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오래 해온 나는, 자취방을 고를 때면 학교나 직장과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에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단순하게 선택할 수 없었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는 만족하지만 직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 출근과 등원
나는 남편보다 출근 시간이 이르고 직장이 멀다. 그래서 아가의 어린이집 등원은 남편이, 하원은 내가 맡기로 했고, 나는 아침마다 아가가 깨기 전에 살금살금 출근한다. 남편은 아가가 일어나면 그때쯤 일어나(미리 일어나면 더 좋겠지만)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서 아가를 등원시킨 후에 출근한다.
복직 초반에는 그런대로 잘 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내가 출근하기 전에 아가가 깨고 만다. 내가 씻고 나오면 일어나서 배시시 웃고 있으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야 한다. 깨어 있는 아가를 혼자 두고 출근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내가 인사하면서 문 쪽으로 가면, 아가가 울어버린다. 평소에는 웃으며 안녕해주는 아가이지만 아침에는 서럽게 운다. 너무 안쓰러워서 안아주다가 지각한 날도 있다. 그런 아가를 달래면서 현관문을 닫을 때면 마음이 너무 무겁다. 잠이 덜 깬 채로 그런 아가를 돌봐야 하는 남편도 힘들 거다.
그래도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잘 논다니 다행이다. 아가가 아침에 나를 보면서 우는 건, 나랑 있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자기도 놀러 나가고 싶은데 엄마만 나가니까 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
| 퇴근과 하원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칼퇴할 수 있는 직장에, 남편은 야근하는 기간이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내가 퇴근하고 어린이집으로 가서 아가와 만난다. 피곤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지만, 아가는 한창 신나게 걸음마를 하는 시기라서 집에 바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이 등원시키면서 어린이집에 가져다 놓은 유모차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놀이터에 들러서 맘껏 걷게 한다. 꺅꺅거리면서 얼마나 신나 하는지 모른다.
그러다 남편 퇴근 시간이 되면 버스 정류장에서 셋이서 만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오거나 집에 와서 간단히 식사한다. 아가는 어린이집에서 저녁을 먹긴 하지만, 우리 부부가 식사하면서 간식을 주곤 한다. 집에 들어와 어른 먼저 씻고, 아가를 씻기고 나면 남편은 아가와 시간을 보낸다. 그때 나는 아가 설거지(어른 설거지는 남편 몫)를 하고 빨래(하루는 어른 빨래, 하루는 아가 빨래, 하루는 수건)를 돌린다. 빨래가 다 돌아가면 남편이 가져와서 같이 넌다.
문제는 남편의 야근 기간이다. 남편이 야근할 때는 저녁 시간에 온전히 나 혼자 아가를 돌봐야 하므로 바로 집에 와야 한다. 그래야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다음 날 출근에 지장이 없다. 이제 아가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걷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유모차 없이 하원하는 것은 힘들지만, 남편이 야근 예정인 날은 아가 손을 잡고 걸어서 하원한다. 걷기 좋아하는 아가를 조금이라도 걷게 해주고 싶어서. 다행히 우리집과 어린이집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집 앞에 도착하면 아가는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버틴다. 놀이터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면서 그곳으로 가겠다고 고집부린다. 그러면 나는 내 가방과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금요일이면 주말에 빨아야 할 낮잠이불까지) 조금씩 걸으면서 달랜다. 짐 내려놓고 다시 나오면 좋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들어오면 나는 땀범벅이 된다. 그래도 그렇게 걷고 들어오면 일찍 9시 전에 잠들어서 나에게 시간을 주니 다행이다. 그때부터 아가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가가 깰까봐 조심조심. 예전에 젖병 닦아 소독하고 이유식 만들었던 때에 비하면 아가와 관련된 일은 훨씬 줄어들었다. 하지만 수유와 이유식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 수월해졌다고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힘들긴 하니까.
| 주말과 공휴일을 알차게
평일을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늦잠 자면서 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가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 아빠가 둘 다 있어서 기분 좋은지 낮잠도 늦게 잔다. 잠을 이겨내면서 계속 놀자고 하는 통에 우리 부부는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주말 중 하루는 밖에 나가서 놀고, 다른 하루는 집에서 놀기로 했다. 주말 내내 집에 있으면 아가한테 미안하고, 주말 모두 밖으로 나가면 우리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스케줄 조절 잘 하고 남편과 서로 도우면서 즐겁게(?) 육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