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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an 07. 2020

오수


비가 올 줄은 몰랐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마음이 바빴다. 세수만 하고 서둘러 현장으로 갔다. 8시에 일을 시작하는데 언덕을 오르면서 본 시계는 7:58분이었다. 주차하고 툴 벨트와 네일건nail gun을 내리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안경을 벗고 고글을 썼다. 짐을 들고 불 주변으로 갔다. 인사하고 각자 자기 일을 하러 흩어졌다. 커피 한 잔을 타고 급하게 마시면서 천천히 하자,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종이컵을 불에 던져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지난주 토요일에 만들어 놓고 세우지 않았던 벽이 누워 있다. 다섯 명이 다 올라왔다. 벽이 크다. 일으켜 세우고 자리를 잡으려면 좀 힘이 들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세웠다. 자리를 잡고 못 한 방을 박아 고정했다. 마지막 벽 하나를 더 세웠다. 못을 박았다. 먹선에 맞춰 벽의 위치를 조정했다. 이미 여러 번 해 본 일이다.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다. 


마음의 갈등이 많이 줄었다. 흰머리가 늘어나면서 좀 누그러진 것 같다. 멀리에 두고 온 것 같은데 바로 옆에 흘렸다. 시간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아니, 잘 모른다. 알 것 같지만 모른다. 그리 나쁘지 않다. 지나간 것과 사라진 것을 곰곰이 생각했다. 아침에 운전을 하면서 내 마음의 바닥에 박힌 내 이미지를 생각했다. 며칠 전에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신'. 스스로를 병신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이미지를 잘못 잡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로로든 그런 이미지가 내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뽑아내고 싶지만 쉽진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회전을 하고 좌회전을 했다. 신호를 기다렸다. 나는 여전히 그 시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전히 나를 묶어두고 있는 목 줄.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겠나. 


드물게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어제부터 새벽까지 내린다. 눈이 내려야 할 시기에 비다. 거실 창 밖으로 날이 밝는 게 보였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들. 달리는 자동차들. 저 사람들은 어디로 출근을 하고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까. 왜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할까. 왜 남의 집값이 궁금할까. 왜 사고가 날까. 사고가 난 사람들은 오늘 무슨 생각을 할까. 그래도 몸은 안 다쳐서 다행이야,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같은 위로로 넘길까. 우산을 쓰고 비를 막은 사람들이 걸어간다. 버스는 예정대로 도로를 달린다. 나는 이해를 못한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겠다. 늙음에 대해 딱딱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늙어가는 마음도 좀 말랑해질 때가 있다. 맥주를 살까 하다가 놓았다. 술 먹지 말자. 컵라면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하나 골랐다. 길에 물이 많다. 반짝이는 물빛에 하늘이 보인다. 더럽다. 뭔가 잘못됐는데 고치질 못하겠다. 비 참 징하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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