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상자 Aug 25. 2018

인생사 새옹지마, 일희일비 불필요

| 서로 옮고 옮기는 병


지난주 갑자기, 아가에게 고열이 발생했다. 양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우리 부부는, 급히 반차를 쓰고 번갈아가며 아가를 돌봤다. 다행히 남편은 야근이 예정되어 있는 프로젝트 시작 전이었고, 나도 급한 일을 처리한 후였다. 이래저래 엄마아빠를 도와주는 고마운 아가다.

열이 완전히 내리지는 않았지만 내리는 중이었고, 병원에서 전염성 없는 목감기라고 진단받았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같은 반에 면역력이 약한 아가가 있어서 그 아가한테 옮길 수 있으니 우리 아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열이 완전히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보냈어야 했다. 직장으로 복귀하려던 내 마음이 너무 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우리 아가가 열이 많이 났을 때 그 아가가 옮은 것 같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느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교사가 내게 전달한 건지, 원장 이하 교사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내게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족이다. 확증도 없이 의심하는 건 어떤 문제에서든 불필요하니까.


급히 직장에 연락해서 연차를 쓰고 아가와 함께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 아가가 많이 아팠던 적은 돌 무렵 돌 발진을 동반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아가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아가한테 옮은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평소에 아가들은 병을 옮고 옮기는 것이 일상이라 여겼고 꼭 어린이집에서만 옮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 아가가 아팠을 때도 나는 그렇게 추적(?)한 적이 없다.


우리 아가도 옮을 수 있고 우리 아가가 옮길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해야 하는 것일까.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아가들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어린이집 내에서만 원인을 찾는 것일까. 마트, 식당, 놀이터, 물놀이장, 키즈카페, 친척집, 병원 등 옮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육아휴직 중에는 우리 아가나 다른 아가가 감기에 걸리면 나는 집에서 아가를 돌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걸. 자주 그러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있는 일인데, 육아휴직 중이거나 맡길 가족이 있는 분들이 양해를 해주면 안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반 아이가 수족구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아가는 지난주에 등원하지 않아 수족구에 옮지 않았다. 목감기와 열이 있는 상황이라서 수족구까지 걸렸으면 정말 심하게 아팠을 것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아가가 예전에 병을 옮겼던 것 같으니 이번에도 옮길 가능성이 있다며 등원 거부당한 걸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건 모두 어른들의 사정이다. 수족구에 걸린 아가가 어서 낫길 바랄 뿐이다.



| 내게 폭 안기는 아가


새벽에 숨을 헐떡이며 잠을 설치는 아가의 모습을 보는 건 정말 힘들다. 아가도 안쓰럽고 그 아가를 돌보느라 잠을 설치는 나도 안쓰럽다. 그런데 자기가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모르는 아가는, 예전 생각이 나는지 자꾸 안아달라고 내게 안긴다. 그런 아가를 안아주느라 내 손목과 어깨는 남아나지 않지만 그래도 아가가 내게 안기는 그 순간이 좋다.


요즘 한창 신나게 걸음마를 하는 중이라 잘 안기지 않으려 해서 섭섭할 때도 있었는데, 아프니까 내게 안기려 하는 좋은 점도 있더라. 아가가 아픈 상황에 이런 걸 좋은 점이라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 아무리 좋아도 힘든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하다.


아가는 아프면서 큰다고 한다. 내게 안기는 기쁨을 주지 않아도 되니 많이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아가가 귀찮아해도 내가 쫓아다니면서 안으면 되니까.



| 뒤늦은 여름 원피스


복직 이후에 뭔가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싶어 저렴한 여름 원피스를 몇 벌 샀다.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살까 말까 하다가 얼마 전에 샀는데 배송이 오래 걸려서 좀 선선해졌을 때 도착했다. 올해는 못 입을 것 같아서 괜히 샀다 싶었지만 막상 꺼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얇은 천은 아니어서 요즘 입기에도 괜찮을 만한 옷이었다. 선선해졌다고 해도 아직 덥긴 더우니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내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내년 여름에도 열심히 입어야지. 내년 여름은 올해보다 덜 덥길.



이전 02화 나도 누군가에게는 맘충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