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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Mar 02. 2024

바람 피우는 남편과 살면서도 행복할까

사랑하는 딸, 오늘은 한 행복하지 못한 커플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 이 커플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는 못하는, 안타까운 커플이지. 결혼을 하는 이유, 결혼에 대한 정의는 다 나름나름이겠지만 행복한 결혼의 모델을 찾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 같고, 이 커플도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거야.


이 부부의 이야기는 남편, 스테판의 불륜이 밝혀지면서 시작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걸 알게 된 아내인 돌리는 충격에, 배신감에 휩싸이지. 하지만 돌리는 스테판과 헤어지지 못해. 둘 사이에 아이들도 많고, 이혼하고 혼자 살기에 돌리 형편이 넉넉치 못하거든.


‘스테판, 바람을 폈다고? 나쁜놈.’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스테판은 그렇게 마냥 나쁜놈만은 아니야. ‘내가 가정부와 놀아난 것 때문에 아내인 돌리가 저정도로 상심할 줄이야!’ 스테판은 돌리에게 정말 미안해 해. 아내의 슬픔을 곁에서 바라보는 게 힘들기도 하지.


하지만 스테판은 자신처럼 정력이 넘치고 아직 한창인 남자가 아내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어쩐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동시에 아내가 자신의 바람 사건 때문에 너무 속상해하니 진심으로 미안하기도 한 거야. 하지만 미안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내팽겨 칠 수는 없는 거잖아? 스테판은 이렇게 생각하지. 그러다보니 들키지 않고 바람을 피는 쪽으로 행동하게 되는 거야.


스테판의 오랜 친구인 레빈은 이런 벗을 이해할 수 없어. 레빈은 그야말로 독야청청, 올곧은 일편단심의 사나이거든. 다르게 말해보자면 “일정량의 식량을 공급받으면” 케이크는 먹을 필요 없는 것 아냐?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스테판은 정 반대의 사람이야. 집밥을 든든히 먹고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가 디저트 가게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케이크를 집어먹는 사람. 음식과 사람을 나란히 비유하는 건 분명 부적절한 거야. 하지만 이런 비유를 통해 스테판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는 있지.  


돌리는 스테판이 계속 바람을 피우는 걸 알면서도 반쯤은 어쩔 수 없이, 반쯤은 애증으로 같이 살아. 하지만 그 삶이라는 거, 그게 돌리로서 마냥 불행하고 괴롭기만 한데 그 상황을 견디고, 참고, 인내하기만 하면서 사는 걸까?


그렇지는 않아. 남편이 가족에게 헌신적이지 않고, 자신에게만 충실하지도 않다, 하는 것을 모두 알지만 말이야. 그래도 집에 들어온 남편이 자신을 다정하게 대할 때,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할 때, 그때 돌리는 정말 행복해. 그런 남편에게 정말로 고마워. 늘상 밖을 나돈다고 하더라도 다시 결국 가정의 품으로,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보며 행복을 느끼지.


돌리의 상황만 아주 단순하게 말해보자. 그렇게 보면 그녀의 삶은 흔히 말하는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어. 매달 아이들 교육비를 걱정하고, 다음달 지출을 신경쓰고, 아이들 교육 문제로 씨름하고. 그런데 남편은 밖에서 헤프게 돈을 쓰고,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지. 하지만 돌리는 왜 불행하면서도 행복한 걸까?


글쎄. 돌리 자신도 자신이 왜 이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 잘 설명하지 못 해. 그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아. 하지만 지긋지긋한 집안일이 기다리더라도,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치이는 삶이더라도, 그래도 돌리에게는 그 삶이 정말 소중한 거야. 특히 남편과 아이를 떠나 자신의 사랑을 찾아간 친구를 만나고 온 뒤, 그 구질구질하다고 느꼈던 삶이 지리멸렬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


그 친구는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 그런데 그 친구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어. 그러던 중 새롭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 그러자 가정을 떠나 그 사람과 행복한 삶을 꾸려. 경제적으로도 아주 풍요롭고 여유로워서 돌리처럼 생활 걱정할 필요가 없지. 그래서 돌리는 그 친구가 그저 마냥 정말 행복할 줄 알았어. 마냥 그 삶이 좋은 것일 줄 알았어.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막상 그 친구의 삶을 마주하고 온 돌리는 자신의 구질구질한 삶이 그리워져. 친구의 삶에서 불행의 빛을 보지. 자신의 삶이 이전에 생각하던 것처럼 지겹고 먼지가 뒤덮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광휘로 감싸인 것이라는 걸 알게 돼.


돌리는 남편을 미워하지. 하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해. 생활은 지겹지만, 그 지겨움 속에 반짝임도 있지.


이 삶은 뭘까? 그건 엄마인 나로서도 잘 모르겠어. 언제는 알게 될까? 글쎄. 지금으로선 그것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말이야, 삶은 정말 복잡하고 다면적인 것 같아.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떠나 행복을 찾으면 그게 더 나은 삶일 것 같지.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 더 행복할 것 같지. 반면 자신을 두고 바람 피우는 남편과 계속 살면서 생활고를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것 같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돌리는 자신의 삶에서 빛나는 것을 발견하고, 연인과 풍요를 선택한 친구에게서는 어둠과 불행의 빛을 보게 되잖아.


돌리의 선택, 돌리의 삶을 보면서 엄마로서는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 행복을 찾아 풍요를 누리는 삶보다 더 가치 있는 건 배신감이나 모욕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고 있는 무게 속의 빛을 보는 것일 수도 있겠더라. 지고 있는 짐을 충실하게 지고 가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겠더라.


돌리는 그런 삶에 대해 말해 주었어. 언젠가 딸이 좀 더 자라면 이런 삶과 저런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어. 다면적인 인생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모르는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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