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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Mar 16. 2024

너와는 어떤 사이가 될까

사랑하는 딸, 오늘은 엄마와 할머니집에 온 날이야. 딸은 할머니와 실컷 놀고 잠든 시간이 됐어. 할머니댁에 와보니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이 하나 생각 나.


그 날은 추운 겨울이었어. 입시를 위해 대학교 시험을 봐야 하는 날이었지. 그날,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길을 나섰어. 고등학생 때 엄마는 긴장하면 소화를 잘 못해서 끼니를 거르곤 했거든. 그날도 대학 시험이 있는 날이다 보니 아침에 뭘 먹지를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할머니가 챙겨주는 것은 하나도 먹지 못하고 출발을 했지.


아마 회기역이었을 거야. 환승하기 위해 잠시 내렸지. 그런데 그 곳에서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네 할머니가 엄마를 편의점으로 이끌었어. 그리곤 거기서 파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오뎅탕을 하나 샀지. 그리곤 건더기는 남으면 버리면 되니 국물이라도 조금 먹으라며 엄마에게 건넸어.


엄마는 일평생, 네 할머니에게 음식을 원하는 것만 골라 먹고 버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앖었거든. 음식은 다 먹지 못할 만큼이면 미리 덜어서 먹고,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먹던 음식을 불편 없이 버리는 일은 없는 거라고 배웠어. 그런데 그 날, 엄마가 나를 향해 국물만 먹고 버리라며 오뎅탕을 건넸던 거야. 내게는 그것이 싸늘하고 추웠던 겨울의 새벽, 도무지 소화를 하지 못하는 딸에게 건네는 엄마의 사랑이었어.


굉장히 사소한 일이지만 엄마에게는 이 기억이 정말 강렬하게 남아 있어. 또 가장 소중한 추억 중 하나로 남아 있어. 지금도 싸늘한 겨울의 새벽이면 편의점에서 파는, 동그란 플라스틱에 담긴 오뎅탕이 떠올라.


엄마와 너 사이에서도 이런 추억이 쌓일까? 우리가 만들어갈 시간 중에서 유난히 추억으로 남을 일은 무엇이 있을까? 너는 어떤 모습으로 엄마의 기억에 남을까. 엄마는 그게 몹시 궁금하고 그 순간이 기대돼.


또 엄마가, 엄마로서 네게 어떤 추억을 줄 수 있을지도 궁금해. 우리가 쌓아갈 시간 속에서 따뜻한 감성이 가득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 비싸고 좋은 옷, 화려한 여행지, 고급 음식 같은 것을 주지 못해도, 언젠가 돌아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요로운 힘. 그러한 정서. 엄마는 너와 함께 그런 것들을 만들어가고, 느끼고, 또 쌓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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