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왕 솨, 돈(나) 잘 썼다!
나름 글쟁이라 자부하는 내가 글로 남기지 않는 것이 있다. 매일을 담는 일기.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꿀잼 일상은 인스타그램에 차곡차곡) 하루하루를 글로 남기기란 여간 부지런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매년 새해 다짐 중 하나가 일기 쓰기지만, 매년 실패다. 그래도 매년 해내는 것 중 하나가 연말 결산. 365일 치의 일기를 몰아 쓰는 거지 뭐. (이것도 게으른 탓) 브런치 올해 첫 글이자 마지막 글로 내 연말 결산을 조심스럽게 남긴다.
시장주의자라 소비가 나를 대변한다고 믿는다.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가 내 일상과 관심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연말결산할 때마다 첫 단계가 가계부를 톺아보는 것. 간혹 내가 가계부를 쓴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벌써 가계부 4년 차다. ^^V (놀란 이는 늘 묻는다. 가계부 쓰면 돈을 아낄 수 있냐고. 대답은 X, 근거는 나=산 증인)
올해 소비는 나의 관심사를 말해주진 않는다. (일상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리다)올해 총지출은... 누군가의 연봉일 수도 있는, (대학생이었던, 백수인 내게는) 말도 안 되는 액수다. 약 40%를 ‘여행’이 차지한다. 2월엔 일본, 11월엔 미국, 12월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왔다. 누가 봐도 ‘여행에 미치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는 여행을 정말 안 좋아한다. 특히 해외여행은 내게 늘 버겁다. 편식쟁이라 다른 사람과 밥 약속하는 것도 머뭇거리는 나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이 너무나도 재밌다. 새로운 곳,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보단 단골 플레이스, 친숙한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다. 익숙한 환경 속에서 색다름을 찾는 게 내겐 더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예컨대,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매일 지내는 공간에 같이 사는 사람도 변할 리 없다. 그렇지만 매번 다른 주제로 대화의 꽃이 피고 웃음바다가 된다. 유쾌한 우리 가족.. 그런 우리 집을 놔두고 열두 달 중 한 달 넘게 밖에 있던 셈이다. 내년엔 기필코 여권을 꺼내지 않으리라 -
올해 소비는 참 특이하다. 여행이 1위인 것을 제쳐두고도, 교육과 문화가... 나란히 2, 3위라니! 교육은 등록금을 내가 입금했던 것이 컸다 치자. 문화는 정말 오롯이 내가 날 위해 쓴 돈이다. 재작년, 작년도 문화가 높은 순위였긴 한데, 전과는 액수가 다르다. 정기구독 서비스 수가 더 늘었기 때문이다. 역시 소비=관심사!! 그만큼 콘텐츠 Input이 많겠지라며 자위해야지. 언젠가 내 콘텐츠로서 Output이 나올 거야! 암! 그렇고 말고!
올해 정기 구독한 유료 서비스는 총 11개. 텍스트 콘텐츠로는 퍼블리, 북저널리즘 프라임, 일간 이슬아, 밀리의 서재, 리디 셀렉트. 북저널리즘 프라임은 웹으로 들어가야 하니 잘 안 읽게 되고(근데 해지 왜 안 해 나야), 일간 이슬아는 내 감정에 따라 만족도가 하루하루 달라진다. 가을을 지독하게 타서, 가을 내내 일간 이슬아에 기대 하루를 마무리했다. 자정이면 메일함엔 일간 이슬아와 경향신문 뉴스레터가 도착한다. 사실 일간 이슬아보다 더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글도 많았던 경향신문. 퍼블리야 말해 뭐해. 약속 장소에서 누구를 기다리거나, 상대가 잠깐 자리를 비울 때엔 무조건 퍼블리를 읽는다. 하루빨리 직장인이 돼서 퍼블리의 조직문화, 일하는 법 등의 카테고리 글들도 이해하고 싶다. 상반기에는 리디를 이용하다 하반기에 밀리의 서재 연간회원권에 혹해 옮겼다. 오리지널 콘텐츠도 그렇고, 계속 추가되는 서비스들도 그렇고 나름 만족스러운 밀리의 서재. 서비스를 늘려 나가려는 모습이 기특해 더 애정이 간다.
스트리밍 서비스도 이리저리 옮겼다. 음악은 멜론, 애플뮤직, 유튜브 뮤직. 지금은 애플뮤직과 유튜브 뮤직을 쓰는데, 사실 제일 자주 찾는 음악 서비스는 Soundcloud다. 내 기분에 따른 플레이리스트를 잘 맞춘달까. 차차 적겠지만, 인간이 느끼는 48가지의 감정을 모조리 겪은 2019년이다. Soundcloud는 요동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나를 자주 구해줬다. 내년엔 또 모르지. 유튜브 프리미엄은 광고 보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 취소할 예정이다. 요즘 우리나라 광고, 참 잘한단 말이야요?!
영상은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음... 사실 잘 안 본다. 아니 보는데, 편성에 내 삶을 맞추고 싶지 않아 셀프 재방송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서 1등은 ‘그레이스 앤 프랭키’다. ‘굿 플레이스’랑 막상막하지만, 1월에 새로운 시즌이 나오니까 1등 주기로 했다. 두 할머니의 이야기가 어찌나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지. 우리나라에서 그려지는 노인 캐릭터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랜만에 M씽크 글 끌올을 해보면 https://brunch.co.kr/@chal/14 ... 노인들이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볼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 노인이 되어가는 이들(나와 당신)이 가진 ‘노인’에 대한 편견을 부술 수 있는 콘텐츠다. 어떻게 늙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추천! 근데 고민 안해도 다들 봤으면 좋겠다. 노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까.
책 포함 텍스트 콘텐츠나 영화는 사실 순위를 매기진 않는다. 읽고 보는 족족 대부분 재밌어서(굉장히 쉽게 재밌어하는 애). 그리고 일기는 안 남겨도 오늘의 문장, 오늘의 책 등은 인스타그램에 부지런히 올린다. #chalbooc 하이라이트가 다 차서 따로 계정도 만들었다. 새해가 밝으면, 하이라이트도 전부 리셋할 예정이다. 이 타이밍에 내 인스타그램 끌올 https://www.instagram.com/chal.kr 태그들: #chalbooc 은 독서, #de_soir 는 내 글, #솨래블 은 여행, #festiCHAL 은 페스티벌(문화 소비 급증의 원인 중 하나)
내가 (CGV에서) 본 영화는 총 20편인데, 뭐 이건 독보적이라 1등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뽑은 건 <기생충>, <벌새>, <조커>, <82년생 김지영> 등이 대부분이던데. 난 <미드 90(Mid 90s)>. 난 영화에서 스토리보다 영상미와 음악이 제일 중요하다. 두 요소 모두 만족시킨 영화. 여태까지 영상미(?)에선 <서치>, 음악에선 <버드맨(Birdman)>이 베스트다. 두 영화 모두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별로라 아쉬웠거돈요...그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미드 90> 진짜 짱..그리고 아주 작은 바람이 있는데: 서니 설직 잘 커주라..
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친 포커 비도 만만치 않다. 내가 잃은 만큼 친구들이(과) 행복했으니 됐다.....응....됐다...연말정산도...됐다.........이 정도만 공개하고 반성문은 혼자 소장해야지!
2019년, 한 해 돈(나) 잘 썼다!
2020년에는 소비와 함께, 수입도 정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돈을 벌어 돈을 쓰고 싶다.
다음 연말 결산은,
나에게 2019년은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