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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Mar 03. 2020

내 인생 첫 경쟁 상대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이 있다. 경쟁, 비교. 그래서 라이벌 의식을 가져본 적도 없고(부러워한 적은 있지만) 사회에서 일반적이라 여겨지는 스펙을 쌓으려 노력한 적도 없다. 그동안 없는 시간 쪼개서 하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만 공부하고 경험했다. 흔하디 흔한 토익도 대학 다닐 때 모의로 한 번 본 게 전부다. 그런데 요즘 내게 강력한 경쟁 상대가 생겼다. 바로 "까투리 엄마"다.


내가 "엄마 까투리"라는 애니메이션(이하, 애니)을 처음 안 것은, 아이들이 많이 보는 애니 속 여자 캐릭터를 분석할 때였다. 대부분 홍일점, 대부분 핑크색, 대부분 꽃이나 요리를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들. 그 캐릭터에 포함된 게 꺼병이(까투리 새끼) 4남매 중 둘째, 두리였다.



딸이 그 애니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됐을 때 두리 캐릭터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딸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막내 꽁지. 다른 캐릭터를 마지형, 두리누나, 세찌형이라고 부를 만큼 꽁지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생겼다. 딸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까투리 엄마도 좋고, ○○(딸 이름)이 엄마도 좋아."


응?? 둘 다 좋다고?? 내가 더 좋은 게 아니라?? 게다가 까투리 엄마를 먼저 말하다니. 뭔가 충격적이었다. 까투리 엄마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엄마 까투리"는 가끔 아니다 싶은 내용(모성애 강조, 엄마들의 '아줌마' 호칭, 엄마 동물들의 빨간 입술 등)도 있지만, 자연친화적이기도 하고, 귀여운 꺼병이들이 말도 예쁘게 해서 아이가 보기에 괜찮은 애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딸의 그 말을 듣고 나니 까투리 엄마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 넷을 혼자 기르면서, 절대 화내지 않는 엄마.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따뜻하게 조곤조곤. 아이들은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고 뭔가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다 해결한다. 완전 사기캐.



언젠가 딸이 떼를 쓰고 울고 불길래 혼냈더니, 딸이 울먹이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엄마는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였잖아. 까투리 엄마는 안 그래."


막 소리 지르면서 화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울면서 말하면 들리지 않는다며, 그만 울고 이야기하라고 한 게 전부인데. 서운했던 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꺼병이들은 엄마 말 잘 듣잖아."


하.. 이게 뭔 대화란 말인가. 애니 캐릭터와 경쟁하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집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고 말았다. 정신 차리고 딸과 다시 이야기 나눈 후, 꼭 안아주면서 딸에게, "엄마는 ○○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했다. 딸의 대답은, "○○이 엄마도 좋고, 까투리 엄마도 좋아."였다. 듣기 원한 건 "나도."였지만, 순서 바뀐 걸로 만족했다. 딸은 신나서 "엄마 까투리" 주제가를 불렀고, 나도 같이 부르며 손뼉 쳤다. 


누구일까? 무엇일까? 엄마 까투리

날아볼까? 뛰어볼까? 엄마 까투리

우리 놀이터 숲 속은 늘 새롭고 신기해요.

마지 두리 세찌 꽁지랑 오늘도 신나게 하나 둘 셋 넷

누구일까? 무엇일까? 엄마 까투리

날아볼까? 뛰어볼까? 엄마 까투리

누구일까 또 무엇일까 엄마~ 엄마 까투리

날아볼까 또 뛰어볼까 엄마~ 엄마 까투리


아직 아이가 "엄마 까투리"를 모른다면, 보여주지 말길. 자괴감 드니까. 물론 우리 집엔 TV도 없고, 내가 보여줘서 딸이 알게 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러면서 "엄마 까투리" 캐릭터 상품을 검색하고 있는 내가 싫어진다. 크하하. 진정 웃프다. 아, 그리고 딸은 내게 "○○이 엄마도 날 수 있어?"라는 질문도 했다.

"영재"라는 단어가 거슬리지만, 딸이 퍼즐이나 블록을 좋아해서 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맞춰서 신기하다. ⓒ고양이상자(고상)


그나저나 아빠 장끼는 어디 갔을까.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니 꼭 장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등장하는 다른 동물에서도 아빠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려점이 아쉽다. 육아는 엄마만의 몫이 아니니까. 아무리 원작(故권정생, 2008년 출간)에서 헌신적인 모성애를 강조했다고 해도, 시대가 바어가고 있으니까.

브런치 글을 보고 남편이 보내온 이미지. 남편마저 까투리 엄마를 먼저 썼다. 쳇. ⓒ고양이상자(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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