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U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lim Feb 26. 2017

발칙한 삶의 예찬론

영화 <매기스 플랜> Review

                                                                          

                                                                                                               

  '살아가다 보면'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어쩌면 무기력한 변명에 그치는 말인 것 같아 기피했다. 하지만 정말 살아가다 보면, 살아가다 보니 생기는 일들이 참 많다. 의도는 무색해지고 진심은 왜곡된다. 신나서 달려온 곳이 기대와 다른 것은 정말 일어나는 현실이고 그 상황에서 손가락질받을 사람은 없다. 완연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삶이다. 우리는 개인의 입장만을 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입장을 어깨너머로 보다 보면 이해 못 할 것이란 없다. 

                                                                     

                                                                                                               

  매기는 사랑이 많다.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존(에단 호크)은 그러한 매기를 천상 어머니인 사람이라 묘사한다. 주는 것이 기쁜 사람이 바로 매기이다. 그것이 비단 모성으로만 국한되는 일도 아니다. 그런 그녀는 늘 열심히 살고, 자신보다는 남들을 먼저 생각한다. 그녀의 직업만 봐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시장과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누군가를 위하는 사람이 바로 매기다. 

  하지만 사랑이 많고 주는 것이 기쁜 사람이라고 관계에 있어서도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관계라는 것은 그저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상호작용이다. 그렇기에 동등한 관계에서 사람과 사람이 깊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선 누구 한 사람의 사랑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매기는 결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생을 함께 약속할 만한 사람을 만나고 그를 알아가고 심지어 그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만을 가지고 싶어 한다. 자신의 사랑과 에너지를,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매기에겐 아이인 것이다. 자신이 지켜주고 보살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

  매기가 결혼에 대해 체념하고 유전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가지려고 할 때, 존을 만난다. 사랑을 듬뿍 주고 자신에게 맞춰주는 사람이 필요한 존을 만난다. 존의 소설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어주고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관계는 상호작용이기에 그 둘의 사랑은 장애물에 부딪힌다. 처음 사랑에 빠진 모습들이 남루해져 간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들은 그때 서로가 서로에게 맞았고 필요했고 그래서 사랑했다. 곁에 있었다. 매기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존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가 가진 고민들을 동경했을 것이고, 그런 그가 자신을 찾고 의지한다는 사실이 못내 기뻤을 것이다. 그가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존은 소설이 자신의 길이 아님을 소설을 한참 쓰던 중 깨닫게 되지만, 자신의 소설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어주고 응원해준 매기에게 그 사실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사랑받기 위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 매기는 자신이 돌보아야 하는 아이들과 자신이 도와주어야 하는 학생들에 모자라 존의 일까지 돌보아야 하는 현실에 지쳐간다. 존이 더 이상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매기의 잘못이라 볼 수는 없다. 결혼 생활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유들로 겹겹이 쌓여있다. 온전히 누구 하나의 잘못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삶이다.

  이 문제 상황에 닥친 매기의 선택이 참 황당하고도 재밌다. 결혼했던 존과 사랑에 빠져 그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했다는 죄책감. 그럼에도 자신의 사랑이 식었다는 더 큰 죄책감에 마주한 그녀는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계획을 짠다. 사실 내용만 나열하다면 (특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는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시트콤이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서 삶을 예찬하는 유쾌함을 선사한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삶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행복을 찾아 나가려 발버둥 치는 인물 하나하나를 사랑스럽게 그려낸다. 사람 하나가 가질 수 있는 깊은 사랑과,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동시에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이고 한없는 선함이 어떻게 누군가에게 지독한 이기심이 될 수 있는 지도 보여준다. 결코 무겁지 않게. 아주 유쾌하고 발랄하게.


  영화 속 인물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이 영화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같진 않지만 버금가게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동시에 원래 그런 거야, 상황은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닐 수 있어. 그렇게 말해준다. 이 영화가 깜찍하고 발칙한 표정을 지으며 삶을 예찬하는 방법이다.




영화를 읽어내고 써 내려가다.

Film x Ulim, FilUm

by Uli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