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 리뷰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섭(이희준 분)이 상아(한지민 분)를 나무란다.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 해도, 너희 어머니 그렇게 춥고 외롭게 돌아가신 모습 보면 네가 용서할 줄 알았다고. 그러자마자 상아가 거칠게 폭발한다. 네가 뭘 아냐고. 한지민이라는 배우가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산산조각내고 상아로 돌입하겠노라 선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용서하라'는 말은 폭력적이다. 그 누구도 다른 누군가의 용서를 명령할 수 없다. 용서라는 건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동시에 큰 아픔을 감내하며 치러야 한다.
자신을 버린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 평생을 고통스러워 한 상아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한 소녀를 만난다. 그 아이 몸에 새긴 상처들을 보며 그녀는 무너지고 분노한다. 동시에 자신을 옭아매는 옛 기억들을 마주한다.
<미쓰백>은 작년 하반기 개봉 이후 마니아 팬덤을 형성하며 이례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긴 시간 배급조차 불투명했던 여성 1인 주연의 서사가 거대 자본의 멀티플 스타 캐스팅 상업영화들 틈에서 영롱히 그 존재감을 빛냈다. 흐뭇하고도 바람직한 소식이었다.
<미쓰백>이라는 강렬한 작품 속에서 눈에 띄는 점은 상아와 지은(김시은 분)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상아가 용서를 이뤄가는 과정이다. <미쓰백>의 힘은 가벼운 신파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을 삽입시켜 표면적으로 이해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렇게 상아가 엄마를 ‘용서하게'하지 않는다.
대신, 상아의 아픔과 상처를 객관적인 톤으로 담아내고 엄마의 시점을 덧붙여 입체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그 중심에 지은이와 상아의 연대가 있는 것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우울증이 극심했던 상아의 엄마 명숙(장영남 분)은 술에 의지해 하루를 버텼다. 술에 취하면 그녀는 어린 딸 상아를 폭행했다. 상아는 엄마에게 학대당하고 결국은 버려진 기억으로 "인생이 시궁창에 떨어졌다"라고 생각한다.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너지지만, 상아의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누구보다 필요했던 존재가 자신을 가장 아프게 했으니까. 엄마도 자신을 버렸기에 상아는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도, 믿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줄 수 없다고 여긴다. 아내도, 엄마도, 다른 행복도 자신의 삶에는 없다고.
그렇게 제주도로 떠나 지금껏 살아왔듯 외롭게 고립되려는 상아 앞에 지은이 나타난다. 상아의 아픈 기억을 생생히 불러일으키는, 어린 시절 상아와 꼭 닮은 지은. 누구보다 지은이의 괴로움을 아는 상아는 도무지 이 아이를 지나칠 수가 없다. 밥을 사주고, 옷을 사주고, 찾아가 보살펴주고 끝내 데리고 떠난다. 상아와 지은이의 연대가 아름다운 이유는 단순한 동정심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은이와 가까워질수록 상아는 괴로워한다.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라서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층적인 이유는 용기를 내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꾸만 지은이를 지켜주고 싶은데, 지켜줘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이 없다. 평생을 걸쳐 저주한 엄마인데, 자신이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상아는 사랑을 받은 기억도, 보살핌을 받은 온기도 없는데. 상처투성이 실패자인 내가 감히 어떻게 다른 인생에 끼어들 수 있을까. 개 한 마리도 안 키워봤다는 미경(권소현 분) 말에 반박도 못 하는데.
그렇게 상아는 오랜 시간 미뤄온 엄마를 되짚는다. 학대당하고 버림받은 상처에 마음속에서 저 깊이 치워버린 엄마. 놀이공원에서 상아를 버리며 자신을 떠나라고 간곡히 말하던 슬픈 엄마의 눈빛, 수십 년이 지나 상아의 집에 찾아와 통장을 놓고 가던 엄마의 뒷모습.
살다 보니 이해하게 되는데, 이해하기에는 상아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그렇게 상아는 가슴 아픈 모습으로 외로이 죽은 엄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위해 오열한다. 상아가 분노를 지나 용서에 한 발짝 가까이 간 순간이다.
소설가 최은영은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살면서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불가능했다고. 그렇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나를 아프게 했다고 그 사람이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입장에 내가 서게 되고, 나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세상에 이해받지 못할 마음이 없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 가엾고 또 가엾다. 본인 손으로 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린 엄마의 절망. 경찰차로 뛰어들며 자신을 애와 떼어달라고 울부짖는 상아 엄마의 눈물. 아이를 버렸다는 기억으로 끝까지 괴로워했다던 엄마의 죄책감. 영화는 엄마의 사실들을 틈틈이 들려준다. 우리는 그녀가 아이를 버렸다기보다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고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아의 상처가 없는 것이 될 순 없지 않은가.
상아가 엄마를 이해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아픔은 아픔대로 인정하고 난 뒤 비로소 지은이를 힘껏 끌어안는다. 상아의 엄마는 상아를 지키지 못했지만, 상아는 지은이를 지킬 것이라 용기 낸다.
장섭의 강요가 아니라 상아는 지은이를 통해서 용서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그리고 영화는 상아가 분노로 점철되었을 때부터, 지은이를 처음 조우하고, 지은이를 지키기에 스스로의 자격을 자신 없어한다 결국 본인의 아픔을 직면하고 용기내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찬찬히 짚어나간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때론 한지민의 눈빛으로 입술 깨문 독한 발걸음으로 보여준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준 아픔까지 묵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지만,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두어야 한다.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많이 다쳤다는 것을 별개로 인정해야 우리는 역설적으로 용서에 다가간다. 마음속 깊이 어딘가 감춰둔 어두운 자신을 용서한다. 엄마도 버린 나 같은 삶을 안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을 하는 것이다. 나는 받지 못했지만, 이미 실패했지만, 그래서 나는 상처투성이 볼품없지만 그럼에도 용기 내는 것. 친구를 잃은 사람이 새롭게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애인에게 상처 받은 사람이 새롭게 사랑을 믿어보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상아가 지은이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자신을 '미쓰백'이라 명명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상아가 지은이의 손을 잡고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래서 어두운 상아의 삶과 엄마를 용서하고 지은이를 안아주기까지. 우리는 영화를 따라 상아와 슬퍼하고 분노하며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깊이와 힘을 가지고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미쓰백>.
by U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