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임 Aug 09. 2023

아이가 말을 걸었다 16

나 이제 동생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장남, 장녀이신 부모님 슬하에 삼남매 중 가운데 낀 둘째로 살아왔다. 명절때마다 30여 명이 넘는 식구들이 집에 모여서 떠드는 풍경은 아주 익숙하다. 워낙 어릴때부터 대가족 속에서 살아오다보니 어느 명절에 식구가 20명도 안모이면 서운하기까지하다. 사춘기때도 그런 분위기가 싫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피를 나눈 많은 사람들'이라고 답할 것 같다. 아직도 아이와 나, 아이아빠 이 세사람이 가족이라는 생각보다는 친정에 있는 수많은 나의 친인척들이 가족의 이미지에 부합한다.


우리 세사람은 가족 자체가 아닌, 가족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워낙 가족이 많다보니 나의 존재는 사실 미미했다. 없어져도 티도 안날, 있어도 존재감 없는. 그런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전히 사랑받는 외동을 그렇게 부러워했나보다. 우리 삼남매는 무척 사이가 좋다. 언니와 동생은 정말 착하고 헌신적이다. 나도 그들을 사랑하고 아낀다. 하지만 평화로운 마음 밑에는, 항상 언니를 질투하고 동생을 시기했다. 언니는 언니라서, 동생은 남자라서, 나는 둘째니까. 이런 마음이 늘 들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미운 마음을 기저에 깔고 있었던거다.


대가족의 일원이고 싶어하지만, 오직 나 혼자만이 주인공이고 싶다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공존의 마음을 알아차라지 못했는데 막상 내가족이 생기고보니 그 사실을 알았다. 셋은 부족하다 여기면서 하나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섯살무렵, 본격적으로 동생낳아달라 요구가 시작됐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만해도 전혀 둘째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형제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외로워할 아이를 생각하며, 먼 미래 혼자 남을 아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는거였다. 남편과 10살의 나이차이(더하기 성격차이)를 고려하며 끊임없이 '안돼'를 얘기했다.


그 시간이 무려 1년 반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동생이 갖고싶다던 아이가 변했다.


"엄마, 나 이제 동생 필요 없어요."


이제 포기한건가, 이유를 물었다.

얘기하자면 이렇다. 동생이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집에서 매일 엄마 심부름만 한단다. 동생이 해야될 걸 자기한테 시키고 엄마가 해야할 것도 자기한테 시킨단다. 그리고 혼날 일이 더 많아졌단다. 그 친구는 동생 때문에 자기가 혼나고 심부름 하는 상황이 너무 싫댄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유치원에서 나누다가 깨우친거다. 동생이 자기한테 필요가 없다는걸. 자기들끼리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재밌는 일이다.


"정말 필요 없어?"


이제는 완강히 거부한다. 자기는 자기랑 놀아줄 동생이 필요했는데, 동생이 생기면 자기가 해야할 일이 더 많아질거란다. 나로써는 스스로 물러나줌이 고맙다. 언젠가 동생이 있었으면 좋았을걸하는 미련이 남았을 때, 이 얘기를 해주려고 꼭꼭 기억해뒀다.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도 솔비처럼 외동의 길을 택했을까. 가족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이아닌가 싶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동생도, 내가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바뀔 수 없는 서로의 환경이다. 건강한 생태계는 생물의 종수가 다양하듯, 내 가족 생태계는 모든 것이 고루 갖춰진 건강한 상태였다. 문득 아이의 생태계를 통제하고 있는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형제의 경험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가 말을 걸었다 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