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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Apr 20. 2023

걸작을 쓴 남자

내일 죽겠어

그러니깐...그저 그렇게 살다 가는 게, 나는 싫은 거야.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덮으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써 내려갈 수 있지? 하루키만의 느낌이 있잖아.

한숨을 푹 내쉰 그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그는 줄곧, 평범하게 오래 살 바엔 걸작을 남기고 내일 죽겠어, 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하지만 단어 하나 쓰지 않고 핸드폰 게임만 하는 그의 모습은, 솔직히 말하면 내겐 한심해 보이기만 했다. 객관적으로 그는 '내일모레 서른', '백수' 등의 단어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위 '작가 지망생'으로 글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도 어려워, 말 함부로 하지마.

책을 덮은 그는 또다시 초점 없이 한 곳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종종 그 지난한 생각들의 결과를 내게 늘어놓을 때가 있었지만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삶의 목적, 순간의 소중함 등은 취준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거시적인 일이었기에. 

무슨 생각해?


그렇게 카페에서 헤어지고 난 후, 다시는 그와 연락할 수 없었다.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에게 툭툭 털어놓는 이야기들이 많았기에 그 빈자리는 꽤나 허전했다. 하지만 당시 나도 앞길이 보이지 않던 불안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결국 그의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취업을 하고, 집을 얻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시간은 늘 그렇듯 몸을 돌려야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항상 앞을 향하던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어느 한 독립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독립서점에서도 구석 책꽂이 상단에 꽂혀있는 그의 책은, 까마득히 잊은 그의 옛 모습을 생생히 불러냈다. 

신기하지? 나 결국은 걸작을 쓰고 말았어.

그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게 네가 말한 그 걸작이니?

걸작이라기엔 초라한 표지와 형편없는 인쇄. 심지어 아무도 찾지 않아 먼지가 내려앉은 책이었다. 책방 주인 역시,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그 책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마다 잊고 있던, 그러나 분명히 있던 그 빈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저 그렇게 살아왔던, 정신없이 살아와 잊고 있던 그 거시적인 것들에 대한 그의 지난한 생각의 결과들이 응축되어, 투명하지만 공허했던 내 마음의 바다에 한 방울씩 톡톡 떨어졌다. 평온하기만 했던 바다는 일렁거리더니, 이내 먹구름이 지고 파도가 몰아쳤다. 결국 툭, 툭,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지, 뭐. 언젠가 글을 쓰고, 책을 내면 누군가 내 책을 읽을 거 아냐. 그 사람에게 내 책은 어떻게 읽힐까? 걸작이라고, 역시 이 작가는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고 할까, 아니면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라면서 책을 돌려놓을까. 근데 그래도 난 상관없어. 내가 말하는 걸작은 수백, 수천만 명에게 사랑받는 책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그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책을 말하는 거야. 나는 그런 걸작을 쓰고 싶어.


다음 날 그 책방을 찾았을 때 그의 책이 꽂혀있던 자리엔 다른 새로운 책이 꽂혀 있었다. 갑자기 사라졌던 그 책의 주인처럼, 그 책 역시 사라졌다. 그 낡은 책을 누가 사간 걸까? 주인이 치웠나? 알 길이 없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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