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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록 Oct 30. 2022

남해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글을 마치며

에필로그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 산다는 것은, 저마다 자신만의 바다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힘이 부칠 때마다 달려가고 싶은 바다가 있고, 그래서 남해에서는 완전한 절망에는 빠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해에서 나고 자란 한 친구가 말했듯, 걱정은 수용성이라 웬만한 걱정이나 슬픔은 물에 다 녹더라구요.


올해 처음으로 스노클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친구의 것을 빌려서 바닷 속에 들어갔을 때, 오로지 저의 숨소리로 가득찬 바닷속을 누비는 것이 고요해서 좋았습니다. 일정하게 몰아 쉬는 제 호흡 소리를 들으며 햇살이 수면을 투과하여 반짝이는 바닷속을 헤엄치다, 산다는 것은 바닷 속에서 두 팔을 휘젓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리 저리 신나게 헤엄치며, 우리의 삶도 바다를 유영하는 것처럼 어떤 도달해야 하는 결론도 없고, 그저 움직음, 서사뿐이구나 싶었습니다. 오직 현재만이 가능한 이야기요.


바다가 허락해주었던 제 이야기들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수월히 흘러갔었고, 바다의 흐름을 거스를 때는 양 팔을 더 세차게 휘저어야만 어딘가로 조금이나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이 다 빠져버리기도 했지만, 더 강한 팔과 용기 같은 것이 남았습니다.


남해의 달뜬 여름이 지나고 겨울을 준비하는 지금, 이곳은 아주 고요하고 차분합니다. 당신이 글로 만났던 열 한 명을 비롯한 친구들과 이제 도시의 그것과는 다른 길고 깜깜한 밤을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새로움, 호기심이 지나간 자리엔 각자의 좋은 면, 그저 그런 면들이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올라오겠죠, 시간이 지난 뒤에 제가 썼던 유록레터2를 같이 읽으며 낯간지럽다며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글은 동의를 구하고 썼고, 발송 전 당사자에게 보여준 뒤, 허가?를 받고 보내드렸어요. 자신이 이랬냐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친구들을 보면, 글을 쓰던 노곤함도 다 사라지고 이렇게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상대를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고 내 시선으로 담은 글을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니 정말 축복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글로 쓰면서 친구들에 대한 제 생각을 꺼내어 정리할 수 있었고, 이들이 얼마나 눈부신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욕심이 있었다면, 여러분도 당신의 주변 사람들을 꺼내어서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서로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도시를 떠나, 이곳 남해에서 저는 매일 같이 거리에서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친구의 식당에서 식당 영업시간이 끝난 뒤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어떤 새로운 곳이 생겼는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합니다. 이들과 어제도 만났고, 오늘도 만나며, 내일도 만날 것입니다. 그런 귀엽고 지리한 삶을 택했습니다.


날마다 그들을, 또 남해를 새롭게 보며 감사하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제 글을 꺼내어 읽으며 지금 이 시절의 남해와 이 시절의 친구들과 만나려구요. 당신과 글로 만났던 시간들에도 감사하며 , 언제나 고운 두 눈으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무엇이 되어서건 꼭 다시 만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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