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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Jun 03. 2023

라틴 아메리카


<체 게바라와 랄랄라 라틴아메리카 / 최광렬 글 / 열다>


러시아 작업이 끝나고 바로 들어간 단행본 작업. 전집이 돈이 되기에 놓지는 못하지만 작업의 만족도는 단행본만 못하다. 그림만 본다면 전집은 그림책이기에 그림의 비중이 더 많다. 그렇지만 책의 포맷이 정해져 있고 출판사에서도 요구하는 틀이 있기에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움직일 공간이 적다. 게다가 판매망. 전집은 일반 서점에는 없다. 보통의 책과는 다른 유통과정을 갖고 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들여 작업을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엔 한계가 있다. 물론 전집의 장점도 있다. 특히 돈이 그렇다. 전집 일 7~8개를 하면 대략 세 식구가 먹고 살 정도는 된다. 좀 부족해도 빚 없이 지낼 수 있다. 이게 전집 일을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처음 의뢰를 받고 원고를 살펴보니 그릴 게 많다. 단행본에는 보통 작은 그림이 많이 쓰이기에 그림으로 재주를 부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 책도 단행본이라 큰 그림을 넣을 지면이 없었다. 그래서 몇 개의 챕터마다 들어가는 정보에 펼침그림을 넣기로 했다. 그 몇 장의 그림에 정성을 들였다. 배경으로 이 그림이 쓰이고 빈 공간에 각 나라의 특징과 자잘한 정보를 넣는 형식이다.


광장과 사람들과 건축물들. 자료를 찾으며 덤으로 알게 되는 작은 정보들. 이 장면은 어디더라? 페루였던 것 같은데. 어느 여행자가 이 지역의 여행기를 올린 게 있어서 재미있게 봤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똑같지만 그 지역의 정보를 알고 그곳의 공기를 머리에 채운 후 그리면 나아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게 있는 것이지. 그 지역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과 차별과 억울함을 어렴풋이라도 알면 그리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그렇다.







 엘 시스테마. 에콰도르로 기억한다. 가난한 아이들이 쉽게 범죄와 마약에 노출되고 그것이 사회문제로 커지자 소외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일을 벌였다. 그 효과는 상당했나 보다. 여기저기 소문도 나고 자칫 범법자의 길로 들어섰을 아이들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단속과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어도 사람은 사람이다. 부자들과 똑같은 심장을 갖고 있지.


실제 삶에서 맞닥뜨린 관계에서는 귀족의 피와 천민의 피가 다르다고 하고 부자들의 똥과 가난뱅이의 똥이 다르다고 하지만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같다. 사람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차별이겠지. 경멸의 눈길이 한 사람의 영혼을 뒤틀고, 뒤틀린 마음은 억울함과 분노로 차가워진다. 계급은 생활 곳곳에 있다.








 쿠바의 하바나 시. 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지만 가장 행복한 나라에도 속하는 곳이라고 읽었다. 하바나를 사진으로 보면서 한번쯤 쿠바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헤밍웨이가 있고 춤과 노래가 관광지 상품으로 팔리는 도시다. 거기엔 의사와 목수의 연봉 차이가 없다고 했던가. 다 같이 가난하자, 모두가 가난하면 차별도 없고 비교도 없다.


그렇다면 낙원일 텐데, 설마 그러려고.








 멕시코의 어느 도시. 집들의 색깔이 달라 그것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도시여서 여행자들이 한번쯤은 들른다고 한다. 역시 사진으로 보니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여행기에서도 싸고 친절한 게스트하우스 정보가 많다.


낯선 타지의 삶이란 그리 녹록지 않다. 여행의 설렘도 잠시 뿐이다. 이국의 풍경은 쉽게 익숙해지고 모르는 언어도 곧 눈치챌 수 있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어디를 가도 사람의 욕망과 분노와 질투, 무시, 잘난 척, 어리석음, 폭력성은 변하지 않는다. 남극에서 북극까지 어디에 흩어져 살던지 사람들은 사람이기에 갖는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매일 짐을 싸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여행의 나날이 피곤하지만 그런 피곤의 순간에 배우는 것이 있다. 내가 익숙한 장소에서 벗어나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떨어져 있는 밤이면 두고 온 서울의 풍경과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돌아가면 잘 살겠다는 기특한 다짐도 한다. 거리를 두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여행이고 가장 진한 방법은 이별이다.


내가 나를 멀리 밀어 두고 가만히 바라보는 밤. 그런 시간에 쌓이는 나와 나의 시간. 나는 왜 사는가, 혹은 남은 시간을 뭘 하며 살까.



힘들게 그렸고 담당자들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늦어서 새카맣게 속이 탔었다.


2012년 가을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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