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1
* 대만에서
타이베이에서 내가 한 가장 멍청한 짓은 지하철 패스를 사지 않은 것이었다. 이 정도 도시면 걸어 다닐만하겠다 자만했고 돈도 아끼고 싶어 초반에는 심카드 조차 사지 않아 걸어 다니며 많이도 헤매어서 애꿎은 다리만 고생시켰던 기억이 난다. 중국 대만을 오가는 배 안은 핸드폰 충전을 할 수가 없어서 마침 핸드폰 배터리도 나가 있었다. 타이베이 역에서 나와 핸드폰 충전과 인터넷 사용을 위해 스타벅스를 찾아 헤매다 경찰관에게 겁먹은 얼굴을 하면서 혹시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는지 물었다. 중국에서는 공안이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어서였는지 대만에서도 경찰을 보니 괜히 겁이 났다. 다행히 경찰이 아주 친절하고 유창한 영어로 스타벅스 위치를 알려주어 사람이 가득 찬 스타벅스 한편에 짐을 내려놓고 차이티라테와 빵을 주문하고 앉아 오늘 묵어갈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미리 숙소를 찾지 않았는가 싶다. 아마 하루만 자고 움직이는 바쁜 일정에 숙소 예약을 미뤘거나 혹은 타이베이 숙소 위치를 정하지 못해 일단 가서 숙소를 잡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타이베이는 마치 서울처럼 명소가 많아 예를 들면 홍대, 명동, 종로, 강남같이 번화가가 많아서 도대체 어느 위치에 숙소를 잡아야 좋을지 감이 오질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호텔 가격도 베트남이나 중국만큼 싼 옵션을 찾기 힘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스타벅스 옆에 있던 호텔로 그냥 갈까 하고 가격을 알아보니 하룻밤에 10만 원이 훨씬 넘어 포기해 버리고 다시 차근차근 호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반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는 도저히 답이 안 보여 에어비앤비에 들어갔더니 현재 내 위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5만 원 정도의 작은 원룸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가격에 화장실까지 딸리고 발코니까지 있다고 쓰여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고 냉큼 2일이나 예약하고는 짐을 다시 들고 스타벅스를 나왔다. 문제는 와이파이도 없이 구글 지도로 대충 길을 찾은 데다가 타이베이 주소에 익숙하지 않고 또 길을 엄청 헤맸다는 것이다. 주소지는 호스트가 일하고 있던 어느 스포츠 매장이었는데 서양 여자애가 나오더니 열쇠를 챙겨 나를 근처 원룸으로 안내했다.
홍대스러운 위치도 좋았고 방도 그럭저럭 지낼만할 것 같았는데 화장실 문 대신 커튼이 달려 있는 데다 기대했던 발코니도 없었다. 호스트는 다행히 착오가 있어서 미안하다며 예약을 캔슬해도 된다고 해 주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하루만 지내고 하룻밤은 캔슬을 부탁했다. 아무래도 난 문 대신 달린 화장실 커튼은 적응을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 또다시 하룻밤만 지내고 짐을 싸고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점이 무척 피곤하게 느껴졌지만 더 좋은 방이 있으려니 위로하며 우선 몸을 침대 위로 털썩 누워 버렸다.
배가 고파 근처 식당에 가 생선세트를 시켜 허겁지겁 먹었는데 아무래도 어제 배에서 먹었던 볶음밥의 영향이 가시지 않아 또다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어서 잠시 방에서 쉬다가 시내를 구경하러 저녁나절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자라, H&M 등 글로벌한 의류 매장들이 줄지어 있어 나도 줄을 서서 옷도 입어 보고, 그 당시 대만은 와이드 한 청바지가 유행인지 모두들 그런 바지를 입고 있어 나도 입어보았으나 나한텐 어울리지 않아 실망을 했다. 한국에서도 저런 바지가 유행인가 했는데 막상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와이드 한 바지를 입고 있던 사람이 몇 없어 보여서 안심했다.
시내를 구경하다 홍두병을 사 먹었다. 한 개에 800원가량 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하루에 한 개씩은 꼭 사 먹었던 것 같다. 겉이 흐물거리지 않고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팥앙금이 들어 있는 게 내가 딱 좋아하는 그 맛이었다. 길거리 카페에서 대만 사람들과 붙어 앉아 커피도 한잔하고 좋았는데 갑자기 커다란 쥐 한 마리가 출몰하는 바람에 황급히 자리를 떠 숙소로 돌아가서 오늘은 배가 아픈 날이기에 대만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그렇게 대만에서 첫날이 지나갔다.
타이베이에서의 둘째 날. 다시 에어비앤비를 뒤져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아담한 스튜디오를 발견해 하루 4만 원 정도에 사흘을 예약했다. 원래 지내던 숙소에서 도보로 50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며 캐리어를 끌고 50분을 아니 사실 거의 다 와서 길을 헤매던 바람에 1시간도 더 넘게 걸려 도착했다. 게다가 방주인과 길이 엇갈려서 무슨 첩보 작전이라도 하듯 겨우 겨우 만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만에서는 에어비앤비가 불법이라 아파트 경비실에다가는 아무런 말도 말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집주인은 젊은 남자였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신라면까지 준비했고 누가 크래커와 캡슐커피에 냉장고에는 날계란까지 넣어두어 정말이지 감동을 받았다. 우선 계란을 깨서 오믈렛을 만들어 먹은 후 단수이를 가려고 밖으로 나와 지하철을 탔다.
라오지에 쪽으로 가기 전 시장에 맛있는 것을 많이 팔아 메추리알 튀김을 사 먹고 누가 캐러멜을 세 봉지 샀는데 나중에 한국에서 이 누가 캐러멜을 더 많이 사 올 걸 하고 계속 후회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단수이 홍마 오청에 올라가기 전 본격적인 관광을 하기 위해 우선 카페에서 망고주스를 하나 사서 마셨다. 머리가 깨질 정도로 차갑고 양이 많아 먹는데 아주 고생스러울 정도였는데 더운 날씨에는 최고였던 것 같다.
단수이에서 홍마 오청으로 올라가 여기저기 구경을 한 후 드디어 향한 곳은...
사실 단수이에 온 이유는 단수이 담강중학교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주걸륜의 모교라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본 학교 복도를 걸어보고 싶었는데 총기 테러 이후 관광객에 개방을 안 한다고 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학교 문 앞에서 사진만 찍고 있었다. 학교 학생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관광객들 때문에 고충을 격을 아이들과 경비 아저씨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다시 길을 돌아가다 시장에서 홍두병 하나를 사 먹고 튀긴 어묵에 소스를 뿌린 음식을 하나 시켜 먹어봤는데 간도 그다지 세지 않고 담백하게 맛있게 먹었다. 현지인 맛집이었는지 대만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지만 그냥 용기를 내어 들어가서 시킨 것인데 생각 외로 먹을만했던 것 같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타이베이 시내로 나가서 타이베이의 명동이라는 서문정 거리라는 곳에 가보았는데 정말 길의 형태와 건물 모양이 명동과 닮은 데다 사람이 너무 많아 흥미를 잃고 5분 만에 나와서 타이베이 101 타워를 보러 가자하고 걸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멀어 타워 앞까지는 못 갈 것 같아 포기하고 타워가 그나마 잘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 사진만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역시 게으른 여행자.
다음날 아침. 새로 옮긴 오피스텔에서 꿀잠을 자고 거리로 나왔다. 조금 늦잠을 자서 아침과 점심 사이의 시간대였고 걸어가다가 보이는 브런치 카페로 들어가 브런치 세트란 것을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차는 따로 시켜야 해서 진저 티를 시켜다가 신기하기만 한 브런치를 먹으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배표를 파는 CSF 사무실로 가는 길을 조사했다. 이 배는 스피드 페리로 중국 Keelung에서 중국 Pingtan으로 넘어가며 3시간 만에 중국 땅에 도달할 수 있다. 시내까지 걸어가 CSF 페리 사무실로 가 사흘 후 출발하는 배를 거금 10만 원 정도 지불하고 예약했다.
내일은 멀리 나가 관광을 할 계획이라 오늘은 쇼핑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때는 10월이었으니 한국에 도착하면 가을일 테고 그렇다면 나에게는 가을 옷이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내 케리어에 들어있던 옷은 여름옷과 얇은 점퍼뿐. 당장 추운 가을의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반팔과 얇은 점퍼만 걸치고 거리를 활보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카디건이라도 하나 건지자 생각하고 백화점과 옷가게를 둘러보고 사실 여유를 부리는 게으른 여행의 또 다른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결국 맘에 드는 옷을 사지는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지나친 1인 샤부샤부 집에 들어가 해물 샤부샤부를 시켰는데 우리 돈으로 약 5000원 정도에 밥과 음료가 무한리필. 오랜만에 밥 다운 밥 그리고 너무 맛있는 한 끼를 먹었는데 위염을 앓은 이후로 이렇게 많이 먹어 본 적이 없어 음식을 다 해치우고 옆사람을 따라 죽까지 만들어 먹고 나오니 도저히 배가 불러 걸을 수가 없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30분 정도 소화를 시키고 난 후에 40분쯤 걸어서 겨우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소화를 빨리 시키고 싶어서 집 근처의 찻집에 들어가 녹차를 한 잔 했다. 밤에 먹으려고 낮에 백화점에서 샀던 대만산 맥주와 블루베리는 너무 배가 불러서 다음에 먹어야겠다 하고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났을 때 내 배는 전혀 소화가 되지 않았다. 이게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 위 속에 남은 음식물로 사망시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음식은 먹은 후 8시간 후에는 모두 소화가 되어 위장에 음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는데. 어쨌든 오늘은 타이베이의 마지막 날이 될 테니 이젠 조금 멀리 나가 광부 마을과 지우펀을 보러 가기로 했다. 지우펀 쪽으로 가려면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했다. 다행히 버스 시간이 맞아 버스를 탔는데 조금 늦게 출발해서인지 버스 안에는 나 말고 서양스럽게 생긴 남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1시간을 달렸을까
그 서양스러운 남자와 나는 지우펀을 가기 전 광부 마을 입구에서 함께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얼마나 불어대던지 서있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브라질에서 왔다며 자기소개를 하던 그 서양스럽게 생긴 남자가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랐다. 내가 산을 배경으로 그의 사진을 찍어주자 그는 바로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으나 바람이 너무 불어 산발이 돼 있을 머리를 생각하며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저 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램프 모양의 산이 있다면서 자기는 그쪽으로 걸어가겠다고 나도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사실 램프 모양의 산이 궁금해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앞으로 전진하기 조차 어려웠고 조금씩 내리는 이슬비와 타이베이 시내와는 다른 추위를 느끼고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나는 홀로 광부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그를 따라 램프를 닮은 산 쪽으로 향했다면 그때의 나의 여행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하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