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가 미안해.

엄마 나는 이해해.

by 작사녀ㅣ이혜진OT



2025년 9월 17일 기록


나에게 자식이 생기고 나니 알게 되었다. 나의 엄마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는 것을,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런 엄마 밑에서 나는 자랐다.


그럼 나는 어떻냐고? 무서울 만큼 닮은 구석이 많다. 외모도 닮았지만, 엄마의 싫은 모습이 나에게 비춰질 때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게 엄마와 딸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같이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와는 다르다는 것을 너무 증명하고 싶어졌다. 어릴 적 엄마가 했던 행동들, 언행들 중 내가 싫어했던 것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좋은 엄마, 좋은 아내인 척 흉내는 내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오늘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싶어 오랜만에 글을 적는다.



전화벨이 울렸던 그 순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사실 엄마의 전화가 반갑지 않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는 것이 딱 맞을 정도로, 나의 엄마는 편안하고 행복하고 본인이 좋을 때는 나를 떠올리지 않는다.

자식인 나의 편안함이 본인의 행복과 편안함이 아니다. 그래서 전화는 늘 요구로 시작된다. 무언가 부족하거나, 아프거나, 필요하거나. 내게 부족한 건 무엇인지, 아픈 건 무엇인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아는 나는 때때로 슬프다.


"야. 이거… 손가락 관절 붙이는 거 네가 보냈나?"


"어… 괜찮다고 효과 있다니까, 붙여봐. 하서방이 시켜줬어."


"맨날 물뭍이고 하는데 이런 거 언제 붙이라고 보내냐… 쓸데없는 물건인 것처럼…" 구시렁구시렁이다.


하… 보고서 마감기한이 다가오고, 오늘 정해둔 일을 마무리지을 때라 나는 예민한 상태, 지쳐있던 상태였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늘 하지 못했던 말을 오늘 내 기분의 힘을 빌려 말했다. 마치 오랫동안 목구멍에 걸려있던 가시를 뱉어내듯이.


"엄마는 그게 문제야. 그냥 고맙다, 잘 쓸게 하고 필요 없으면 다른 사람한테 주던지 버리던지 하면 되지. 무슨 그런 말이 많냐고. 그리고 앞으로 내게 야!라고 부르지 마! 다 큰 딸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키우는 딸한테 야가 뭐야!"


쏟아져 나온 말들이 전화기 너머로 날아갔다. 엄마는 잠깐 침묵을 유지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미안하다."


"아니 엄마… 그러니까, 나도 엄마 마음 아는데 한 번씩 그렇게 말하면 나도 기분이 안 좋아… 지금 일하는 중이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두 번째 전화, 그리고 변화

2시간이 지났을까?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에는 야가 아닌 "딸!"


그 한 음절이 오늘따라 어색하게 들렸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배운 게 없고 사랑을 못 받아서 표현할 줄을 몰라.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또 말을 한다.


"아니… 엄마… 나도 알지, 엄마 이해하지. 내가 40년을 살고 나도 자식이 생기니까 알겠더라고… 엄마가 왜 그랬는지를… 그런데 이 이야기는 꼭 해주고 싶었어…"


"아니 엄마, 나는 엄마 다 이해해. 고마워. 괜찮으니까 저녁 먹고 쉬어요."


퇴근길의 성찰

전화를 끊고 40분이 걸리는 퇴근길에, 조용히 운전을 하며 엄마와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백미러에 비친 내 얼굴이 오늘따라 엄마를 많이 닮아 보였다. 그 얼굴로 나는 엄마의 삶을 떠올렸다.


그래, 다 이해하지… 나는 엄마 딸이니까… 나도 엄마 같을 때가 너무 많거든… 그래서 너무나 이해하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의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대물림되는 상처들. 하지만 오늘 엄마가 "미안하다"라고 말했을 때, 그 짧은 단어 속에 담긴 용기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때로는 상처를 준다. 피곤할 때 나도 모르게 툭 던진 말들, 무심코 한 행동들이 아이들 마음에 어떤 상처로 남을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거울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는 것을, 사랑한다고 해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건 그 상처를 인정하고, 미안해할 줄 아는 마음이다. 엄마가 오늘 보여준 것처럼. 70이 넘은 나이에도 변하려 하고, 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는 그 마음 말이다.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실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춘 차 안에서, 나는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실과 마주했다. 엄마를 미워했던 적도 있고, 엄마 같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적도 많았지만, 결국 나는 엄마의 딸이다. 엄마의 사랑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고, 엄마의 서툰 표현 뒤에 숨어있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래도 내 곁에 있어서 고마워, 엄마.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지는 않은 딸이지만 고마워는 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와 나만의 비밀도 많잖아.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하면서도 사랑하는, 그런 관계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실한. 상처받고 상처 주면서도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그런 사랑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엄마의 "미안해"와 나의 "이해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엄마 고마워.


그러곤 밖으로도 말을 한다.

(그런 나를 똑 닮은 나의 딸을 보며,)


딸! 엄마 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각자의 목적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