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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May 28. 2023

석 달

 3월 초에 목공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내가 '조증'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수업 중에도 농담과 헛소리를 남발했고 집에 와서도 쉼 없이 떠들었다. 머릿속에서 탱글탱글한 어떤 감정들이 마구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 오랜만인데, 돈을 목적으로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아니어서 위계도 없고 지시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하는 환경이다. 







3,4월에는 수업 커리큘럼을 따라 액자와 스툴을 만들었다. 지금은 작은 캐비닛을 만들고 있다. 20대에서 60대까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로 살아온 맥락이 다르고 세대가 겹쳐 있으니 그만큼 복잡한 말들이 속에 있을 것이다. 자세한 것들은 서로 묻지 않고 말하지도 않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서 생각하고 만들고 다듬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애쉬, 비치, 메이플, 체리, 오크, 월넛 등의 나무를 자르고 깎아 가구를 만드는 일은 돈으로 환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들이는 노력과 수고는 많지만 제 값대로 돈을 받기 어려운 일이 하드우드 hardwood로 가구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수압대패에서 한 꺼풀 벗겨내고 나무의 속살이 제대로 드러나면 나뭇결의 맛이 보이고 손끝에 닿는 촉감이 좋다. 요즘 같은 시절에 목공방에서 손으로 가구를 만드는 일은 벼농사를 짓겠다는 빵빵한 스펙의 청년을 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빛나는 일이 아니다. 점점 줄어드는 일이고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 내 손으로 만드는 과정의 몰입과 납작한 도면이 구체화되는 형태를 보는 재미가 제법 있다. 가내수공업형 인간들은 늘 있는 것이니 그런 부류들에겐 좋은 취미일 수 있겠지. 








 나무를 다듬는 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움직인다. 일은 단순하다. 나무를 자르고, 깎아내고, 구멍을 파고, 원하는 상태의 모양을 만들어 끼워 넣고 조립하면 쓰임이 있는 어떤 것이 된다. 처음 가공하는 과정은 주로 모터 달린 기계들을 이용하지만 목공은 수공구에서 출발하고 수공구로 끝을 맺는다. 대패, 끌, 톱. 그중에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 대패다.







 대패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대로 시간을 내서 만져 본 적은 없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새로 산 대패를 세팅해 보겠다고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 하다가 하나를 작살냈다. 그 실수를 바탕으로 다른 놈을 만져보고 있다. 목수 일을 직업으로 할 때 사두었던 대패와 이런저런 이유로 마련한 대패를 모두 꺼내서 연마를 했다. 주말마다 마음먹고 싱크대 앞에서 손가락이 휘도록 대팻날을 갈았다. 반짝이는 어미날의 표면을 쓰다듬으면서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편갈이가 있었다. 편갈이는 연마를 하면서 힘이 한쪽으로 쏠려 날의 평행 상태가 깨지고 기우뚱한 '찐따'가 됐다는 의미다. 이러면 대팻날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없다고 알고 있다. 


왜 헛짓을 해야만 제대로 하는 게 뭔지 알게 될까. 






 

대패의 바닥평을 잡고, 물매면과 날골의 관계를 이해하고, 어미날과 덧날을 맞추고, 누름쇠를 옮기는 정도까지 알게 됐지만 내가 원하는 두께로 나무를 깎는 일은 여전히 멀다. 대패는 단순하면서 예민하다. 예민해야만 미세한 대패밥이 나오는데 몸으로 전해지는 그 감각을 아직 모른다. 어느 정도 힘을 주고 당겨야 마음먹은 대로 되는지, 애써 잡아놓은 바닥평이 어째서 말을 안 듣는지 아직 모른다. 







 석 달이 다 되도록 만든 액자 두 개. 겨우 만들었다. 연귀로 맞춘다고 말하는데, 45도 각의 나무를 맞춰서 네 귀퉁이를 직각으로 만드는 일이다. 3월 초에 시작한 일을 여태 못하다가 지난주에 마쳤다. 계획은 아주 작은 주먹장으로 네 귀퉁이를 짜맞춤 한 액자였다. 톱과 끌만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몇 번을 실패하다가 그만뒀다. 그냥 그림만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마무리하자고 결론지었다. 디테일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당장은 다시 시도하기 싫어서 멈췄다. 테이블 쏘를 사용하면 수월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내가 손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손을 다쳤다. 그 무섭다는 테이블 쏘에서 액자에 쓰일 나무를 켜다가 튕겨져 나온 나무에 손가락을 맞았다. 피가 났다. 이틀이 지나 밴드를 갈면서 살펴본 상처는 5mm 나무 조각의 사각형 단면 모양으로 찍혔다. 직각을 유지한 손가락의 상처를 보면서 역시 테이블 쏘는 무섭고 평등하다는 생각. 상처가 직각으로 날 수도 있구나. 테이블 쏘는 사람의 나이와 성별과 경력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잠깐의 실수를 그대로 돌려준다.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다친 뒤 며칠은 테이블 쏘를 보면 무서웠다. 그 마음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서 나를 지켜주면 좋겠다. 적당히 무서워하고 능숙한 상태를 경계해야 다치지 않는다. 


아무튼, 석 달이 지났다. 이 과정의 절반이 지난 것이지. 남은 석 달 동안 캐비닛과 의자를 만든다. 의자가 가장 까다롭고 어려워서 한스 베그너 Hans Wegner의 의자를 카피할 생각이다. 따라 하다 보면 눈으로 볼 때는 모르던 뭔가를 배울 수 있겠지. 수공업이 재미는 있는데 먹고사는 데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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