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쌤," 다른 사람과 얘기 중인 호두 쌤을 대뜸 불렀다. "호두 쌤, 날 봐요, 저 왔어요. 분명히 제가 여기 왔어요." "예에, 그런데요?"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호두 쌤이 나를 보며 되물었다. "그런데 카드가 같이 안 왔어요. 분명히 전화기를 챙겼는데 와서 보니 없네요. 전화기에 카드가 같이 껴 있거든요." "예에~예, 술을 끊으세요. 그게 나을 것 같네요." "그래야 할까요? 이젠 정말 술 담배 끊고 살아야 할까요?"
사정을 이미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낄낄대며 웃는다.
술 담배를 계속하기엔 좀 지치는 나이이기는 하다. 요즘은 노가다판에도 담배 안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에 나갈 준비 하면서 분명히 전화기를 거실 테이블에 올려놨었다. 나오면서 전화기 먼저 뒷주머니에 꽂고, 가방 어깨에 둘러메고, 들고 갈 짐 있으면 들고, 마지막으로 차 키를 주머니에 넣고 나온다. 항상 비슷한 루틴으로 움직인다. 학원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키 빼고 내린 뒤에도 내가 전화기를 잊고 나온 것을 몰랐다. 1층 작업실로 들어가면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출근 카드를 찍으러 슬로프를 올라가려다가 전화기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차에 두고 내렸나 싶어서 찾아봤지만 없다. 이게 벌써 네 번째다. 두 번은 퇴실 카드를 찍지 않고 집에 갔고, 두 번은 전화기를 집에 두고 출근했었다.
처음 카드를 집에 두고 온 날은 내 뒤에 뒤에 뒷자리에 있는 공대생 출신 신 씨에게 커피와 점심을 사내라고 들러붙었다. 돈이 없는데 어쩌나. 철판을 깔아야지.
어제는 2층에서 출근 카드를 찍고 밖으로 나와 화장실에서 오줌 누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와서 또 찍었다. 6분 사이에 두 번을 찍었다. 그랬더니 퇴실로 기록됐다. 점심 무렵에 호두 쌤이 전화기의 출석부를 보여주면서 내가 이미 퇴실했다고 알려줬다. "내가 벌써 집에 갔다고요?" "예, 그렇게 뜨네요."
1층 작업대에서 캐비닛을 만들고 있는 내가 아침에 이미 퇴근했다고 한다. 수업 마치고 퇴실 시간에 혹시나 싶어서 찍어봤더니 다행히 정상적인 퇴실로 뜬다. 해프닝이었다.
국비를 지원받아서 수강하는 교육이라 출결관리가 '빼박'이다. 개인이 지급받은 카드로 출결을 체크한다. 출석률과 과정 수료율이 일정 퍼센티지를 채우지 못하면 중도 탈락하는 체계다. 호두 쌤이 출결관리를 한다. 나는 아직 한 번의 결석도 조퇴도 하지 않았다. 실업자여서... 갈 데도 없으니.ㅠㅠ
지각이 한 번 있는데 학원으로 출근하던 길 중간 지점에서 전화기를 놓고 온 것을 알았다. 급하게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는 카드가 없으면 출석을 인증할 방법이 없는 줄 알았다.
오늘처럼 몸은 학원에 있는데 카드가 다른 곳에 있으면 사유서를 제출해 사유를 증명해야 한다. 영화에서 보는 범죄자들의 머그샷처럼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쯩'을 들고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 신분증을 들고 셀카를 찍을 때 신분증의 얼굴과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3개월 수업 들으면서 이런 '뻘짓'을 네 번을 했다. 혹시 치매인가? 머리는 둔하지만 기억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것도 다 됐나 싶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마누라와 새끼가 이제 막 저녁밥을 먹으려고 한다. 책상 옆에 가방 걸어두면서 모니터 쪽을 보니 동그란 충전기 위에서 전화기가 내일 배움 카드를 끼고 뜨끈하게 몸을 데우고 있었다.
망할 놈의 전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