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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n Dec 18. 2023

세상을 몰라서 카페를 차렸다.

BX디렉터의 카페 창업기. REBULT COFFEE

2023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며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갔다.

당연스레 커피 한 잔이 필요해진 와이프와 나는 인스타그램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주의 어느 허허벌판에 위치한. 나름 힙해 보이는 카페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카페는 차리는데 얼마나 들었을까? 항상 오늘처럼 손님이 많으려나?
이런데 있어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구나.



나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다. 몇 번 안 되는 아르바이트 경험조차도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게 거의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장사란, 커피를 팔든 옷을 팔든 믿음직스러운 직원 한두 명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로만 보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의 일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벌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런 딴생각(?)이 든 것은 당시에 회사 일이 조금 덜 바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반을 디자이너로 살아온 나에게 조금 더 새롭고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직업이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더 나은 일거리를 상상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커리어에 있어서 뭔가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 소비자를 직접 마주하는 판매자로서의 경험이 없었기에, 내가 바라보는 일련의 마케팅적, 디자인적 아이디어들이 다소 이상적인 가설일 뿐이었거나 경영자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생각은 단순했고, 실행은 빨랐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나의 카페 창업 시나리오는 이러저러한 잠재적 욕구들과 맞물리며 빠르게 실행에 옮겨졌다. 십여 년간의 나의 일에서 느꼈던 갈증 아닌 갈증, 뭔가 특별한 것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다른 여러 가지의 제약과 현실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은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고 믿었고, 조금 더 중요한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듯이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기획자라는 원래의 업과 시너지를 내는 것이 카페 창업의 이유이자 목표였기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만한 곳, 너무 과열된 상권보다는 나름대로의 컨셉과 스토리를 담아낼 만큼의 여유가 있는 상권이 좋았다. 자본금이나 운영 리스크를 고려했을 때, 그리고 오토매장이라는 성격을 고려했을 때 30평 내외의 규모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인테리어와 브랜딩은 자신 있는 부분이었으니,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괜찮은 분위기를 낼 수 있을 적당한 매장을 찾기로 했다.




시원하게 뚫린 창 너머로 산책로가 보이는 곳. 지면보다 살짝 낮은 반지층 공간이지만, 높은 층고 덕분에 답답함 보다는 아늑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창 뷰가 마음에 들었는데, 대칭 형태를 이루는 양쪽의 계단으로 인해 공간이 조금 더 희소하게 느껴졌다. 이 동네는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에 위치한 한적하고 작은 신도시이다. 신혼부부, 어린 자녀를 둔 3040대의 젊은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인데, 그에 비해 이 동네에는 젊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사실 이곳은 가게를 준비할 당시에 우리 부부가 살던 동네이다. 처음에는 서울, 지방을 안 가리고 넓게 찾아다녔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서 가게를 차려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직접 살아 본 동네가 조금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가 계약까지 이렇게 물 흐르듯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 분명히 가게 창업에 대해서는 더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따져보기로 했었는데, 막상 마음에 드는 공간이 나타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와이프는 나보다는 분명 현실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미 희망회로에 빠져버린 나를 말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성공이든 실패든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만 했다.)

충분한 자본금이 없었기에, 최소한의 예산으로 실행 계획을 짰다. 동시에,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않았던 나의 계획은 크고 작은 현실적 문제를 계속해서 만들어 냈다. 이 기간 동안에 나는 꽤나 두려웠다. 시작도 못해보고 그만두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지 않나. 취지가 잘못된 건 아니니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역시, 디자인할 때가 제일 재밌다.

'디자이너에게는 자기 일보다 남의 일이 쉽다고 했던가'. 나도 심각한 선택장애를 겪을까봐 걱정했지만,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기로 하니 오히려 콘셉트가 쉽게 정리되었다. 나는 이곳이 크리에이터의 작업실이 되기를 바랐다. 아티스트, 건축가, 디자이너, 카피라이터, 포토그래퍼, 작가.. 흔하고 평범한 것을 거부하며 새롭고 특별한 것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모든 크리에이이터들과 이 공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정형화되지 않은, 과하거나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날 것의 느낌 속에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것들로 크리에이터의 공간을 떠올렸다. 그렇게 정의한 이곳의 이름은 REBUILT이다. '다시 지은 것'이라는 리빌트는 모든 크리에이티브의 과정과 결과를 의미한다. 생각을 써 내려가고 지우고 다시 쓰는 반복적인 과정 속의 결과물처럼, 리빌트라는 공간도 창작 과정이자 결과물이 된다는 개념이다. 정답이 정해진 크리에이티브는 없듯이, 이곳이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공간이자 브랜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브랜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하나의 내러티브 안에서 몇 가지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두고, 공간과 고객 접점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창작자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하기에 상표등록도 진행했다.
쉽게 변형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텍스트 중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개발했다.
대형 포스터와 매장 곳곳의 인쇄물에 브랜드 스토리를 담았다.
노출콘크리트 위에 무심하게 세워놓은 듯한 금속 프레임과 자작나무 파티션, 큰 작업 테이블, 중간중간 러프하게 붙여놓은 포스터들로 공간의 토널리티를 설정했다.


이제, 문제는 운영이다.

브랜드와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일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가게를 만드는 일은 완전 다른 일이었다. 아무리 작고 단순하게 보여도 신경 써야 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온라인 채널을 세팅하고 관리하는 마케팅, 직원 채용과 교육, 물품 구매와 재고 관리, 메뉴 개발과 레시피 관리, 매출과 원가, 현금흐름 관리 등 모든 것이 디자인의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고민과 질문들이었다.

그래도 오랜 회사생활로 쌓은 경험치는 이런 낯선 일들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세팅하고 관리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오히려 디자이너라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만들어 내고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 마케팅과 입소문

동네상권이라는 특성상, 온라인 마케팅 효과는 크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외부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이다 보니 몇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보다 맘카페의 영향력이 더 크게 느껴진다. 물론, 인스타그램은 Owned Media라는 점에서 다른 채널과 비교 대상은 아니다.

Earned Media는 정말 어려운 채널이다. 언제부터 리뷰어들이 '내돈내산'을 강조해 왔는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Earned Media도 그야말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오픈 초기에 방문했던 어떤 손님이 맘카페에 좋은 후기를 올려주셨는데, 댓글에는 '사장이 쓴 글 같다', '손님인 척 광고하지 말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논란이 되자 글은 곧 지워졌고, 정작 나는 이 사건을 며칠 뒤에야 전해 들었음에도 그 이후로 우리 가게는 맘카페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나에게는 빠르게 인지도를 높이는 광고보다,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조금 더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카페를 차린 이유가 그저 그런 장사를 하기 위함이 아니기도 했고, 손님이 어떤 경로로 유입되건 동네 장사의 핵심은 재방문율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광고 따위는 필요 없다는 이상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픈 초기에 유료광고 안 하면 안 된다더라..)


다행히 내가 기대했던 젊은 손님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이제는 단골손님들도 꽤 많이 생겨났다. 피드에 매장 사진이 올라오고, 내가 내린 커피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장사하는 진짜 재미를 느끼고 있다. 평일은 회사일로 정신없이 보내고 주말 내내 가게에 있으니 일주일 중 하루도 쉬지 못하는 생활이지만, 나에게 주말의 카페 일은 또 하나의 노동이 아닌 리프레시로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다.



2. 가격과 마진

손님이 많은 것과 돈을 잘 버는 것이 전혀 다른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최저시급 인상, 식자재값 인상, 배달 플랫폼 수수료.. 사실 회사에 다니다 보니 이러한 익숙한 뉴스에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최저시급이 거의 만원이 되었다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밀가루, 우유, 설탕 등 필수 식자재 값이 얼마가 오르건 직접 체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의 나는 커피값 4500원의 원가가 얼마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원두 1kg로 대략 4~50잔 정도의 커피가 나온다고 하던데, 이것저것 떼고도 남으니 다들 장사를 하는 거겠지 싶었다. 심지어 반값짜리 커피도 우후죽순 생기는 걸 보면 말이다.

일반 소비자도 알만한 유명 로스터리 브랜드의 원두와 일반 로스터리 원두의 가격은 많게는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물론 커피 맛에는 정답이 없지만, 소비자의 입맛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요즘은 아메리카노 한잔에 7천원이 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4~5천원 수준이라고 했을 때 커피 원가는 결코 만만한 비율이 아니다. 여기에 우유, 휘핑크림, 시럽이나 파우더 등 가격 변동이 생기면 판매 가격보다 원가 상승폭은 더 커진다. 소비자가 지불할 수 있는 가격저항선이 올라가지 않으면 판매 마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나는 그동안 음식 배달료를 소비자가 전부 지불하는 줄 알았다. 가게마다 정해놓은 최소주문금액은 정말로 적자 구간과 수익구간을 고심 끝에 나눠놓은 것이다. 리뷰작성 시 무료 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점주가 그만큼의 마케팅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배달 판매량이 많지 않은 가게일수록 적자구간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이벤트도 적극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결국, 플랫폼도 또 다른 경쟁자이다.


3. 손님과 직원

나는 인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모든 지인이 귀인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람 때문에 못 견딜만한 경험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직원을 채용할 때도, 인간적인 신뢰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장사나 카페 경험이 전무한 사장이라 이런 시각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직원도 좋고 싫음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인격체인데 내게 필요한 인력으로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고용주의 가치관과 태도가 직원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수없이 많다.) 언제 어떻게 그만둘지 모르는 존재로서 직원을 채용하려고 한다면, 그 관점과 태도가 직원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상호 신뢰를 중시하는 고용 관계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안정감을 줄 것이다. 사장으로서 부족함도 많았을 텐데, 처음부터 함께해 온 직원들과 고맙다는 인사를 종종 나눈다.


'진상손님이 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나는 오픈 초기에 직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그리고 이런 대답도 함께 제시했다. '서비스 제공자로서 최대한 정중하게 응대하되 손님이 선을 넘거나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손님을 잃어도 좋으니 00씨 자존감은 지켜요.' 다행히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손님은 아직까지 없었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공간과 브랜드의 힘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예외의 경우는 너무나도 많음을 알고 있다.) 이 작은 동네에서 우리 가게가 제공하는 조금 다른 분위기는 일종의 낯섦과 신선함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VOC가 성수동스러운 힙한 카페이다.) 이 공간에서 어떤 손님은 힙한 감성에 대한 반가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생소함을 느끼게 된다. 생소함을 느끼는 손님은 처음부터 주도권을 갖기 어렵다. 우리에게 어떤 메뉴인지를 물어봐야 하고, 공간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물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설계해 놓은 새로운 장소성, 경험의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은 수용과 적응 심리를 요구하기 때문에 변칙과 무질서의 기회를 상대적으로 덜 제공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만난 아는 형님이 가게에 진상은 없었냐고 물었다. 없었다는 나의 대답에 그 비결이 뭐냐고 재차 묻길래, 반농담 식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화장실에 르라보 핸드워시를 뒀어요.)




아직 부족함이 많고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끝을 정해두지 않은 리빌딩의 과정처럼 카페를 운영하고자 한다. 카페 창업을 생각한 지 정확히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운영 경험을 돌아보며 쓴 글이기에 앞으로는 더 멋진 이야기들을 이곳에서 소개하고 싶다.



https://www.instagram.com/rebuilt.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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