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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Oct 22. 2022

열세 번째 직업

 그러니까 이럴 줄은 몰랐는데 살다 보니 이리됐다. 입시 미술학원 강사, 일러스트레이터, 집 짓는 목수, 벼룩시장 셀러, 성공한 조각가의 공장 직원, 경량 금속, 인테리어 목수를 거쳐 다시 집 짓는 목수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일당 잡부로 지냈다. 그러다가 일당 일을 나간 현장에서 건축업자의 눈에 들어 그 회사의 직원으로 두 달을 있었다. 나와 사장의 성향이 안 맞아서 그만두었지만 사장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돈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는 예술을 했어도 성공했을 것 같았다. 그 일을 그만둔 후에는 조경일을 했고, 아파트 하자 진단 보조로 짬짬이 일하다가 돈이 되지 않아 비실비실거렸다. 손재주를 믿고 원목 가구를 만드는 일을 두 달 정도 배우고는 그만두었다. 그 뒤로 옛 경험을 살려서 '취미 회화' 화실을 차렸지만 영업실적은 바닥이었다. 회원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게 나쁘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돈이 되지 않았고 적자였다. 대출금이 목을 죄어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횟집 직원이다.


광어의 뼈만 남기고 최대치의 살을 발라내는 칼질을 배우고 있다. 열세 번째 직업이다. 회를 뜨는 기술보다는 가게를 운영하는 모습을 유심히 본다. 일 년을 버티기로 마음먹고 하는데 과연 내가 얼마나 견딜지 알 수 없다.


별 짓 다하면서 산다. 뭐가 문제기에 이러고 사나.

이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돈이라는 걸 안다. 그만한 경험을 했고 나이도 들었다.






 

 금요일 낮술로 혼자 도다리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던 사내가 취했다. 발음이 꼬인다. 화장실을 물어서 알려주고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사내가 말을 걸어온다. "일은 재미있어요?" "일을 돈 벌려고 하는 거지 재미로 하나요." 내 대답이 잘못이었다. 낮술에 취한 늙수그레한 사내의 말이 길어질 눈치다. "저도요, 대학교 졸업하고 오십 대까지는 자알 나갔어요. 그러다가 고꾸라졌죠. 거제도 조선소까지 갔었어요." "거기서 뭐하셨는데요?" "배 밑바닥 만드는 일을 했죠. 조공으로요." "어느 파트였는데요? 조공도 별게 다 있으니까요. 도장이에요? 용접이에요?" 주워들은 얘기로 조선소의 일이 어떤지 조금 눈치챌 수 있다. 그는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에 하청에 하청의 맨 밑바닥 일이요." 먹물인 것 같다. 몸 쓰는 일은 처음일 거고 그곳에서 밑바닥 사람들의 맨 얼굴을 겪었겠지."먹고 자고 하면서 일했는데 룸메가 파주 깡패 출신이야. 밖에서도 힘든데 들어오면 더 힘든 거야." 나도 안다. 그런 상황, 그런 마음.


돈만 보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양복 입고 반짝이는 유리창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밑바닥 사람들의 먹고 먹히는 관계는 지랄이지.


"저는 예전에는 서울을 벗어나면 세상이 없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거제도까지 갔더니 이젠 세상 모든 게 다 내 일터야.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취했다. 고작 그 정도로. 비틀거리고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누구라도 붙들고 속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런데 나는 사장 눈치를 봐야 하니 오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다. 적당히 말을 끊고 가게로 들어와 앉아 있었다. 낮술 사내가 들어오면서 내 앞에서 다시 말을 꺼낸다.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안 그래 보일지 몰라도 내가 60이 넘었어요." 말을 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윽 문지른다. 희끗한 머리, 퍼석한 피부. 그 정도로 보인다. 나도 하는 착각이지만 나이는 얼굴에 드러난다. 제 아무리 젊은 마음으로 살더라도 주름진 피부와 어딘가 낡은 몸의 느낌을 감출 수는 없다. 눈밑 처진 주름도 그렇고. 스스로만 착각하는 것이지. 거울을 보다가 아직 나는 괜찮아하면서.


서울 어딘가의 중학교에서 안전지킴이 같은 일을 했었고 얼마 전에 일을 잃은 것 같다. "제가요, 남 밑에서 일하는 걸 잘 못해요." 나도 그렇다. 누군들 남 밑에 있고 싶겠나. 빵빵한 연봉이 보장되지 않는 한 뱀 대가리가 낫지. "잘 있다가도 맨 위 꼭대기, 대가리 하고 싸워요."


낭만적인 사람인 것 같다. 아직도 먹물 시절의 양복과 기름진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손님이 들어와서 얘기가 끊기고 취한 사내는 말 상대를 놓친 채 혼자서 남은 술을 마셨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꺼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제 얘기 잘 들었죠. 그러니까, 맞는 일을 찾으세요."


난 이미 찾았다. 내가 즐겁고 재미 있는 일이 뭔지 안다. 돈이 안돼서 그렇지.


돈 앞에 장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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