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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설화 Apr 26. 2017

사랑의 해체 1

왜 우리는 첫사랑에 실패하는 가

 사랑에 관한 논의의 오도는 역사적으로 세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첫째, 현대 철학 분야에서 사랑에 관한 담론 중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등장하는, 사랑의 발생에 대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기술의 연마가 선제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둘째, 사랑과 그로부터 발발하는 모든 현상을 분리하기 위한 분석적 논증의 부재, 셋째, 사랑이란 개념을 빛처럼 아우르고 있는 초월적 숭고를 보장하기 위해서 그 정의를 갖추기 위한 조건의 부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남성의 노력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사랑에 관한 모든 역사적인 담론을 해체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영향과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정의, 그리고 사랑이 실패한 뒤의 올바른 대처를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을 목표로 갖는다. 






1. 첫사랑에 실패하게 되는 유일한 이유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사랑 그 자체에 대한 분리에 대해선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근대 철학자의 노력 덕분에 누구나 그 단발적 현상과 지속적 상태에 대한 차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으로부터 발생한 파괴적인 에너지가 인간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선 ‘처음 경험하게 되는 그것’의 측면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는 데, 이같은 현상은 대다수의 경우, 첫사랑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원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는 왜 첫사랑에 실패할까. 소위 ‘연애 에세이’를 작성한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작가는 이것을 경험의 부재의 탓으로 돌린다. 연애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요구되는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서 처음 경험하는 이에겐 수많은 장애의 극복과 다름 없을 연애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종국에 엄지손가락밖에 없는 사람처럼 스스로 관계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마치 십자수를 배우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아서, 십자수를 처음 뜰 때는 잘 하지 못하지만, 하다보면 실력이 는다는 것처럼 마치 정신의 숙련도로 말미암은 연애에 관한 기술의 터득이 관계의 완성도를 보장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정신적, 감정적 영역의 토대 위에 선 사랑의 감정에 앞선 이성적 기술의 연마가 선제적으로 요구된다는 에리히 프롬의 논의로부터 -심지어 에리히 프롬이 '기술'이라고 예시로 든 바가 과연 이성의 영역에서 후천적으로 연마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한치도 발전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꼴이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사랑 그 자체의 분리에 대한 시도는 다시금 필요하지 않을 지언정,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자체에 대한 해체는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아마도 이같은 순간을 분석하는 시도 그 자체가 '첫사랑'이라고 정의되는 현상 해체를 담보하는 데, 왜냐하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절대로 인간의 삶에 여러번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라는 기회의 필연적 제한성때문에, 인간의 삶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충격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충격은 반복할 수록 옅어지기에, 절대로 인간은 처음과 같은 강도를 경험할 수 없으며, 첫사랑의 실패로 인한 사랑 혹은 관계 그 자체에 대한 경계와 맞물려 희석된다. 결코 우리가 사랑에 실패한 것을 두고 마치 흉터를 남길만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데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정의하기에 앞서, 그러한 매커니즘이 어떻게 발발할 수 있는 지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왜 하필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가. 어떻게 ‘첫눈에 반한다’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까. 앞으로 논증하겠지만, 후자는 수많은 노래 가사에서 밝힌 것처럼 기적에 가까운 신기한 현상만은 아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절대로 그곳에 존재하는 사물이 망막을 통해서 맺힌 상을 감각하는 것처럼, 실제 그곳에 존재하는 인물이 인간의 정신 내부에 불러일으키는 절대적으로 외부에서 기인하는 현상이 아니며, 누군가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정신에 침투하여, 강력한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사랑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내부적인 현상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오로지 우리 정신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하필 우리가 그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존재하는 내부적, 정신적 공백을 일깨우는 누군가를 우리가 만났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거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그래서 과연 내가 이 사람을 만난 후로 나의 정신에서 무언가 빼앗긴 것인 지, 혹은 원래 그곳에 그러한 형태의 공백이 존재했는 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공백의 감각이 우리의 정신을 덮친다. 그리고 그같은 충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 정신을 필사적으로 현상의 원인을 찾아나선다. 마치 나를 물리적으로 폭행한 상대를 찾기 위해 더듬이를 한껏 세우는 달팽이처럼 이리저리 그것은 요동친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강도의 충격이 나의 정신 내부를 파헤치는 현상을 두고, 얼마나 내가 다치기 쉬운 vulnerable 인간인 지 직면하게 되는 그 충격의 원인을 필사적으로 찾던 인간 정신은 우리 앞에 놓인 그 상대, 가장 그럴듯한 원인으로 추정되는 그 상대에게 모든 현상의 원인을 돌리게 됐다. 그같은 현상을 인류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으로 정의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이같은 충격이 우리로 하여금 종종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관계의 종말을 경험하게 하며, 나아가 심한 경우, 정신적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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