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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Oct 22. 2019

DNA-1

발가락이 닮았다.


나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잘생긴 우리 아빠랑 똑 닮았다. 무서울 정도로.


발가락이 똑 닮았다.....


짧고 통통한 손가락, 발가락, 손등, 발등, 그리고 귀,

그리고 웃을 때 보이는 가지런한 치열이 붕어빵이다.



2세를 위해 무조건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겠다고 다짐한 엄마의 계획은 성공했으나

2세들은 애석하게도 엄마를 쏙 빼닮게 나왔다.

그나마 오빠는 5:5 비율로 엄마 아빠를 닮았는데 ‘딸’인 나는 백퍼센트 엄마의 얼굴이다.
얼마나 닮았냐면은.. 어릴 때 엄마를 따라 들어간 세탁소에서 아주머니가
“어머, 저기 사모님이랑 똑같은 아기가 들어오네요!”
하셨다. 여섯 살쯤 됐을 때였나, 기억력이 비상한 편인 나는 아직도 그 아주머니의 웃음이 기억이 난다.


이 강력한 유전자는 모두 외할머니로부터 왔다고 한다. 엄마의 엄마와 똑 닮은 우리 엄마.
외할머니는 엄마가 4살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엄마도 외할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어릴 적에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어 질 때면 엄마는 할아버지 등에 업혀서

“엄마는 어떻게 생겼어?”
라고 물었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허허허 웃으며
“거울 보면 되지.”
라고 막둥이 딸에게 대답했단다.



언제였던가..
저녁에 화장을 지우고 문득 거울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거울 앞에 엄마가 서 있었다. 정말로 내 얼굴 속에 엄마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거울을 바라봤다.

“응....? 진짜네. 거울 보면 되네.”

그 뒤로 가끔 나는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웃는다.



어릴 적엔 아빠를 닮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를 닮은 내 얼굴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목구비는 아빠만큼 예쁘지 않지만 엄마가 가진 고운 피부와 머릿결을 지녔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거울을 보면 되니까.


나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잘생긴 우리 아빠랑 발가락만 쏙 닮았다.

그래도 괜찮다. 어마어마하게 예쁘진 않지만 내가 어마어마하게 사랑하는 우리 엄마랑 쏙 닮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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