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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Aug 14. 2023

아이가 말을 걸었다, 17

"엄마 나는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 낳을 거예요"

석가모니부처님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를 두고 출가를 했고 수행자가 됐으며 부처님이 됐다. 부처님이 낳은 아이 역시 출가를 했고, 부처님의 뛰어난 열명의 제자 중 하나가 된다. 그는 라훌라다. 한번은 그런 생각을 했다. 부처님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았다면 부처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아주 조금, 결혼과 양육의 경험이 수행에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결혼과 양육은 상상 그 이상으로 많은 번뇌를 가져다 주므로 그 둘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격정적인 순간 몇 가지를 놓치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이다.


확실히 결혼과 양육은 삶을 흔들어 놓는다. 특히 나같은 경우에는 육아, 양육이 삶의 궤적을 흔들어놨다. 결혼의 전과 후는 타격감이 없었지만, 아이를 낳고는 꽤 많은 타격을 받았다. 아이가 말을 하면서부터는 더 그랬고, 지금처럼 거의 성인에 버금가는 어휘를 구사하는 7살이 되고는 더 그렇다.


대화의 난이도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이와의 대화는 꽤 높은 피로감을 유발한다. 나는 이전까지 써보지 못했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어휘들을 골라내야 했고, 비꼬지 않으며, 말에 뼈를 심지 않는 그런 자세로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 주어와 서술어가 매우 짜임새 있게 조직된 문장을 구사하고, 지나친 한자어를 삼가며 부정적 감정을 담은 단어는 절대 금기시한다. 이런저런 조건들을 거쳐 내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사랑 그 자체다.


잠들기 전 나누는 대화가 특히 그렇다.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너는 가장 소중한 아이라고 끊임없이 얘기해준다. 진심이기도 하고, 스스로 사랑받고 있는 아이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어느날 밤,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야 사랑해"

"엄마,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

"응 나도~"

"나 서른살이 돼도 엄마랑 살거야"

"그건 안돼~ 스무살 되면 따로 살아야지"

"아니야, 할머니가 돼도 엄마랑 같이 살래. 결혼도 안할거고 아이도 안낳고 엄마랑만 살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할거야?"

"그럼....... oo언니처럼 남자친구만 하면 되지"


갑작스러운 독신선언도 웃긴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도 안하고 연애만 하겠단다. 사랑이 과했나, 너무 좋은 얘기만 해줬나. 엄마에 대한 아이의 사랑이 날로 깊어진다. 스무살까지만 같이 살기로했던 우리의 지난 약속은 어디로 간걸까.


사랑한다는 건 믿음에 보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사랑을 철썩같이 믿는 아이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할줄 아는 아이가 되고 있는거다. 이래서 사랑이 중요하다. 우리의 믿음은 그렇게 서로의 곁에 남고싶어하는 마음으로 쌓여가고 있다. 내 아이의 가장 큰 두려움은 엄마와의 헤어짐일거다. 아직 어린 아이지만, 나는 언젠가 닥칠 우리의 이별을 위해 이제는 솔직한 언어들로 대화를 시작해야할것 같다. 무한한 사랑에 끝이 있음을 차근차근 설명해줄 날이 오겠지. 너의 독신은 지지하지만, 엄마는 다큰 캥거루를 안고갈 수 없는 사람임을 이제는 설명해줘야 할것 같다.


'내 소중한 라훌라야, 영원하지 않음을 배워야 할 때가 너에게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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