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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Dec 22. 2019




 

 꿈을 꾸었다. 어느 공간인지 모르는 장소에는 물고기가 있었다. 낡은 집의 다락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그 여자가 잠을 자는 방이 있었다. 들어가 보니 여자 냄새는 없는 여관방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이 많았고 나는 그 여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여자의 방을 지나면 방치된 논이 있었다. 논은 집의 옥상에 있었고 물이 고여서 연못처럼 되었다. 맑은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와 작은 게가 있었다. 물 깊은 안쪽에는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식당으로 갔다. 내 앞 테이블에 그 여자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여자를 불러 세워 전화번호를 물었다. "010, 다음이 뭐예요?" 번호를 받아 적으려고 내 전화기를 손에 들고서. 여자는 웃기만 했다. 싫지 않은 눈치였으나 번호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꿈이 깨면서 내 번호를 먼저 알려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떴다. 잠이 깼다. 아련한 꿈의 느낌이 남아 있다. 


 연애의 설렘이 언제 적인가. 한 때는 사랑놀이에 온 마음을 쏟은 적도 있었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지금은 먹고 살려는 일에 내 모든 시간을 들이고 있다. 일하다가 그런 나를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다. 공부도 한 때이고 사랑도 한 때이듯이 돈을 벌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짓도 멈춰야 한다. 은퇴를 하면 뭘 해서 먹고살까. 미래에 대한 아무 대책도 없이 여기까지 버티고 살아왔다. 몰려온 것인지도 모르지. 감각이 물고기처럼 팔딱이던 때는 지나갔다. 그래도 살아 있다.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건조하다. 그 메마른 것들 사이에서 이것저것을 본다. 푸른 천막, 뒤엉킨 콘크리트, 버려지는 낡은 것들, 잘려나간 나무토막, 벽돌과 철근, 간판과 조명, 내 차와 남의 차, 흙 묻은 신발, 허름한 나. 



나를 위한 뭐라도 해야 할 텐데, 후회와 반성은 산을 쌓을 만큼 쌓였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어제는 머리를 잘랐다. 아무 기대 없이 눈에 보이는 동네 미용실에 들어갔다. 커트를 해달라고 말하고는 그냥 앉아서 기다렸다. 어떤 나이 든 여자의 머리에 파마액을 바르고 있었다. 파마 약 냄새. 멍하니 전화기를 보다가 신문을 들었다가 잡지를 후루룩 넘겼다. 이쪽으로 앉으라는 말에 앉았다. 거울 속의 나를 가만히 봤다. 전보다 많이 늙었다. 흰머리도 보이고 피부의 퍼석한 느낌이 영락없는 노인의 그것이다. 목을 감싼 천 위로 늘어진 목살이 보였다. 턱선이 둥글다. 최근에 살이 쪘다. 잘 빠지지 않는다. 불편하다. 거울 속의 저 늙은 남자가 누구지. 


계산을 하고 집에 돌아와 거울 속의 나를 봤다. 머리를 자르니 좀 낫다. 잠깐이겠지만 오늘 아침보다는 젊어진 것 같다. 젊음이 부러운 것은 아니지만 건강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몸도 잘 움직이면 좋겠다. 중심도 잘 잡고 관절도 잘 돌아가고. 뻣뻣한 내가 어색해서. 기억은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버려두고 모두 저 멀리로 가버린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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