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

by 강석우

어렸을 때부터 세뇌당한 것이 있다. “우등상보다 더 좋은 상은 개근상이다. 개근상은 성실성의 척도다.” 그래서 아프다고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죄악이고 몸을 질질 끌고서라도 학교에 오는 것이 최상의 선이라는 생각이 박혀있다.


그것은 학생에게만이 아니라 내게도 적용된다. 아프다고 결근하거나 조퇴 하느니 차라리 학교에서 죽겠다는 각오를 했다. 초등학교에 근무하셨던 할아버지께서도 그랬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날 도저히 아파서 일어날 수 없어서 그냥 누웠는데 천장에 담임 없는 아이들이 우왕좌왕하는 광경이 그려져 그냥 한달음에 학교로 달려가셨다고.


교직 초기에 1년간 무결석 무조퇴 무지각 달성하자고 선언하고 6개월쯤 되었을 때, 한 학부모로부터 자기 아들이 아파 죽게 생겼다는 전화가 왔다. 강력하게 학교에 와야 한다고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려다가 무결석을 이미 6개월이나 달성했겠다, 얼마나 아프면 그러랴 싶어, “집에서 치료 잘 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조금 후 교실에 가보니 그 학생이 교실에 있었다. 겉보기에도 금방 죽어가는 형상으로. 집에 가라고 사정해도 그 학생은 정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후론 방침을 바꿨다. 하마터면 진짜 학생을 학교에서 죽게 할 뻔했기 때문이다.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라.’라고 하는 것은 그 정도로 출석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던 사건이었다. 절대 학교에서 죽으라고 하면 안 된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옛날이야기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짜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