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론'과 '다짐'에 지친 나에게
오랜만에 너에게 쓰는 편지다. 원래 갑자기 연락해도 친한 사이면 덜 어색하다고 하잖아. 그런데 지금은 하도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덜 친해서 그런가, 많이 어색하네. 안 본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이 높게 세워진 느낌이다.
알다시피 도망치듯 마무리한 2022년이었다. 스타트업 직장생활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시작했던 것처럼, 마무리 또한 갑자기 이루어졌어. 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너는 그 시점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무서웠어. 변화가 두려운 내 모습이.
"하던 대로 하면 편할 텐데, 왜 새롭게 하려는 거야?"
무수히 사라진 선배들이 습관처럼 내뱉던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깨달았어.
아,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되겠다. 나는 완전히 길들여졌구나. 너도 하나의 레디메이드가 되었구나.
그렇게 도망치듯 뛰쳐나와 그토록 열망하던 동남아 일주를 떠났다. 남들에게는 버킷리스트였다며 둘러댔지만, 다시 말할게. 난 그곳을 '열망'했어. 왜였을까. 돌아보면... 거기에서 잃었던 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겠지.
그렇지만 사서 고생이었다. 그냥 편히 쉬면 될 것을, 너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온 나라를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싱가폴로 입국하여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까지. 이미 공허해진 네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일까, 너는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닥치는 대로 먹다 장염에 걸리기도, 비행기를 놓치기도,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어. 그래서 그 '나'인가 뭔가를 찾았냐고? 글쎄. 그게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찾았겠어. 오히려 남아있던 '나'를 그곳에 두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래, 나는 계속 도망치고 싶어. 나를 얽어매던 손길들로부터. 모든 사회 통념으로부터. 예컨대, 퇴사니, 취직이니, 노후대비니, 예금이니, 적금이니, 청약이니, 결혼계획이니... 이것들이 '사랑과 진심 어린 걱정'의 모습을 하고 트로이 목마처럼 들어와 내 마음을 헤집어놓고 말았어. 위태로웠던 열망이 무너지고, 쌓아 올린 꿈이 불타며 망연자실한 내게,
"이건 네가 당면해야 할 현실이야"
라고 말한 모든 사람들이 미웠지만, 그들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었어. '현실'은 그러니깐. '비현실'이 나였으니깐. 언제까지나 병실에 누워있을 수는 없으니깐.
늦은 연초에 회고가 길었다.
너는 왜 내게 편지를 쓰라고 했니? 내게 기대하는 말이 있었을까? 너는 너한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도저히 모르겠다. 흔히 하는 2022년의 '결론'을 내고 2023년의 '다짐'을 하길 바라는 걸지도. 그치만 나는 그럴 수 없어. 찝찝하지만 할 수 없어.
그냥 내 얘기로 대신할게.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해. 완전해지려 하면 할수록, 불완전해진다는 걸. 그리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할수록 '완전'하다는 느낌을 받아. 이 아이러니 속에서 끝없이 불안과 혼란을 느끼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이 행복의 모습이었다는 걸, 너는 알고 있니? 그 치열함이 행복이었어. 어쩌면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공허와 조급함도, 웃기지만 행복의 한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혀 맞지 않는 불안한 음들이 모여 하나의 재즈가 되는 것처럼, 행복도 그런 불안함들이 맞아떨어질 때, 완성되는 건가 싶기도 해.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연주해야 한다는 것. 틀려도, 주저하지 말고 계속 가야 한다는 것. 그래,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불안해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말뿐이야.
때가 되면 또 편지를 할게.
너에게 답장이 오는 날, 그날 저녁 책상 앞에 앉아 다시금 펜을 들게. 그때를 기약하며, 펜을 놓는다.
Youtube 『차감성의 2022년 365일, 매일 1초씩 촬영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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