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 했다. 월급을 모두 어머니에게 갖다 드린 후 용돈을 타 쓰시느라 아들들에게 용돈 한번 주지 않으셨고, 아니 못하셨다. 좋아하시는 약주라도 한잔하시려면 어머니 눈치를 살펴야 하고, 서울에서 동생들이 와서 외식하는데, 당연히 아버지께서 돈을 내셔야 했다. 동생들이 먼 곳에서 왔으니까. 하지만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동생들 앞에 낯을 들지 못하시던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봤다.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 했다. 그때만 해도 남자가 부엌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은 남자의 굴욕이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마늘 까기, 파 다듬기 등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다 하셨다. 어느 날, 날 보니 아버지처럼 살고 있었다. 어? 내가 왜 이러지? 가만, 내 아들도 나처럼 사는 것 아닐까? 내 삶에서 아버지를 볼 수 있고 아들의 삶에서 나를 볼 수 있다는 것. 요즘은 이름표 시대이다. 공산품에도 생산의 이름이 박혀있고, 수송차량에도 운전자의 이름이 박혀있다. 책임을 지라는 뜻,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일 것이다. 얼마 전 모 대학교 총장이 “우리 대학에서 리콜 제도를 시행하겠다.”라고 발표했다. 학생의 자질을 책임질 테니 취업을 시켜달라는 뜻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데려다가 재교육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고 3 아이들이 시내를 돌아다닌다. 졸업을 안 했지만 이미 졸업한 것처럼 시내를 활보한다. 문득 저 아이들 속에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내가 아버지처럼 살고 아들이 나처럼 산다면 비록 3년이지만 그 시간을 나와 함께한 아이들 속에 나의 무엇이 새겨있을까. 공장에서 기계에 의해 생산되는 제품에도 생산자의 이름을 붙여 책임을 지라는 세상에서, 내 손을 거쳐 간 학생들을 과연 내가 책임질 수 있을까. 보증할 수 있을까. 다행히 위안되는 것은 난 윤리 시간에만 가르쳤다는 것. 졸업생들이 잘 못 살면, 다른 선생이 못 가르쳐서 그런 것이고 졸업생들이 아주 잘 살아내면 내가 잘 가르쳐서 그런 것으로 위안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뻔뻔한가?
교복을 벗음과 동시에 떼어 낸 자기 이름표 대신 제품 생산자의 명찰을 붙여보는 것은 어떨까. 고3 담임, 고2 담임, 고1 담임의 이름을. 옛날에 동네 어른들이 “뉘 집 자식이냐?” 호통치시면 행여 아버지에게 누가 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처럼, 또 아버지는 그런 소리 듣지 않으시려고 가정교육을 엄격하게 하셨던 것처럼. “네 선생님이 누구셨냐?”라는 호통에 학생이 전전긍긍하고 교사도 전전긍긍하게 되면 사회가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실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