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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겐 웃어주고 싶어서

by 라일락

아침식사 시간, 아이가 한 손에 포크를 들고 두 눈을 찡긋한다. 왠지 웃어줘야 할 것 같다. 너무 피곤한데, 한 숨만 더 자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꾹 참으며 입꼬리에 힘을 준다. 내 얼굴을 본 아이도 따라 웃는다.


식사가 끝나고, 아이 손을 씻기면서 거울을 본다. 찡긋한 게 아니라 찌그러져 있는 내 얼굴. 쓰디쓴 음식을 한 입에 문 사람 마냥 만면에 쓴웃음이 가득하다. 식사시간 내내 아이는 이런 내 얼굴을 본 걸까. 아이들은 어른의 표정을 민감하게 알아챈다던데. 웃음 뒤에 숨은 피로를 본 건 아닐지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기 표정이 언니를 꼭 닮았어요!”

남편의 여동생이 말했었다.

“우리 아기도 썩소 지어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 티 하나 없는 저 얼굴이 내 표정을 닮아간다는 게 무섭다. 내 마음은 하나도 거짓이 아닌데, 엄마의 얼굴이 매일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 어쩌지. 눈웃음을 치다 거울을 보면 눈만 웃고 있고, 입을 헤 벌리고 웃다 거울을 보면 공허한 눈이 올라간 입꼬리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나는 웃는 것이 낯선 사람이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시간은 얼굴에 힘을 완전히 빼고 지낸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부터는 가만히 있어도 퀭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눈두덩은 한참이나 안으로 쑥 들어가 있고, 축 늘어진 볼엔 깊은 팔자고랑이 패였다. 눈그늘이 너무 깊어 한여름에도 챙이 긴 모자를 쓰지 못한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중력에 온 얼굴을 내맡긴 채 걷고, 집안일을 하고, 멍하니 창밖을 본다.


‘웃상’이 좋은 얼굴이라고 하지만, 자주 웃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노력 없이 되는대로 늘어져 있다 기습하듯 찾아온 웃음거리에 뱃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 그게 진짜 아닌가? 가끔 그렇게 웃을 수만 있으면 되지 않나? 생각했다. 나에 관한 한 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세상을 향해 늘 미소 짓고 있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집의 작은 사람이 내 앞에 있을 땐 이야기가 좀 다르다. 세상에 태어나 너를 만나서 정말 기쁘다고, 늘 아침마다 너를 맞이하는 일이 반갑다고 온 얼굴로 이야기해 주고 싶다. 온 세상이 이 아이를 향해 웃음 지을 순 없으니, 나라도 될 수 있는 한 많이, 환하게 웃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웃음에 좀 덜 인색해져 보자고, 폭포수처럼 흘러넘치는 환희가 아니라 강아지풀처럼 나를 살살 간지럽히는 웃음거리에도 못 이기는 척 웃어보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5분이라도 혼자인 시간을 즐기려 늦장 부린다. 이어폰에 최애의 노래를 틀어놓고 어린이집 주변을 빙빙 돈다. 그러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내려 오는 아이의 친구들을 발견한다. 잠깐의 마주침에도 나는 크게 반응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하’ 하고 벌려 웃는다. 이 아이들이 마주한 타인이 환히 열려 있는 문 같은 사람이기를, 사실은 내 아이가 마주하는 타인이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본다.


마음속으로 약속한 5분이 지나고, 어린이집 앞 인터폰을 들어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말한 후 문 앞에 선다. 선생님 손을 잡고 오는 아이의 발걸음이 들리면 발걸음보다 몇 배는 빠르게 발을 굴린다. 쿵짝쿵 쿵짝쿵 쿵짝쿵짝쿵짝쿵. 입으로 연신 쿵짝쿵을 발음하면서 눈과 콧구멍과 입 모두 최대한 크게 열어둔다. “잘 왔어 우리 아기! 너를 환영해!”라고 금방이라도 말할 것처럼.


이게 웃음인가? 그저 우스꽝스러운 광대짓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어여쁜 웃음을 배우지 못한 엄마는 이런 모습으로라도 웃어주고 싶다. 너에게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제일 환하게.


KakaoTalk_20250929_162633575.png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 아빠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를 후다닥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 사진을 봤는데,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제가 웃고 있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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