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도 안 평온한
“저도 일락님처럼 평온하게 살고 싶네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지금의 내 삶이 누군가에겐 평온해 보일 수도 있구나. 생각하기도 전에 억울함이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저도 보시는 것처럼 평온하지만은 않아요.”
그에겐 이 말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다. 사적으로 연락하지 않는 그와 나를 연결하는 건 인스타뿐. 인스타에 있는 내 사진을 들여다 봤다. 제주도 태교여행, 아이와의 호캉스, 아이가 잠든 평일 오후의 집 안. 빌딩숲에서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 머리를 때리며 치고 들어오는 일을 받아내다 휴대폰을 연 순간순간, 그는 나를 들여다보며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은 참 평온하게 살아서 좋겠다고.
지금은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빌딩숲 대신 아파트단지에 갇힌 나도 자주 그처럼 생각하곤 했으니까. 아이를 재우고 인스타 속 일하는 동료들을 보며 너무 부럽다고, 나도 얼른 사회에 나가서 달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쓸쓸해지곤 했었다. 내 인스타에는 사진도 글도 잘 올리지 않았다. 한적하고 호젓한 사진을 올리는 일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인스타 자체를 보지 않게 됐다. 내가 또 부러움에 질까 봐, 창을 닫고 난 후 잔뜩 쪼그라든 내 일상을 낯선 눈으로 마주하는 기분이 싫어서.
일로 만났다 친구가 된 어떤 이가 인스타를 왜 자주 안 하는지 물어왔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너무너무 질투가 나서 못 하겠다고 하자 돌아온 말.
“저도 엄청 부러워 한 선배가 있었는데요.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나니까 질투할 수가 없더라고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인 선배. 내심 늘 그를 부러워하던 어느 날,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가족이 오랜 시간 투병해 왔다는 것을. 유능한 그의 일상 끝엔 아픈 이를 돌보며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어떤 삶과 내 삶의 키를 재보고 싶어질 때마다, 누군가의 좋아 보이는 점을 낚아채듯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질 때마다 그 말을 되새기며 생각했다. 나는 그 사람을 제대로 모른다고.
어느 날은 책을 읽다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저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한테도 상처가 있다고?
세상 누구도 나보다 아플 것 같지 않은데 혹시 저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를 바라볼까?
얼굴에만 상처가 없다 뿐이지 등이나 엉덩이나 가슴에 있어서 옷으로 가린 채 살아가는 걸까?
- 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중에서
내 몸 안에 강한 자석이 있어서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내게 달라 붙는 것만 같았던 날들이 있었다. 어쩌자고 돌아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가졌을까. 나이는 자꾸 먹는데, 이젠 나가서 뭘 하면서 먹고 살 건가. 나가긴 할 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가득한 채로 유아차를 밀고 아파트 산책을 나가면 매일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다. 진주목걸이를 한 토이푸들과 산책하는 사람, 커다란 부채로 휘휘 공기를 가르며 걷는 어르신, 미끄럼틀 타는 아이들. 누구도 나처럼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거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고, 귀여워라. 아기가 엄마를 꼭 빼 닮았네!”
다가오는 낯선 목소리에 정신이 들면 꿈을 깨듯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나는 누구보다 평온해 보일 수 있겠구나, 하고. 평일 오후에 펑퍼짐한 옷을 입고,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느릿느릿 동네를 걷는 여자.
“안녕하세요, 해야지?”
아이에게 인사를 시키며 웃는다.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 어느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인자한 엄마의 미소. 놀랍다. 이게 드라마 속 한 장면이라면 내가 맡은 역할은 인자한 엄마 역할이라는 것이. 색다른 점이라곤 없어서 금세 휴대폰을 뒤적이고 싶어지는 한 장면에 등장하는 배우. 보이지 않는 내면은 온통 불길로 휩싸여 있음에도.
그때부터는 산책을 할 때마다 이런 게 보이는 상상을 했다. 강아지와 걷는 여자의 내면에서 조금씩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는 조각들, 한여름에도 녹지 않을 만큼 꽁꽁 얼어 한 덩어리로 뭉쳐 보이는 어르신의 내면, 미끄럼 타는 아이들 옆에서 “열까지 세면 집에 가자” 하고 숫자를 세는 아빠의 내면에서 쉴 새 없이 파도 치는 생각들. 도망치고 싶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기름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나의 내면. 어디에도 평온한 삶은 없었다. 평온해 보이려고 노력하거나, 스스로 평온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면 소스라치게 놀랄 삶만이 있을 뿐.
폭탄 맞은 듯 꼬일대로 꼬인 파마머리를 하고 싶다. 뾰족하고 빨간 구두를 신고, 배꼽과 갈비뼈가 다 보이도록 짧은 티셔츠를 입고 싶다. 눈두덩이는 온통 검정으로 칠한 채 얼 빠진 표정으로 방향도 없이 걸어다니고 싶다. 사실은 이게 나라고, 온통 불안하고 극단적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땅으로 꺼지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온몸으로 말하면 좀 시원해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다. 걸음이 편해진 아이는 얼마 전부터 유아차를 타는 대신 엄마 손을 잡고 산책한다. 하나, 두울, 세엣. 아이와 함께 열까지 세며 아파트 상가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맞은편에서 나타난 통통한 아이의 발. 아이와 키가 비슷한 여자아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온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내려다 보며 짧은 인사를 나눈다.
“몇 개월이에요?”
“22개월이에요.”
“오빠네. 오빠, 해봐.”
하하. 백지 같던 표정을 짓던 두 어른이 잠시 웃는다. 작은 웃음이 끝나고 인사도 없이 멀어진다. 어느 정도 멀어졌을 무렵, 고개를 들어 스쳤던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조용한 아파트 단지의 평온한 오후. 평온하지 않은 한 삶이 나와 잠깐 부딪혔다 흘러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