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만난 사람, 깊이 사랑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빠져든 프리다이버 D
D는 줄을 잡고 바닷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아래로, 아래로. 보위(Boey)라고 불리는 물에 뜨는 물체에 매달린 줄을 잡고 물 속 아래로 산소통도 매지 않은 채로 말이다.
D는 서른이 되던 해에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에게 이별을 고하고, 해가 세 번 바뀌도록 세계를 돌았다. 이집트 다합이라는 곳에서 그는 프리다이빙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별일 아니라는 듯 산소통도 없이 바닷속으로 빠져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물을 좋아하던 D는 자신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다들 하는 데 못할 것도 없지. 감당할 수 있는 두려움처럼 보였다.
"물 속에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두려움도 같이 시작되어요."
D는 말했다. 줄을 잡고 내려가면서 '이 줄이 얼마나 길지?' 와 같은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두려움이 찾아 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더이상 내려갈 수가 없다. 게다가 생각을 하는 데도 에너지를 써야하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에 숨을 참는 힘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 래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마치 물고기들이 아가미를 벌름 거리듯 코에 압력을 넣어 코를 뚫으며 컴컴한 바다의 은밀한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 눈엔 너무나도 위험해 보이는데 프리다이빙이 좋다는 D에게 나는 물었다.
"물 속으로 내려갈 때가 좋아, 아니면 물 밖으로 다시 올라올 때가 좋아?"
"저는... 올라올 때가 좋아요."
"왜?"
나는 물었다.
"음... 바닷 속에서 물 밖을 바라볼 때 정말 환상적이거든요. 햇빛이 바닷물을 통과하는 게 정말 예뻐요.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그는 다시 줄을 잡고 물 밖으로 올라오면서 다시 숨을 들이마실 수 있다는 희망에 찬 확신과 함께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생각할 틈도 없이 감탄이 터져나온다. 삶과 가장 먼 곳까지 내려갔다가 점점 삶에 가까워질 수록 D는 삶을 다시 더 사랑할 수 있었다. 마침내 고래처럼 물 밖으로 빠져 나와 바깥 공기를 폐 한 가득 끌어 모으면, 숨은 그토록 달다.
물 속에서 D는 혼자이기도 하고 혼자가 아니기도 하다. 프리 다이빙은 반드시 짝을 이루어 해야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한 명은 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 다이버를 살피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D는 수영장에서 숨을 참는 훈련을 할 때조차도 짝을 이루어서 하는데, 한 번은 수영장에서 호흡을 참는 연습을 하다가 D가 바라보던 다이버가 물 속에서 몸을 부들 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걸 로스 오브 오토 콘트롤 (loss of outo control)이라고 하는데, 숨을 참다가 기절할 것 같으면 우리 몸에서 자동적으로 하던 작동이 고장나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떨기 시작하거든요. 그때 빨리 꺼내서 응급 처치를 해줘야 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세계여행을 하다 이집트 다합에서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후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짐을 꾸려 이집트 다합으로 다시 떠났다. 그리고 다섯 달을 이집트에 머물면서 프리다이빙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자격까지 손에 쥐고 돌아왔다. 그동안 수십, 수백 번의 달디 단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 다이버가 있었고, 삶은 지독하게 혼자이기도 하지만, 확실하게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프리다이빙은 레저라기 보다는 스포츠에 가까운 것 같아요. 다른 스포츠처럼 자기의 한계를 계속 넘어서야 하거든요."
D는 말했다. D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다다르고 싶은 모습이 언제나 가득했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갈 수 있는 제일 높은 곳까지 다다르고 싶었다. 그래서 늘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물 속으로만 들어가면 조용해졌다. 물 속에서는 앞일을 계획하고 혹시나 일어날 안 좋은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저 자기 눈앞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줄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래야지만 자신을 넘어설 수 있었다.
D는 스물 아홉살이 되던 해에 길고 익숙했지만, 그래서 더 머릿 속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회사를 떠나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프리다이빙을 만났고, 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여행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다는 핑계로 사랑을 주고 받다 여행을 마친 후 그 사람이 나고 자란 남해로 왔다. 그리고 늘 D의 옆에 있어주면서도 D가 혼자서도 행복하길 바라는 그 사람과 평생을 각자 확실히 혼자이면서도, 완벽하게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이번 인생은 산소통도 없이 자신을 바라봐주는 상대를 믿고 점점 더 깊숙이 가보기로 다짐한 것이다. 모든 것 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과 맘이 흔들릴 때면 서로가 서로를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무기 삼아.
D는 요즘 남해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고 있다.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재미있다며 웃었다. 하다보면 기술은 점차 늘 것 같고, 지금도 어떻게 든 만들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해엔 바다가 있으니까. 더 자주 바다에 들 어가고 어쩌면 자신이 남해 해녀학교 초대 교장이 되지 않겠냐며 웃었다.
"넌 하루 중 언제 가장 행복해?"
나는 물었다.
"남편은 2층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저는 3층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문을 열고 계단을 통통통 내려가면 제가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남편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계단으로 올라오거든요, 계단 중간에서 만나서 서로 껴안을 때, 그때가 하루 중에 제일 행복해요."
각자 서로의 존재 자체에 위안을 얻으며 자기만의 세계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서로라는 줄을 잡으며 빠져나와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은 물밖에서 들이쉬는 첫 숨처럼 달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