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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록 Oct 30. 2022

당신의 조언엔 사랑이 담겨 있습니까

남해에서 만난 사람,  D와 스칠 수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

어느  D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남해에서 태어나 태풍이 오면  끈으로 강아지집을 단단히 매어두어야 하는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그는 바다와 함께 자라나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러 남해를 떠났다. 졸업  무대 의상을 만들어 판매하던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연이은 밤샘 작업으로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이번엔 조금  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D 디스크가 터져버렸다.


여름날 나무처럼 왕성하게 일하던 그는 남해로 돌아와 6개월 동안 천장만 바라보며   있어야 했다. 무엇이든  했고,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었던 그는,  언가를 스스로   있다는 효능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여섯 달에 가까운 지리하고 무기력한 시간들이 흐른  조금씩 몸을 움직일  있기 시작했을 , 그는 혼자 남해   저곳으로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간단한 물품만 챙겨 바닷가에서 고요히  간을 보냈다. 다시 혼자서 무언가를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집이 없는 곳에서 천천히 텐트를 펼쳐 작은 집을 만들고, 식탁이 없는 곳에 테이블을 만들고, 조리도구가 충분치 않은 곳에서 음식을 만들며 다시 살아가는 힘을 키웠다. 그렇게 그는 캠핑이라는 취미와 만났다.


사진으로  그의 방엔 캠핑 용품이 가득했다. 한쪽 벽엔 침낭들이 나비가 날아간 뒤의 고치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캠핑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미 남해에서  '캠핑 전문가'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먼저 떠올린다. 캠핑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람들이 캠핑에 입문할  있도록 도와주는 손님들을 위한 캠핑 용품도 따로 있을 정도다. 나도 D 덕분에 한번씩 캠핑 세계에 슬쩍 발을 담궈 보았다. 물론 그가 만들어주는 캠핑 요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말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D  주는 요리는 엄청나게 맛있었다.


남해에 아주 내려온  , 처음 D 만났다. 이제는 누구보다 크고 건강한 그는 자기를 다시 살린 남해에서 수산물을 가공하며 머물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난 , D 자기   엌도 아닌 곳에서 혼자 뚝딱 뚝딱 무언가를 지지고 볶더니 태어나 먹어본  중에 가장 맛있는 동파육을 만들어 내었다. 그때 치킨도 피자도 있었던  같은데, 그런 쟁쟁한   메뉴에는 전혀 손이 가지 않고  고기 요리에만 자꾸 젓가락이 갔다.


D가 혼자서 대충 한끼를 떼우려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워 먹는 장면은 좀처럼 상상 이 되질 않는다. '대충'이라는 단어는 그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혼자서 한 끼를 먹더라도 스테이크를 구워 마지막에 버터 풍미를 더하고 생로즈 마리 줄기까지 올 린 다음, 직접 만든 홀그레인 소스를 살짝 곁들이거나 고급 와사비 조금, 아니면 소금을 톡톡 찍어 먹을 것 같다. 그 소금 역시 그가 미리 준비해둔 그 스테이크 고기랑 가장 잘 어울리는 소금일 것이다.


  D 만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스테이크는 입안에서 육즙을 폭죽처럼 터뜨릴 것이고,   만족하며 이런 저런 가니쉬와 함께 꼼꼼히 먹어본 ,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스테이크 요리법은 어떻게 저번과 달랐는지 노트에 적어둘 것이다. D 흐뭇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좋아하는 버번 위스키  모금을 입에 머금고 코로 숨을  하고 내뿜으며 버번 위스키   즐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고독한 미식가가 아니다. 오히려 맛있게 먹은 것들을  아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만들어주며 뿌듯하게 웃는 정많은 요리사에 가깝다.


어릴  가장 좋았던 기억 속에서는 엄마랑 아빠가 밤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국 소리가 들리고 아빠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흔들리며 빠스락 거린다. 엄마는 하루종일 일하느라 고되셨을텐데도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언제나 우리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셨다. 밤이 내려 앉은  우리 가족 모두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맛있는 것을 먹던 시간들이 내게 역류성 식도염을 주었는지는 몰라도,  기억은 언제 떠올려보아도  아서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고 맛있게 먹는 행위는 내게 있어서 사랑의 표현이다. 맛있는 음식은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조금 서툴렀던 우리 엄마의 사랑의 표현법이었으니까. D에겐 어떤 기억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의 언어도 비슷해 보였다.


"저는  주변의 모두를 사랑해요."


D 말했다. 물론 애인을 위해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99퍼센트를  쓰며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에는 남은 1퍼센트의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모양새는 같다는 것이 . D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일엔 어디에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D 자주 보진 못했지만, 그가 나타난 날은 언제라도 특별한 날이었다. 시간을 내어 나를 응원하러 와주었고,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주었다. 남해라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기가 죽지 않도록 맛있는 것과 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싸서 와주었다. D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물건들을 뒤적 뒤적 꺼내어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 보지 못한 것들을 만들어 주는데 가끔 그가 도라에몽의 후예가 아닐까하는 상상을 한다.    있는 주머니가 아닌 캠핑 상자에서 물건을 꺼낼 , 넉넉하게 웃는 얼굴까지 도라에몽   닮았다.


언젠가 어떤 사람에게 '내 인생에 온 사람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사 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D를 보고 배운 태도였다.


  그의 등장은  확실한 맛과 즐거움을 보장했고, 이런 기대가 부담스러울 법도 할텐데  제나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만들어주었다. D 자신이 가진 것에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보태어  좋은 것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친구들의 캠핑 장비까지  챙겨  친구들을 데리고 캠핑을 가는 것처럼 그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시간이고  시간 이고 이야기할  있을 정도로 깊이 파고  ,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주변 사람들을 그의 멋진 신세계로 인도한다.


"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모아서 책을 냈대요, 도움이   같아서 보내봐요."


어느  그는 내게   권을 소개해주었다. 내가 지금 쓰는  글의 시작점이  책이 . 주변 사람들이  말을 모아 엮어 생일날 선물로 주다 책까지 내게 되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게 도움이   같다며  작가의 책을 알려준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피고 그들에게 필요할만  것들을 알려주는 D 무슨 이야기를 써야 좋을  찾고 있던 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남해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 그를 포함한 남해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었었다.


"남해에 뭐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하면 좋을까요?"

그는 이 질문에,

"좀 생각해보고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라고 답했다.


그러고 다음날이었던가, D 번호를 붙여가며 남해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지 적어 보내주었다. 이제 고작 나를   번쯤 보았을 때였는데, 그는 그런 나의 질문에 한동안 시간을 내어 고민을 하고 필요한 답을 주었다.


지금도 어떤 질문이 떠오르면 그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1퍼센트의 에너지를 나누어서  에게도 쓴다는 것을 알기에 자주 물어볼  없지만, 그는 언제나 진심과 사랑을 담아 답을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D 존재만으로도 어딘가 모르게 든든해진다.


"누나한테  브랜드 어울릴  같아요. 한번  봐요."


어느  전공을 살린 그의 조언이 날아왔다. '스포티  리치' 라는 브랜드였다. 나름  포티하긴 하지만 아직 리치하지 않아서  브랜드의 옷을 사진 못했다.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면 그 옷을 살 것이다. D의 안목과 조언에는 실패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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