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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Dec 24. 2019

취향과 짜증

 



 아내와 싸웠다. 장인어른의 치료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청주까지 가야 한다. 


 오늘 시작하려던 일이 내일로 미뤄졌다. 하루 여유가 생겼다. 집에 있으면서 그림을 그릴까 하다가 아내가 먼 길 운전하기 힘들 것 같아 같이 가기로 했다. 차 시동을 걸고 전화기를 켜고 카카오 네비를 열고 usb를 연결했다. 폰 화면에 유재하의 앨범이 뜬다. 아내가 웃는다. "아직도 이런 걸 들어." 전에도 한 번 같은 말을 들었었다. 

"유재하가 어때서?" 뾰로통한 기분이었지만 그냥 넘겼다. 남의 취향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비틀스나 밥 말리 듣는 건 괜찮고 유재하는 촌스럽다는 건가. 발끈한다. 나도 촌스러운 게 뭔지 안다. 그러나 단지 내 취향 안에서 그럴 뿐이다. 취향의 차이야 뚜렷하게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두고 어느 게 낫거나 덜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 고급스러운 것, 더 깊이 들어간 취향도 있고 싸구려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티 내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지. 


 고속도로에 들어가기 전에 동네 우체국에 들릴 일이 있다. 우체국 먼저 갔다가 조금 돌아서 가기로 했다. 볼일 끝내고 다시 시동을 켜는데 카카오 네비에서 안내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화기 볼륨을 높였다. 그래도 소리가 나지 않아 차에 있는 터치 화면에서 미디어를 찾아 전화기와 연결되는 버튼을 껐다. 전화기에서 안내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음악소리가 켜 있는 것도 아니고 이유를 몰라 짜증이 오른 상태인데 아내가 옆에서 블루투스가 연결된 것 아니냐고 한다. 꾹 참고 그건 껐다고 얘기했다. 내 전화기의 usb연결 단자가 이상하다. 좀 됐다. 연결선을 꽂아도 잘 감지가 안 될 때가 있다. 일종의 접촉 불량 증세가 보인다. 그래서 차에 있는 usb단자에 연결하면 약간 혼란이 있다.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니 경험으로 그런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문제는 전화기에 켜 둔 카카오 네비에서 안내하는 말소리가 들리면 된다. 그러면 길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은 운전 중이고 나는 계속 가야 한다. 그런데 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두고 아내가 핀잔을 주듯이 "아까 자기가 음악을 켰잖아."라고 한다. 아까 내가 누른 것은 혹시 음악이 연결되어 있나 해서 살펴보고 정지 버튼을 재확인하면서 누른 것뿐이다. 나도 안다. 음악을 틀 때와 끌 때 누르는 버튼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모르게 화가 폭발했다. "내가 XX인 줄 알아. 내가 그것도 구분 못할 줄 알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전화기의 안내 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모른다. 이도 저도 안되면 그냥 usb연결 단자를 빼면 된다. 그런데 아내가 나를 책망하듯이 내가 누르지도 않은 음악 스타트 버튼을 눌러서 안 되는 거라는 소리를 한다. 유재하의 음악부터 해서 자꾸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내게 뭐라 하는 게 듣기 싫었다. 참다가 터졌다. 결국 더 이상 같이 못 갈 것 같아서 나는 내리고 아내는 혼자 갔다. 


부부로 살아가는 일은 참. 별 것 아니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때가 가끔 있다. 오늘처럼.


 아내가 돌아왔다. 나는 무기력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점심은 컵라면으로 때웠다. 아내가 옷을 정리하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기에 배시시 웃으며 병원 일은 잘 됐냐고 물었다. 아내가 아까 싸웠던 일을 꺼냈다. 

"시작은 유재하부터였어." 내가 짜증의 원인을 털어놨다. "나는 정말 자기를 이해할 수 없어. 며칠 전에는 인터넷 뱅킹하면서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는 것도 못해서 내가 핀잔을 줘도 실실 웃기만 하던 사람이 그깟 노래로 삐지고 그래?" "그깟 노래라니. 취향의 문제는 중요한 거야. 은행 일은 그냥 일이지만 취향은 정체성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의 취향은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도 알아, 그래 인정할게. 그래도 왜 유재하야. 내가 말했지. 나 요즘 우울하다고. 그런데 그런 고리타분한 옛날 노래에 맥 빠지는 거라서 싫은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유에스비에 연결하면 자동으로 나온 게 유재하 일 뿐이야. 그래서 유재하 꺼는 지웠어."  자주 듣지는 않지만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유재하도 그중 하나다. 일종의 ost. 그의 앨범을 지웠다. 2NE1 베스트는 놔뒀다. 


화해랄 것도 없는 화해를 했다. 아내도 혼자 운전하면서 아까 일을 곱씹었나 보다. 그러면서 점점 운전하기 힘들다고 한다. 우리도 나이가 들고 있다. 나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제 운전이 전 같지 않다. 잠깐 싸우고 잠깐 떨어져 있으면서 각자의 감정과 그때의 상황을 복기했다. 그리고 서로를 흘겨보고 웃었다.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국수를 먹기로 했다. 동네에 새로 생긴 국숫집이 있다길래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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