있으면 옆에 있는 달력의 모퉁이를 찢어서라도 그렇게 적었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유전자에 필연적으로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 나도 어느새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그런데 외삼촌의 메모장에 적혀있는 그 글씨들이, 그 글씨체가, 그 내용들이 생소하지 않았다. 

너무도 엄마의 그것과 같았다. 그렇게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아왔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같을 수가 있을까.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몰려와 안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엄마가 느끼는 슬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왔다. 괜히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한참을 서성거렸다. 



 지금도 나는 매일매일 메모를 한다. 이것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일처럼 매우 일상적이어서 굳이 의미를 부여하거나 새삼스럽거나 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엄마와 외삼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럴 때마다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어쩔 수 없는 정가네 식구임을 확인하며.


메모를 끝내면 엄마한테 전화나 한통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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